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칼럼)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위기로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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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 위기로 인식해야
  • 허창옥
  • 승인 2017.12.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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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옥 제주자치도의원

허창옥 제주자치도의원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이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가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5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를 권고하였고, 미 정부가 이를 수용하면서 한국산 세탁기에 고율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세탁기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은 자국 업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 이러한 상황은 고스란히 한·미 자유무역협정 개정협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에 최근 통상교섭본부가 국회에 보고한 모습을 보면서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통상교섭본부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앞두고 경제적 타당성을 분석하여 결과를 보고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민감 분류 품목군의 개방과 자유화가 촉진되더라도 해당 업종에 미칠 피해는 미미하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 필자는 이 보고서가 당초 개정협상에서 농업분야는 넘어설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고 강조해온 통상당국의 답변과는 달리 농축산물을 협상 대상으로 다루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즉, 미국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농산물 시장의 개방속도를 앞당기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지난 2012년 발효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총1,531품목의 농산물이 개방되었는데, 이 중 37.7%인 577개 품목이 중장기 관세철폐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는 오렌지, 보리, 닭고기, 달걀, 돼지고기와 소고기 등 우리 제주지역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는 품목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매년 일정부분 관세가 감소하면서, 개방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개방에 따라 우리 농업에 직접적인 피해는 물론, 수치화하기 어려운 간접 피해에 고령화 문제와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 인력문제 등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특히 제주지역의 경우, 영농비용의 증가로 농가부채는 증가하고 있는 반면, 부채로 지어진 비닐하우스의 소득은 점차 감소하고 있어서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이득이 대기업 등 일부산업에 집중되는 반면, 협정 시행초기 논의되었던 이득 공유화 방안은 유야무야된 지 오래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민감 분류 품목들은 15년 이상의 장기 관세철폐와 저율할당관세, 계절관세 적용 등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협상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통상교섭본부에서 이러한 품목들의 관세철폐 시기를 앞당겨도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니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구체적인 대응방안이나 전략을 마련할 새도 없이 국가차원에서 추진되어 온 자유무역협정의 수순을 이번 개정협상에서 되풀이 하려는 정부의 행태는 납득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정부의 말만 믿고 기다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정부가 국내농업 보호를 위해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강조한 대책들이 실효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방속도를 높이게 되면 대한민국과 제주의 농업과 농촌의 붕괴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논어에 견위수명(見危授命)이라는 말이 있다. 위기를 보면 목숨을 걸고 행동해야 극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생명을 걸 정도로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만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대한민국과 제주 농업의 안위를 결정할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앞두고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발표에만 귀를 기우리고 기다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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