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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준 기자의 제주올레탐방기"올레길, 나도 걷는다"
"석자 추련검, 십년동안 갈고 닦았노라“(하프올레걷기)섯알오름-송악산-하모체육공원,아름답고 숭고한 길..
고현준 기자  |  kohj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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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8.01.28  18: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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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전,  올레길에서 우연히 만나 자유칼럼클럽을 소개해준 고영회 대표(변리사,기술사,전 변리사협회 회장,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가 제주에 일 때문에 지난 26일 오셨다가 연락을 해 와 서문시장에서 저녁을 같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 왔다가 그날 돌아가는 바쁘고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고맙게도 짬을 내 그동안 고마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제주흑돼지를 먹고 싶다고 해서 함께 내려온 신현기 (주)야후종합건축사 사무소 대표이사와 같은 회사 임동주 건축사도 함께 한 자리였다.

서울에서도 제주흑돼지 식당을 자주간다는 임 건축사는 서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그곳 사장님과 서문시장 식당주인이 서로 아는 관계라 전화를 바꿔주며 대화하게 할 수 있도록 주선해줘 화기애애한 자리가 됐다.

“올레를 걷고싶지만 시간이 없어 제주에 자주 오지 못한다”는 고 대표는 "나를 만났던 올레길을 걸을 때는 4일간 휴가를 받아 올 수 있었다“며 ”여름에 또 한번 와야 하겠다“고 말했다.

“왜 올레길을 혼자 걷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올레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홀로 걷는 그 시간이 실은 더 좋다”고 말한다.

고영회 대표도 말했다.

올레길을 궁금해 하는 동석한 분들에게 “올레는 혼자 걷는 게 좋아”라고 전하기도 했다.

올레길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이 또다른 인연과 만나는, 좋은 시간이었다.

   
 

지난 20일은 11코스를 걷는 날이었지만 연말에 모인 카네기모임에서 “내년에는 좀 뜻있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1월부터는 매달 올레를 걷자”는 약속이 돼 처음 함께 올레를 걷는 날이었다.

시간이 되는 사람만 참가하여 함께 걷기로 한 이날은 회원 7명(강여임 강철승 김희 변정희 조계출 좌은정) 중 1명은 출장(강철승)으로, 1명은 가족여행(김희)으로, 2명(강여임 변정희)은 일이 많아 4명이 빠져 3명이 함께 올레를 걷게 됐다.

아침 9시에 제주시 출발점인 한라대학교 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모임에서는 두 번째 함께 걷는 올레길이었지만 그래도 가장 멋있는 코스를 걷고 싶었다.

어차피 지금은 대정쪽으로 가는 올레길을 걷는 중이니 송악산이 있는 10코스를 먼저 걷기로 결정했다.

송악산으로 가는 하프코스의 시작은 섯알오름주차장..

길을 달려 섯알오름으로 향했다.


오전 9시56분경 섯알오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이 파랑새(최평곤 작)라는 9m에 달하는 커다란 소녀상이었다.

   
 


동학농민들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얻어 대나무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파랑새를 설치했고 알뜨르비행장의 풍경, 바람과 조우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설명이 쓰여져 있었다.
다크투어리즘의 상징처럼 커다랗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옆에는 바람의 작가 김해곤의 ‘한 알’이라는 깃발작품이 바람과 함께 크게 나부끼고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부는 이곳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한 장 남겼다.

드디어 하프코스를 걷기로 한 당초의 일정이 시작됐다.
백조육손이 함께 묻혀있는 가슴아픈 사연이 깃든 섯알오름 학살터를 한바퀴 돌았다.

이곳이 비극은 너무도 가슴이 아픈 일이라 글로 남기지는 못한다.
농로를 따라 송악산을 향하는 길..
그곳에는 또 일제 고사포진지가 있다.

   
 

   
 

   
 

   
 

이날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 해설을 듣고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지역에서 온 전교조 교사들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 지역 다크투어리즘은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동굴진지부터 섯알오름 일제 고사포진지와 동굴진지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까지 이어진다.

섯알오름에 올라서서 바다를 향해 보니 한라산과 산방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길은 송악산 뒷길로 이어지고 이곳을 올라가는 동안 영어교육도시 학생들이 쓰레기봉지를 들고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며 내려오고 있었다.

길은 해안절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송악산 산책길로 이어졌다.

이곳은 언제 봐도 아름답기만 한 길이다.

자연을 잘 살리면서 테크를 만들어 사람들이 걷고 보며 편안하게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길을 만들어놓았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눈앞에 펼쳐지는 이 송악산 둘레길은 자연이 만들어 우리에게 준 아름답고 거대한 선물이다.

   
 

   
 

   
 

둘레길 데크를 걷는 많은 사람들..

아마 제주에서 이 정도 길을 만나기가 쉽지는 않을 터..
모두 감탄의 말을 하며 지나쳐갔다.

99봉이 있다는 송악산은 살펴보니 그 이상도 더 될 것처럼 웅장하게 다가온다.

가는 곳마다 절경이다.

길고 긴 송악산길을 따라 송악산 입구로 나왔다.
길은 송악산해안 일제동구굴진지로 이어졌지만 ..이제 그 안으로 들어가 볼수 없도록 막혀 있었다.

마라도로 떠나는 배가 곧 출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마라도로 가는 배로 올랐다.
우리는 잠시 이곳에서 쉬며 언젠가 타고 가봐야할 그 배를 바라보았다.

   
 

   
 


이어진 길은 예전에 이 지역사람들이 생명수로 마셨다는 산이물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만들어놓은 이곳 산이물은 쓰레기로 가득했다.
누가 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할까..

폼만 그럴 듯 할뿐..
아무 의미도 없는 생명수터로 남아버렸다.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리나는 표지가 붙은 해안길을 따라 걷게 했다.

산방산을 바라보며 걷는 이 길은 사실 가장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한다 해도 괜찮을 정도의 수준급을 자랑한다.

길도 길이지만..산방산과 어우러진 바다. 그리고 그 색깔..
그 길에는, 이제는 사람이 발길을 하지 못하는 제주 사람발자국과 동물발자국이화석 산지가 있는 곳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길은 가는 곳곳 역사의 숨결이 또는 인류의 삶이 함께 살았을 듯 솟구친다.

형제섬이 보이는 이곳에서 우리 일행은..이 길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기로 했다.
최남단 커피를 볶는 집이라고 소개된 이곳은 많이 알려진 유명한 곳인지 손님이 엄청 많았다.
실내에 있는 꽃나무에도 커피원두가 놓여져 있을 정도였다.

이곳을 나와 다시 걷는데..
곧 종점에 도착해야 하는 길 사계리로 이어져야 하는데..길은 용머리해안쪽이 아니라 산방산 뒷길로 안내했다.

아무리 걸어도 용머리해안이나 화순해안쪽이 아니었다.

산방산을 거의 다 돌았을 때 두사람이 앞에서 걸어왔다.

어디서 오느냐고 했더니 화순해수욕장에서 출발했단다.

얼마나 걸었느냐고 물으니 40분 정도 걸었다고 한다.

40여분 정도면 화순해수욕장에 도착할 수 있다니 우리는 힘을 내기로 했다.

이 지역은 지금 각종 팬션 및 주택공사가 한창이었다.

여러 곳에서 이런 공사들이 많은 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주슴길이라는 화순곶자왈 탐방로 숲길을 지나니 화순으로 가는 길이 나타났다.

화순해수욕장을 내려다보니..
이곳에 큰 항구가 하나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른 아름다움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거대한 항구..
제주도에 알아보니 관공선 부두란다.
해경부두가 만들어진다고 하더니..


이곳은 서귀포지역 해경과 어업지도선 등이 이용한다고 한다.
모래사장은 조금 남았지만..해수욕장이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곳 저곳에서 엄청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를 바라보는 히프를 형상화한 돌의자가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제 이곳은 영원히 해수욕장이 아니다.

올레안내소에 물어보았다.

"올레코스가 언제 바뀌었느냐"고..
"몇 년전 휴식년제로 바뀌었는데..공사가 시작되는 바람에 다시 이곳으로 연결하지 못했지만..공사가 끝나면 다시 연결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만들어지고 화순에 해경부두가 만들어지고..성산지역에 제2공항 계획이 세워지고..

제주도는 어쩌면 이미 군사기지화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몰려왔다. 
이리 일행은 이곳에서 종점스탬프를 찍었다.
시간은 14시29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식당으로 가다가 남은 거리를 보더니 조계출 선생이 “남은 거리가 1.6km 밖에 안 남았으니 나머지를 다 걸어버리자”고 제안했다.

“오면서 이것저것 먹었더니 배도 안고프다며 나머지 구간을 다 걷고 나서 점심겸 저녁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좌은정 선생은 바로 그러자고 했다.

모슬포항이 있는 하모리까지 예상대로라면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우리는 섯알오름로 향하던 택시를 하모리로 돌렸다.

하모체육공원에서 스탬프를 찍은 시간은 15시26분..

우리는 다시 출발점인 섯알오름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모해수욕장을 지날 때 한 부부올레꾼과 만났다.
그들은 아까 송악산 들레길에서 사진을 찍어줬던 교사부부였다.

"제주에 온 김에 올레를 걷는데 아주 좋다"며 만족해 했다.

   
 


이들을 뒤로 하고 수선화가 핀 대로변을 걷는데 ..길을 잃어버렸다.

수개의 밭을 지나면 곧 닿을 것 같은 섯알오름주차장이 저 멀리 보였다.

우리는 밭을 모두 건너가 출발지로 가기로 했다.
맹지로 이뤄진 드넓은 밭길을 따라 걷는 길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흙을 따라 걸었다.

고생 끝에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섯알오름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16시47분..

어쩌면 빠른 시간에 10코스를 모두 걸을 수 있었다.
동료가 함께 한다는 것은 올레길의 거리도 좁혀주었던 것 같다.

이날 참가하지 못한 회원들에게는 가는 곳곳 사진으로 보내주며 우리팀의 움직임을 알려주었고 저녁식사로 갈치조림을 아주 맛있게 먹는 시간도 가졌다.


올레를 걷는 일도 누군가와 함께 가면 팀이 되고 또 팀웍을 만들게 된다. 가끔은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할 때 다수의 의견이 존중되기 때문에 더욱 그런 의미를 갖는다

 하프코스가 아니라 이날은 10코스를 모두 걸었다.

나는 일주일이라는 시간과 함께 한꺼번에 많은 것을 번 셈이다.

 

   
 

인생열전(박영만 저)이 17번째로 소개한 인물은 임경업(1594-1646)이다.

임경업은 조선 중기의 장군으로 본관은 평택이고 자는 영백(英白), 호는 고송(孤松)이다.
그는 이괄의 난때 공을 세워 이름을 떨쳤고,대외적으로는 친명배청을 강력하게 주장한 인물이다.


그의 친명배청사상은 청나라를 오랑캐로 여기고 국교를 맺지 않으려 한 조정과 같은 입장이었다.
하지만 기울어가는 친명정책은 그에게 오히려 불운이었다.


조정에서도 김자점같은 친청주의자 때문에 보호받기 어려웠고, 명나라 또한 세가 기울어 임경업의 입장을 비호할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1637년 가도에 주둔한 명나라 군사를 치기 위해 청나라가 조선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자 수군장에 발탁된 임경업은 명나라 장수와 내통하는 등 온갖 수단과 속임수를 동원하여 서로 희생자 없는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명나라 장수 홍승주가 청나라에 투항하여 그동안의 실상을 낱낱이 실토하니, 청나라는 즉시 임경업을 체포하여 자기네 나라로 압송해 줄 것을 조선 조정에 요구했다.


결국 청나라로의 압송이 불가피하게 된 임경업은 분연히 일어서서 이렇게 외쳤다.


“남아 대장부가 헛되이 살 수 없는데 어찌 까닭없이 저들의 뜰에서 죽겠는가? 명나라로 도망쳐 원수를 갚겠다”

그리고는 압송도중 금교역에서 도망쳤다.
그는 회암사의 승려로 변장하여 명나라 상인 무금의 도움으로 드디어 명나라에 도착해 4만의 군사를 지휘하는 평로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북경을 함락한 청나라는 남경까지 수중에 얻음으로써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청나라는 뜻밖에도 임경업의 재능과 지략을 아껴 그를 사면시켜 주었다.


하지만 오히려 조선의 김자점을 비롯한 간신들이 그를 다시 붙잡아왔다.
그리고 임경업을 심기원의 옥사와 연관시켜 역모의 죄를 뒤집어 씌웠다.


마침내 임경업은 1646년 6월 ‘조선을 배반하고 명나라에 들어가 국법을 어긴 죄목’으로 모진 매를 맞고 숨을 거두었다.

의리와 명분에 투철했던 그는 우국충정으로 병자년의 치욕을 갚고자 했으나 무능한 조정의 알력으로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다.

그가 죽던 날 분노한 백성들은 어버이를 잃은 양 비통한 눈물을 흘렸고, 그의 시신은 고향인 충주 달천 선영에 안치되었다.


그후 숙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관직이 회복되었고, 정조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도록 하는가 하면, 직접 관직과 이름을 적은 비명을 지어내렸다.


또 영조가 하사한 ‘충렬사’라는 편액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으며, 기념관에는 그가 늘 차고다니던 추련(秋蓮)이라는 명검이 전시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시가 새겨져 있어 그의 애틋한 뜻을 전하고 있다.

“세월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으니
한번 나서 한번 죽는 것이 여기 있도다.
장부 한평생 나라에 바친 마음
석자 추련검을 십년동안 갈고 닦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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