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밝은오름(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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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밝은오름(해안)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7.11.05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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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337m 비고: 37m 둘레: 765m 면적: 33,180㎡ 형태: 말굽형

 

밝은오름(해안)

별칭: 벌근오름. 불근오름. 진테왓동산. 굽은동산. 명악(明岳). 적악(赤岳)

위치: 제주시 해안동 355-21번지

 

 

표고: 337m 비고: 37m 둘레: 765m 면적: 33,180㎡ 형태: 말굽형 난이도: ☆☆

 

숲을 이룬 환경을 포기하고 치부까지 내놓으며 망자들을 받아들인 화산체... 제주에 산재한 수 백 개의 오름들 중에 동명이 가장 많은 것은 민오름과 밝은오름이다. 이들은 각각 다섯 곳이며 각기 다른 성질이나 비슷한 화산체로서 다른 곳에 위치를 하고 있다.

상명리. 금악리. 명월리. 동광리. 해안동...... 물론 같은 맥락의 거문오름과 검은오름을 포함하여 숫자로 계산을 한다면 이들과 기준치를 같이 하겠지만 실상 거문과 검은오름의 개수는 다르게 구분을 하고 있다. 때문에 다섯 개의 동명오름은 위 두 명칭이 맞는 셈이다.

제주시 해안동을 제외하고는 우연히도 다 서부권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섯 곳 전부가 오름으로서의 가치나 산 체의 크기 등이 작은 데다 변화가 많이 이뤄진 상태라 거명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다. 밝은오름이라면 그래도 밝고 빛나는 정도의 외형을 그려볼 만도 하건만 막상 만나보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놈삐(무우)밭을 포함하여 농지나 촐왓으로 변한 곳이 있는가 하면 소낭밭과 덤불만이 쓸쓸하게 오름을 지키는 곳도 있다. 특히나 해안동의 밝은오름은 그 일대를 포함하여 전부가 공설묘지로 변하였다. 이러한 상황이라 밝은오름을 간다는 표현보다는 차라리 해안 공설묘지에 간다는 게 맞을 것 같다.

해안동 소재는 벌근(불근)오름 외에 진테왓동산이나 굽은동산으로도 부르며 한자로는 명악(明)이나 적(赤)악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37m의 낮은 비고(高)이지만 거의 열 배에 달하는 해발이 말해주듯 북향의 전망은 전반적으로 좋은 상황이다.

바다를 향한 북향의 말굽형 화산체이면서 굼부리를 지니고 있으나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모양새가 보름달처럼 환하다고 하여 명칭이 붙었다고도 전하며 오름의 흙이 붉은빛을 띤다고 하여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사실 공설묘지가 아니라면 한 밤중에 찾아와 보름달의 향연을 만날 수도 있을 법한 장소이다. 다른 맥락으로는 기슭과 낮은 동산이 잔디밭 같다고 하여 진테왓동산이라고도 부르는데, '진'은 길다를 뜻하며 '테왓'은 잔디밭을 일컫는 제주 방언이다.

 

 

-밝은오름 탐방기-

예전에도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현장 상황을 보고서 차마 흔적을 담을 엄두를 못 내고 포기를 했었지만 이번에는 애써 전반적인 상황을 살피고 흔적을 담는 과정으로 찾았다. 공설묘지로 변한 만큼 정상부까지는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 정상부에는 경방 초소가 있으며 높이와 상관없이 웬만한 날씨라면 북쪽의 해안까지 전망이 가능하다.

남북으로 산과 바다에 에워싼 밝은오름인 데다 인근에는 큰 숲이 없어서 전망의 가치는 훌륭한 편이다. 오름 전체가 묘지와 묘역으로 변한 상태이기에 이렇다 할 볼거리나 자연스러운 광경은 훔칠 수가 없다. 20만 평이 넘는 넓이를 곱게도 단장을 한 모습을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누가 설계를 한 것도 아니고 유명 디자이너가 꾸린 터도 아니련만 밝은오름의 중심부와 일대는 정교하게 묘역들이 들어서 있다.

묘역 주변임을 의식한 듯 개간을 거쳐 농지로 쓸만한 땅도 잡초들만 무성한 채 방치가 되어 있다. 문중이나 가족공동묘지로 구역이 정해진만큼 언젠가는 이곳들도 묘들이 들어서지 않겠는가. 경방 초소를 중심으로 반대편 방향을 향하여 눈을 돌리니 한라산 자락이 보였는데 선 채로 바라보는 자리도 오름이면서 공설묘지이다. 먼 바다로 눈길을 향하면서 애써 주변을 무시하려 해도 부질없는 짓이었고 곱게 단장이 된 곳부터 견고와 정성이 베인 묘역들은 차리라 공원이라는 게 어울릴 정도였다.

 

밝은오름이 이렇게 변하는 데는 옛 조상들의 슬기나 지혜도 한몫을 했으리라. 명당이나 그 터를 생각했기 보다는 장례문화를 중요시 여겼던 선조들의 고민도 따랐을 법하다. 마을을 벗어나 상여를 메고 가기에 너무 멀지 않은 장소를 찾은 것이 선택되었을 테고, 낮은 언덕이나 동산처럼 보이지만 이곳에 오르면 한라산과 바다까지 전망이 좋아 조상을 모시기에 적절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풍수지리나 다른 설은 물론이고 달리 명당을 운운할 필요가 없었을 것 같다. 공설묘지의 동서 방향으로 이동을 하니 시멘트로 포장이 된 농로가 나왔다. 수풀과 덤불들이 차지한 골짜기를 넘으면 농사를 짓는 현장도 보이지만 일부는 묘지로 선택이 되어 있다. 이제 해안동 밝은오름 일대는 망자들의 영원한 쉼터로 변모를 하는 모양이다.​

착한 밝은오름! 분화구. 기슭. 등성. 정상부..... 자신의 치부까지 아낌없이 다 받쳐 망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편안한 세상에 잠들도록 배려를 한 오름이다. 빼앗기기보다는 선택되었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너무나 착한 화산체가 아니겠는가. 씁쓸했다.

공설묘지를 내려오다 촐왓에 들어섰다.​ 건초지의 수확을 마친 허허한 밭이랑에 들어서니 제주의 보물인 한라산이 선명하게 보였다. 한동안 바라보며 마음을 추스르고 차량의 시동을 걸었지만 시멘트 포장로를 내려오는 느낌은 덜컹거림과 기우뚱거림이 우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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