기사 (683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향토문화] 원래 모습에서 벗어나 밭담에 기댄 모양..광령1리 고인돌7호 [향토문화] 원래 모습에서 벗어나 밭담에 기댄 모양..광령1리 고인돌7호 광령1리 고인돌7호 제주도 기념물2-33위치 ; 애월읍 광령1리 1825번지. 광령리 고인돌6호가 있는 밭 길 서쪽에 있다.유형 ; 선사시대분묘(고인돌)시대 ; 탐라시대 광령지석묘 제7호는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밭담에 기대어 있는 모양이다. 상석의 북쪽에 흩어져 있는 돌들 중에 3~4개가 지석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신문 보도에는 ‘광령지석묘 7.8호는 전형적인 개석식 고인돌이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제주일보 040828)고 하였는데 이 고인돌과는 다른 어느 고인돌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남방식(2형식)으로, 지하매장주체 형식을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3-31 06:54 [향토문화] 돌담 너머 비양도가 지척..옹포리 바릇물(용천수) [향토문화] 돌담 너머 비양도가 지척..옹포리 바릇물(용천수) 옹포리 바릇물(용천수) 위치 ; 옹포리 중동네 마을 가운데 바닷가유형 ; 수리시설(용천수)시대 ; 미상(조선시대 추정) 바르물 혹은 바릇물이라고 한다. 바다에 있는 물이란 뜻이다.마을 사람들의 식수원이었으나 지금은 가끔 빨래하러 오는 사람이 있는 정도이다. 샘이 솟는 곳은 사각형으로 꾸몄으며, 바다 방향으로 물이 흘러내려가도록 배수구가 있다.남쪽으로 출입구가 있고, 동-북-서로 이어지는 둥그스름한 돌담이 두껍고 꽤 높게 쌓아져 있다. 돌담은 시멘트몰탈로 보강하였다. 돌담 너머로는 비양도가 지척이다.《작성 130915》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3-30 07:57 [향토문화] 1918년 신교육령 반포 후 1921년 설립, 대림리 신명의숙(멸실)터 [향토문화] 1918년 신교육령 반포 후 1921년 설립, 대림리 신명의숙(멸실)터 대림리 신명의숙(멸실)터 新明義塾址위치 ; 한림읍 대림리 복지회관유형 ; 교육기관시대 ; 일제강점기 조선시대의 서당은 향교에 입학하기 전 준비교육 단계로서 서민 자제에게도 교육기회가 주어졌다. 교재는 천자문을 기본으로 하여 동몽선습, 명심보감, 소학, 사서오경 등을 썼다.대림리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들어서서 훈장은 곽지리 장師長을 초빙해 왔고 웃동네 신선달 집에서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18년 신교육령이 반포된 후 1921년에 사립 신명의숙이 현재의 리사무소 자리에 설립되었다.의숙의 교사로는 김정언, 신찬희 두 사람이 초빙되었다. "제주의 원류를 찾아서.."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2022-03-29 08:41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3132333435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