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치병신..토산2리 알토산한집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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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치병신..토산2리 알토산한집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11.07 06: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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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민들이 정성을 하면 복을 주던 영급 좋은 신


토산2리 알토산한집당(알토산한집여드렛당)


위치 ; 표선면 토산2리 바닷가 동쪽 끝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속신앙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 토산2리_알토산한집당
◆ 토산2리_알토산한집당(디서문).

토산2리 '알당 여드렛당'은 '알토산여드레한집'을 모신 당으로 제일은 6월과 11월 8, 18, 28일이다. 치병신이며 이 당에서는 '시집가기전처녀'를 수호해 주며 당에서 액막이를 한다.

당에 갈 때는 메 3기를 가지고 간다. 원래 이 당은 토산2리사무소가 있는 메뚜기모루에 있었는데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토산2리 주민 일부가 다니며, 당의 형태는 해변형·신목형·지전물색형이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365쪽)


토산 여드렛당 신의 이야기 곧 이 당의 본풀이는 슬픔을 딛고 신으로 좌정하여 지역민들의 안녕과 부와 장수를 관장하게 된다.

신화는 다음과 같다.


신이 태어난 곳은 나주 영주 금성산으로, 그 마을에 목사가 부임하면 백일을 채우는 때가 드물었다.

양이목사는 “나를 목사 시켜주면 100일을 채우겠노라”고 자청하여 목사가 되었다. 양이목사가 삼헌관속 육방하인을 거느리고 행차하여 올라갈 때, 통인이 “이 곳은 영기가 세어서 말에서 내려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목사가 말하기를 “이 마을에는 토지관이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말을 타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말 발이 절었다.

말에 채찍을 다해 달리도록 해서 올라가보니 청기와 집 팔칸 집에 월궁 선녀 같은 아기씨가 반달 같은 용얼레기로 쉰다섯자의 머리를 빗고 있었다.

“어느 것이 귀신인가, 제 몸으로 환생하라” 갑자기 나타난 신의 본체는 아구리가 하늘과 땅에 붙은 큰 구렁이였다. 구렁이를 화살로 쏜 후 불을 질러서 태우니 금바둑과 옥바둑으로 변했다. 그 후 바둑돌은 행기포에 싸서 서울 네거리에 가서 떨어졌다.


제주의 강씨와 오씨는 미역 진상을 갔다가 이것을 주워서 임금님에게 상납하려고 했다. 내던지고 제주로 막 돌아오려고 하자 바람이 불어서 배를 놓을 수가 없었다.

점을 쳐서 연유를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이 난데 없는 보물을 선왕에 올려 굿을 하면 명주바람이 불어올 듯하다고 예언했다. 배에 싣자 바다가 잔잔해져서 배를 타고 제주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가 있었다.


금바둑은 월궁 시녀로 변신한 후 배를 타고 온평리 주전개에 배를 부쳐서 맹호부인에게 명함을 드렸더니 “이 지방 토지관은 하나이지 둘이 될 수 없다, 물도 내 물이요, 땅도 내 땅이요, 내 자손이 되여지니 어서 나고 나라” “어디 가면 임자가 없는 땅이 있겠습니까” “해돋이 방 저 토산에 가고 보라” 묵은 열룬이(구 온평리), 새 열룬이(신 온평리) 지나고 삼달리 황서국서 영기를 불러두고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하천리의 ‘개로육서또’가 탈상봉 중허리에 앉아 바둑장기를 두다가 월궁선녀 아기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남자로서 그냥 보낼 수 없다”고 하면서 뒤를 쫓아 토산으로 달려가서 아름다운 여인의 손목을 붙잡았다.

화가 나고 분한 아기씨는 “얼굴은 양반이로되 행실은 괘씸하다”고 하면서, 아기씨는 더럽고 부정한 놈에게 잡힌 손목을 그냥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하면서 장도칼로 싹싹 자르고, 토산 ‘메뚜기루’에 좌정했다.


그 곳은 좌정할 만 했다. 요왕국으로 가니 “어찌하여 날핏 냄새가 나느냐?” 하고 묻자, 사실대로 고한 후 “괘씸하다. 개로육서또의 말을 들었으면 앉아도 먹고 서도 먹을 년이.......”하면서 꾸중을 했다.

그리고 개로육서또를 세 번 부르자 토산 ‘알당’에는 연불이 나고 ‘고첫당’에는 신불이 나면서 연불과 신불이 언약을 했다.

하루는 오리들이 잘 날아든다는 연못 ‘올리소’에 빨래를 갔는데 느진덕정하님이 병신 도둑들이 ‘검은덕코지’를 거쳐 마을로 올라온다고 걱정을 했다.


바다 쪽에서 팔 한쪽과 다리 한쪽 없고, 혀가 짧아서 말을 못하는 놈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빨래를 걷어 제치고 포구를 넘어서자 동여맨 치마끈과 허리끈이 풀려 허우치며 새밭으로 들어가 숨었더니 도둑놈들은 뒤로 달려들어 연적 같은 젓통을 쥐고 좌우로 흔들어 아기씨를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 넋은 방아 찧던 강씨 집안의 아기씨에게로 갔는데, 이 아기씨는 마음이 만사 중에 흩어져서 일가방상을 몰라보게 되었다.


문점을 하자 심방이 배를 지어 연신맞이를 하라고 했다. 황기도치를 둘러메고 굴미굴산에 올라가서 백가지의 나무를 베어다가 엇비슥 비여서 배를 지어놓고 버섯, 유자, 고사리, 콩나물, 미나리, 전복, 우미, 청각, 천초를 배에 싣고 큰 굿을 하여 뒤맞이를 한 후 곧 병이 나았다.

이 신은 토산리에 좌정하여 열두 흉험을 주며 신앙민들이 정성을 하면 복을 주던 영급 좋은 신이 되었다.(해녀박물관)
《작성 041124, 보완 120119, 14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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