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민간신앙..와흘리 한거리하로산당(노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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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민간신앙..와흘리 한거리하로산당(노늘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1.24 0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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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지권장은 글 모르는 사람이 말 못할 사연 신에 아뢰는 솟장(訴狀)


와흘리 한거리하로산당(노늘당)

 
민속자료 제9-3호
위치 ; 조천읍 와흘리 제2우회(중산간)도로 와흘 마을 입구에서 동쪽으로 400여m 지점에 있다.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간신앙(神堂)
위 사진 ; 서정승따님아기 신위
아래 사진 ; 신목

 

▲ 와흘리_한거리하로산당굿

▲ 와흘리_한거리하로산당

 

마을 옛이름을 따서 노늘당이라고도 한다. 줄기 끝이 뿌리보다 더 밑으로 쳐질 만큼 큰 팽나무 신목이 堂의 분위기를 한층 위엄있게 해 준다.

당은 마을 사람들이 깨끗이 관리하고 있으며, '백조도령'과 '서정승따님'의 신위 위패가 조그만 비석으로 세워져 있다.

마을에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풍년을 기원하고 본향당신에게 신년하례를 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는 '신과세제'를 음력 정월초에 이 곳에서 치른다. 당의 경내에 있는 본풀이 비석에는 다음과 같이 堂神의 내력이 적혀 있다.

송당 소천국의 열여덟 자식 중에서 열한번째 백조도령님이 성장하여 한라영봉에서 논흘일문도성책을 맡아 사냥을 하면서 내려오다가 기시내오름에서 발도 왼발, 손도 왼손, 귀도 왼귀, 눈도 왼눈, 왼발로 뛰며 다니는 선씨(玄氏)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선씨할아버지가 백조도령에게 '사람입니까, 신입니까?' 여쭈니 백조도령은 '신이며 논흘일문도성책을 맡아 왔노라.' 하였다. 선씨할아버지는 '그것은 아니됩니다.

한거리당에 왕대윗성가람실 밑에서 태어나신 서정승따님이 자손에 장적차지, 호적차지, 생산물고를 잡아 있어 안됩니다.' 하였다.

백조도령이 '그 여자는 남편이 있느냐?'고 묻고 과수며 일곱 애기를 혼자 양육함을 알고 선씨할아버지에게 중매를 부탁하고 선을 보아 한거리당에 같이 있게 됐으나 서씨부인은 자손들이 돝을 잡으면 생머심귀퉁어리 알아구리를 받아먹으니 깨끗치 못하다 하여 백조도령은 서씨부인에게 바람 아래로 내려 동백자리에 좌정케 하고 백조도령은 웃판상단으로 좌정하였다.(현장에 있는 본풀이 비석)

본풀이(1) ; 웃손당은 어멍국 알손당은 아방국, 아들애기 여레덟, 딸애기 스물여덟, 일가방상 삼백육십 가지가지 벌어진 신도본향(神都本鄕)한집(大主). 손당머리 열쳇 아들 백조도령이 무식만 피하여 옥항에 올라가 삼천장 베릿돌 일천장 먹을 갈고 아름 가득 금책 좀이 가득 금붓 공부를 하고 백조도령이 인간에 내려 할로양주산으로 물장오리로 테역장오리로 민오름 굼부리로 큰지거리 작은지거리로 바농뱅뒤에 앉아 천리를 보고 사 만리를 보고 차차 알레레 실러내려 웃노늘 개머리동산에 아잔(앉아서) 좌우쪽을 살펴보단 기시내오름 상상봉오지에 올라가 외대바지 선씨(玄氏)할으방 시난 그 할으방신디 말을 함을 '노늘 한거리 만년 폭낭 아래 좌정한 게 누게냐?' '서월 서정승 따님애기 좌정하였습네다.' '이 명암을 그디 갖다 주라.' 명암 한 장을 서정승 따님애기신디 갖다 주난 '어서 가차이 들어옵서.' 허난 백조도령은 말을 하되 '우리 서로 부베(夫婦)간 무어 같이 살자.' 그영허연 노늘 한거리 만년 폭낭 알로 좌정하여, 동니에 웃어른덜 다 청하여 '우리 일로 좌정할 테이니 정월 열나흘날 대제일 하여 달라. 칠월 열나흘날 대제일 하여 달라.' (봉개동 심방 김만택)

본풀이(2) ; 손당당 열한쳇 아들로서 사농놀이 댕기단 기시내오름 오라 아잔 좌정하고 보니 한거리 검폭낭 알 큰도부인이 좌정하여 이서. 최씨 외대바지 할으바님안티 '중매를 하여 줍센.' 명암을 드리니 최씨 외대바지 할으바님이 그 명암을 받아 큰도부인안티 간 전하니 '애기마을 상마을 노린족달 한족달 서족달을 받아 먹읍네다.' 먹는 음식 말을 허연 '어떤 일로 이걸 먹느냐?' '어느 애긴 낳젠 허민 입인덜 아니 구쁩네까?' 그영 하니 손당당 열한쳇 아덜은 큰도부인신디 '바람 알로 좌정하라.' 허연 올레 삼천백매 일만초깃발을 불러오던 신당한집. (삼도동 심방 김오생)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 365∼366쪽)

당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지전과 물색, 명실이다. 지전은 남신당에나 여신당에 공통으로 걸려 있지만 물색과 명실은 오직 여신(女神)이 상주하고 있는 당에서만 볼 수 있다.

① 지전(紙錢) ; 지전은 저승 돈이다. 굿을 할 때 보면 〈저승 돈은 지전, 이승 돈은 금전〉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당에 가면 창호지나 속지 등을 오려 구멍을 일정하게 뚫은 종이를 나무에 걸어놓고 온다.


그냥 백지를 걸어놓은 것도 있다. 글 모르는 사람들이 백지를 가슴에 문질러 소원을 빌고 신목 가지에 걸어 둔 것이다. 이 백지는 저승 돈이 아닌 백소지권장이다.

백소지권장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말 못할 사연을 신에게 아뢰는 솟장(訴狀)의 일종이다. 백색의 한지인 소지를 가슴에 대고 소원을 빈 뒤 나뭇가지에 매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소지를 제단 주변에 나무에 매달아 놓는 것이 많아졌다.


세월이 흐르면 퇴색한 것과 새 것이 어우러져 저승의 돈 다발이 고목 밑에 치렁치렁 걸린다. 묵은 정성과 새 정성이 주기적으로 쌓이면서 공존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 신의 몸이라는 신목에다 정성의 다발을 걸어 두었으니 정성을 드린 만큼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② 물색(物色) ; 물색이란 3색의 옷감을 걸어놓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인간이 신에게 바치는 옷감이다. 당집이 있는 경우에는 옷감으로 직접 고운 한복을 지어 바치는 경우가 많다.

깨끗하고 고운 여신을 모신 당, 주로 축일당(丑日堂)이나 칠일당(七日堂) 계통의 산육농경신(産育農耕神)의 당에 고운 물색이 걸린다. 이렇게 해마다 모아진 물색들은 신의청소제(神衣淸掃祭)라고 하는 〈마불림제〉 때 꺼내어 말린다.

이 당에서는 서정승따님 신위를 모신 쪽 나무에 엄청나게 많은 물색이 걸린다. 옷감을 그대로 나무에 걸어 묶기도 하고 치마 저고리 모양을 지어서 걸기도 한다.


보통 사냥을 하는 거친 남성신이 좌정하고 있는 당에는 물색이 걸리지 않는다. 남성신에게도 물색과 같은 작은 조각 옷감이 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팔찌거리(활을 쏠 때 소매를 걷어 매는 띠)를 바치는 것이라 한다. 이 당에는 팔찌거리가 백조도령 신위 옆 동백나무 등에 걸려 있다.

③ 명실(命絲) ; 명실은 실타래를 지전이나 물색과 함께 신목에 걸어 놓는 실이다. 삼싱할망(産育神)에게 비념을 할 때, 아기 낳기를 원할 때에 명실을 올린다.

이는 실처럼 길게 명을 이어 달라는 유감주술(類感呪術)이다. 때문에 명실이 걸려 있는 당은 아기를 보살펴주는 당, 생명을 이어주는 산육·치병신의 당이다.

주로 '일뤠할망당'이 많다. 명실이 걸려 있다는 것은 인간이 신에게 '생명을 이어 주십시오' 하고 간절하게 말하는 것이다.

김순옥 심방이 남편인 고(故) 문성남 심방의 뒤를 이어 메인심방으로 굿을 집전하고 있다.

《작성 050104, 보완 16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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