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 토기편 등 수습.. 광령1리 고인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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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 토기편 등 수습.. 광령1리 고인돌2호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7.11.2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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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혈은 상석 북쪽에서 1개가 희미하게 확인


광령1리 고인돌2호


문화재 지정사항 ; 제주도 기념물 제2-17호(1990년 5월 30일 지정)
위치 ; 애월읍 광령리 1611-1번지
시대 ; 탐라시대
유형 ; 고인돌

 

 

 

광령리 고인돌 1호가 있는 밭의 아래 밭과 경계를 이루는 2m 높이의 급격한 경사 경계면에 있다. 용담동 6호 고인돌처럼 상석 가장자리를 돌아가면서 잘 다듬은 판석형 지석을 병풍처럼 두른 형식이다.

원래 이 고인돌이 놓여 있는 위치는 완만한 경사면을 이루었을 것이나 경작지 조성시 위 밭과 아래 밭을 평평하게 고르느라 2m 정도 높이 차이가 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는 상석과 남쪽 지석이 위 밭의 경작 토지에 완전히 묻혀 있고, 북쪽 측면만이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상석과 판석형 지석으로 이루어진 석실 내부의 바닥면과 외부의 표토(表土)층 아래 드러난 토층(土層)이 동일한 높이를 이루며 같은 황갈색 점토층이라는 데서 분명해진다.

상석은 길이 250, 폭 205, 두께 55로 비교적 고르게 다듬은 장방형으로 장축은 정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이 장방형의 상석 가장자리를 따라 판석형 지석이 고여 있으므로 지석으로 이루어진 석실 또한 장방형이다.

지석은 전부 높이 70-80, 폭 55-60, 두께 8-13로 잘 다듬은 장방형 판석으로 동쪽, 서쪽, 남쪽에 똑 같이 각 3매가 서로 맞물리면서 고여 있고, 북쪽은 현재 지석 없이 개방되어 있다.

이것은 일단 지석묘를 축조한 후 북쪽으로 시신을 들이밀고 그 후에 지석을 끼워 맞추었기 때문에 쉽게 이탈된 것 같다.

지석묘 내부에서 다수의 무문경질토기편과 김해식 토기편을 수습하였으며 그 출토 위치가 대체로 지석 근처임은 다른 지석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성혈은 상석 북쪽에서 1개가 희미하게 확인된다.(제주의문화재 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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