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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준 기자의 제주올레탐방기"올레길, 나도 걷는다"
"하느님,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⑭(제주올레14코스 하프걷기)한림항-월령리 '바다와 함께..주인공은 비양도'
고현준 기자  |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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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7.12.03  19: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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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14코스를 거꾸로 걷는 날.

이날은 한림항을 따라 월령리까지 가는 여정이다.

지난 11월25일 오전 10시10분쯤 집에서 떠나 한림항에 11시15분쯤 도착했다.

지난주에 다녀왔던 비양도가 보이는 한림항..

비양도로 들어가려고 줄을 선 사람들이, 내가 갈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비양도로 들어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항구는 만원..고깃배들이 가득한 한림항은 언제나 다시 봐도 만원이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월령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한림항 쪽에서는 그렇게 맛있게 먹어봤다는 식당이 기억에 없는데.. 먹을 만한 곳이 여러 개가 생겨나 있었다.

토종음식점도 보이고 새로 생긴 칼국수집도 보인다.

   
 

한림항을 벗어나자, 이때부터 걷는 내내 14코스의 주인공은 늘 비양도였다.

월령리까지 가는 내내 비양도가 항상 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함께 펼쳐지는 그 광경은 빛이 날 정도였다.

이렇게 걸으면서 늘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깨달음 또는 진리라 말하는 도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걸으면서 그런 걸 찾으려는 것일까..

우리가 아는 한자 길 도(道)자에는 이런 질문에 답해주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겨져 있다.

해설에 따르면 이 길 도자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책받침변은 '머리를 휘날리며 걸을 착'이 아래를 받치고,그 책받침변에 '머리 수'가 합해져 도라는 글자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길 도의 한자에는 걸으면서 생각한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얼마전 읽은 노자 도덕경 해설서에 나온 이야기다,
도라는 글자 하나에 그런 심오한 뜻이 있으니 걸으면서도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걷다보면 생각하게 되고 자연히 도를 닦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기 때문이다.


한림항을 출발하자마자 처음 만난 유적지는 큰 길가에 비석이 놓인 비양도가 눈앞에 보이는 최영장군의 격전지였다.

   
 

   
 

‘명월표 수전소와 최영 장군의 격전지’라는 이름이 붙은 이 비석에는

이곳은 옛 명월포의 소재지로 동쪽의 김녕과 같이 제주목 관내로서 중요한 행정 교육 국방의 요충지였다.
명월마을을 안고 흐르는 명월천 하구를 명월포라 하며 지금은 옹포천이라고 한다.


1270년(원종11) 삼별초군이 이 포구로 상륙하였다.
1374년(공민왕23) 8월에 최영장군이 전함 314척에 군사25605명을 싣고 추자를 거쳐 명월포로 상륙,목호를 토벌하였다.


조선시대에 좌방 3개처인 화북포, 조천포, 어등포와 우방 4개처인 벌랑포, 도근천포, 애월포, 명월포는 각기 수전소(水戰所)가 설치되었는데 이 명월포에도 전선을 배치하고 군인을 주둔시켰으며 또 물류를 수송하던 중요한 요새지였다.


후일 농토로 개발하면서 명월포는 토사가 밀려와 포구로서 쓸모 없어 수전소도 없어졌다는 설명이 쓰여져 있다.

 

이곳 조간대는 비양도와 함께 특이한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용암이 흘러 만들어놓은 천연포구였다.

   
 

   
 

이 길은 곧 옹포리마을로 이어진다.

옹포리는 1901년 이 마을 지형이 항아리와 같다는 뜻에서 옹포리로 개칭했다는 안내문도 보인다.

마을길을 따라 계속 차도를 계속 걸어 나오니 다시 협재리를 알리는 석비가 서 있다.

하얀모래사장이 아름다운 협재리는 마을 곳곳이 개발되며 신구가 뒤섞여 묘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조그만 협재리 마을포구를 지나니 애메랄드빛 바다가 나타난다.
이길은 곧 협재해수욕장으로 인도한다.
협재해수욕장에는 초겨울 겨울바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다.

   
 

   
 

   
 
   
 

 

여름이 아니어도 바다는 늘 사람을 부르는 모양이다.

모래사장을 지나니 모래가 만든 작은 모래산이 이어진다. 올레길은 이 모래산 능선을 따라 걷도록 만들어져 있다.

협재해수욕장에서 금능해수욕장까지의 모랫길은 모래산 능선을 따라 걷는 특이한 길이다.

이제는 금능..금능해수욕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비양도를 배경으로 한 금능바다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돌하르방도 해녀상도 바다도 비양도도 그 모두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한다,

바닷길을 따라 금능마을로 들어서자 마을 돌담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이 계속 걸려있다.

   
 

   
 

   
 

나는 이곳 입구 단물깍이라는 작은 공원에 놓인 그네에 앉아그네를 흔들며 잠시 앉아 있었다.
이곳에 14코스 13km구간표시가 있다. 전체길이가 18.9km이나 나는 5.9km를 걸어온 셈이다.

조그만 금능포구를 지나는데 한사람이 열심히 포구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마을이장님인가 했다.

그는 서울에서 건축일을 하다가 금능리에 정착해 살고 있는 최현쳘 씨였다.

포구에 쓰레기가 쌓여 이를 치우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명함을 건네자 그는 제주도의 환경문제에 대해 열을 올리며 내게 제주도의 환경문제에 대해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요즘 제주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아주머니들이 모여 깨제바(깨끗한 제주만들기) 운동을 한다”며 “환경을 깨끗하게 살리자”는 모임이 있다고 소개해 줬다.

특히 “제주바다는 물론 봉성리 중산간에 쓰레기를 버리는 등 제보할 것이 많다”고 호소하며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것이냐”며 걱정했다.

 

이처럼 요즘은 누굴 만나건 환경문제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한다.
그로부터 여러 가지 환경문제에 대한 조언과 정보를 듣고 길을 다시 나섰다.

 

   
 

금능마을을 지나는 해안길에는 선인장이 가득 하다.

제주도 어디나 널려있는 선인장들..
월령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일까..

이곳 해안올레길은 김녕지역에서나 볼수 있는 튜뮬러스 용암이 가득 하다.

비양도와 더불어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해안길을 따라 걷는데 저 멀리 해상풍력발전시설이 눈에 들어온다.
갈대와 어우러지니 그 바람개비도 그림이 된다.

   
 

   
 

   
 

월령리까지 가는 해안길은 돌로 만들어진 길이라 걷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이 길을 다 나오자 월령리포구가 나타났다.

이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오늘의 목적지가 나타난다.
선인장과 용암돌과 바다가 만들어놓은 아름다운 산책길을 걷는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
명월리를 상징하는 산책길 중간에 14코스 중간포스트가 놓여있다.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2시 40분경이었다.
딱 3시간을 걸은 셈이다.

이제 바다를 따라 걷는 구간은 당분간 없다.

나머지 구간은 숲길과 들길을 주로 걸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중산간지역은 그동안 또 많이 변했으리라..

관조하듯, 그런 일들을 이제는 그저 바라 볼수 밖에 없다.

 

   
 

이날 버스를 탔을 때 만난 풍경이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버스에 많이 타고 계셨다.

한 어르신이 큰소리로 말한다.

"나 다음에 내릴 거우다"

운전기사가 말한다.

"거기 벨 누르십서"

"벨이 어신디..?"

"무사 어실 말이꽈. 자리마다 다 있수다"

그러자 어디선가 누군가 벨을 눌렀다.

한 어르신이 운전석 쪽으로 걸어나갔다.

"어디 감수과.. 내려야 헐건디.."

"아..하차헐 때 교통카드를 대란 허난 그거 대래 간.."

버스를 내리면서 다시 소리친다.

"고맙수다.."

"예.. 조심히들 가십서.."

제주도의 인간미가 넘치는 버스안 풍경이었다.

 어르신들도 이제 서서히 교통체계 개편에 따른 불편함에서 벗어나 서서히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는 것일까..

그 정경이 너무 풋풋한 정이 넘치는 그런 느낌이 들었던 날이었다.

 
   
 

   
 

   
 
   
 
   
 

   
 
   
 

   
 

인생열전(박영만 저)에서 열두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샤를르 드골이다.

드골이 집권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 대통령 관저 엘리제궁의 침실문에는 다음과 같은 엄숙한 명령문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거든 즉시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나 드골을 깨워라!”

자신과 조국에 대해 확고한 긍지와 애국심으로 가득 차 있던 샤를르 드골은 ‘프랑스는 위대한 국가여야 한다. 위대하지 못한 프랑스는 프랑스일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내가 곧 프랑스’라고 말할 만큼 신념에 가득 차 있던 인물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드골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 어떤 남자가 ‘그렇게도 의지와 신념이 강한 사람이 신에게 기도하다니 도대체 무슨 기도를 하나 들어보자’며 다가가 들어 보았더니 그는 이렇게 기도하더라는 것이었다.

“하나님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프랑스에 관한 일은 모두 제게 맡겨 주십시오”

드골은 1890년 릴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철학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생사르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필립 페탱 대령이 이끄는 제33보병연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베르텡 전투에 참가하여 세 번씩이나 부상을 입었지만 살아났고,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2년8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5회에 걸친 탈출을 시도하는 등 불굴의 정신을 보인 군인이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드골은 대령으로 전쟁에 참가, 탱크 여단장이 되어 많은 전공을 세웠다.
...(중략)
그러나 독일군의 총공세로 전세가 불리해지고 레이노 수상의 뒤를 이어받은 페탱원수가 독일과의 휴전을 모색하자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영국에서 파리 함락의 비보를 들은 그는 프랑스 망명 임시정부를 수립하여 고국 동포들에게 독일과 계속 싸을 것을 촉구하는 한편, 프랑스 국내의 레지스탕스 조직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독일에 대해 계속 항전하였다.

..1958년 알제리문제를 계기로 다시 정계에 복귀한 뒤 제5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프랑스 재건에 힘썼지만 1969년 자기가 제출한 헌법개정안이 부결되자 은퇴하고 조용한 평민 생활로 돌아갔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장례법에 대해 엄한 유언을 남겨 놓았다.


‘화려한 의식은 하지 말라. 명사와 귀빈을 초청하지 말고 다만 조용히 마을묘지에 묻어달라’는 것이 그의 유언이었다.

유언대로 그의 유해는 떡갈나무 관에 넣어져 시민들에 의해 마을 묘지의 사랑하는 딸 무덤 옆에 매장되었다.

그의 무덤 묘비에도 평소 원했던 대로 다만 그의 이름만이 새겨졌다.


‘챨스 앤드류 조셉 메리 드 셔를르 드골(1890-1970)’

무덤이 화려하다고 해서 무덤 아래의 주인공 마저 화려한 것은 아니다.세계역사상 피라미드만큼 화려하고 웅장한 무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 묻힌 소년왕 투탕카멘은 단지 미라로서만 주목의 대상일 뿐이다.


..셔를르 드골이 이름 없는 마을 묘지의 초라한 무덤 아래 묻혔다고 해서 그가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긴 정신마저 초라하게 묻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라미드보다도 굳건했던 그의 의지와 뜻은 오래도록 역사에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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