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밝은오름(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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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밝은오름(동광)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11.0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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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290m 비고: 40m 둘레: 1,008m 면적: 54,945㎡ 형태: 말굽형

 

밝은오름(동광)

별칭: 명악(明岳). 벌근오름

위치: 안덕면 동광리 1,138번지

표고: 290m 비고: 40m 둘레: 1,008m 면적: 54,945㎡ 형태: 말굽형 난이도:☆☆

 

 

명칭을 벗어나 숲을 이룬 환경으로 시민들을 받아들이는 착한 화산체...

여느 동명의 오름 명칭과 같이 달처럼 환하고 반반한 모습이라 해서 밝은오름이라 했고, 제주 방언으로 벌근(볼근)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적용하여 한자로 명악(明岳) 으로 표기하고 있다.

제주의 중산간도로 중 서부산업도로라 했다가 평화로로 바뀐 도로의 중심에는 동광로라 부르는 로터리가 있다. 이곳은 제주시와 서귀포 외에 대정읍과 한림읍 등으로 연결이 되는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곳 동광 로터리 인근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서 숲이 우거진 모습으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바로 밝은오름이라 부르는 화산체이다.

불과 40m의 비고(高)여서 낮은 언덕이나 동산으로 보이지만 북향의 말굽형 굼부리를 지닌 어엿한 오름이다. 동광마을에서 바라볼 때는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나 평화로 변에서 보면 제법 그럴싸하게 구색이 갖춰진 오름으로 보인다.

이 산 체는 반달의 모양 외에도 예전에는 민둥산으로 이뤄져 사방이 활짝 트인 모습으로 보였다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밝은오름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후 소나무 등을 식재하여 일부나마 푸른 숲을 이루고 변화가 이뤄졌으나 지금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굼부리를 비롯한 기슭 아래의 대부분은 농경지로 개간이 된지 오래되었다. 특히나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원래 두 개의 봉우리는 네 개로 분리가 되어버린 상태이다. 또한 동쪽(남동. 북동) 봉우리의 일부 등성 아래는 가족 묘지를 비롯하여 여기저기 묘들이 자리하고 있다.

 

산 체 자체의 변화에 변화가 거듭 이뤄졌는데다 평화로가 건설되면서 주변마저 다른 환경으로 변한 동광의 밝은오름은 이제 명칭이 무색해진 상태이다. 과거에는 농지를 잇는 소로가 옆에 있었고 마을 주민들의 출입도 잦았으면서 소박한 전원의 중심을 차지하였겠지만 도로가 만들어지고 굼부리가 사라지는 등의 변화로 인하여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태이다. 다만, 평평하고 드넓은 농지로 변한 곳은 오늘도 풍년과 수확의 넉넉함을 이어가려는 분주한 농사일이 펼쳐지고 있다.

제주의 오름들 중 동명이 가장 많은 것은 민오름과 밝은오름이다. 이들은 각각 다섯 개이나 민오름에 비하여 밝은오름은 원형이 보존된 곳이 한 곳도 없다. 왜 하나같이 밝은오름은 명칭과 달리 허접하고 낮으며 변화가 심하게 이뤄졌는지 애달프게 느껴진다.

밭이나 초지를 비롯하여 공설묘지로 변한 곳도 있다. 동광의 붉은오름만 하더라도 예전부터 등성 자체가 민둥산이라서 사방이 훤하게 트여 있는 것과 관련하여 명칭이 붙었지만 지금은 이를 무색하게 한다. 시원스럽게 뚫린 도로를 지나면서 바라보는 기분은 밝은 오름이라기보다는 답답하고 어두운 오름으로 느껴진다. 그나마 기슭과 정상부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오름의 모양새가 나오지만 분화구로 들어가면 반전의 현장임을 목격하게 된다. 화산체의 굼부리는 모두가 농경지로 변했다. 어떻게 보면 처량하고 안타깝지만 슬기와 지혜를 앞세운 농민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밝은오름 탐방기-

차라리 먼 곳에서 바라본다면 소나무 숲만 보이기에 그저 낮은 등성의 오름으로 여기면 될 것을...... 안으로 들어가면 농지가 먼저 눈에 확 들어왔다. 넓다! 넓어도 너무 넓은 굼부리이다.​ 초지도 아니고 전형적인 밭이며 작지(돌멩이) 조차 없이 깨끗하게 단장이 되었다.

찾은 날도 트랙터를 이용하여 마무리 작업을 하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이 넓은 밭에 어떤 농작물을 재배할까. 너무 밋밋할 정도로 평평하고 비옥한 토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곱다! 고와도 너무 곱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농지의 전부를 통하여 확인을 하면 그 넓이를 가늠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더욱이 아직도 절반의 굼부리가 우측으로 더 있으니 얼마나 큰 면적이겠는가. 실로 방대한 분화구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중앙을 가로질러 돌담이 쌓아져 있었는데 개간이 이뤄지면서 구분을 한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개간의 상태가 비슷한 것을 감안하면 주인은 하나로 생각이 되지만 오래전에는 구획 정리를 했던 모양이다. 화구의 곳곳에는 산담까지 둘러진 묘지들도 보였다.

땅이... 밭이... 흙이... 너무 고와서 밝은오름이라 했을까. 더 들어가서 소나무 숲을 살피려 했지만 엄두를 못 냈다. 곱게 단장을 한 밭에 차마 발자국 하나를 남기기가 두려웠던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고 느끼며 벼화의 정도에 아쉬움을 느낄 즈음 입구에서 농사 용품과 관련이 된 페기물들이 가득 차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쪽에는 농약병 수집용 공간도 만들어져 있다. 설마 광활한 면적의 밝은오름 굼부리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것만으로 이 구성이 되었다면 다시 한 번 더 놀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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