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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이의 오름이야기제주도의 모든 오름(가나다순)
[오름이야기]살핀오름표고: 1,076.3m 비고:76m 둘레:1,224m 면적:112,029㎡ 형태:원추형
홍병두 객원기자  |  jejulovetou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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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8.02.07  00: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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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핀오름

별칭: 살핀오름

위치: 애월읍 광령리 산 183번지

표고: 1,076.3m 비고:76m 둘레:1,224m 면적:112,029㎡ 형태:원추형 난이도:☆☆☆

 

   
 

주변을 살필 여건은 안 되지만 여몽항쟁과 관련하여 제주의 역사를 지닌 화산체...

 

행정구역 상으로는 애월읍에 속하면서 붉은오름과 삼형제오름 등과 이어지는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일반인의 무단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화산체의 동쪽으로 굼부리의 흔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식별이 어려운 상태이며 원추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오름의 명칭과 관련하여 특별한 유래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다. 삼별초 항쟁 당시 김통정 장군과 그의 휘하 병사들이 이곳에 올라서 주변 지역을 살폈다고 해서 ‘살핀’오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한 만큼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의 항파두리성 일대를 비롯하여 상잣길 주변과 붉은오름 전투가 이어지던 즈음에 이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따라서 대몽항쟁이 진행되던 시기에 그들과의 격전을 치르고 마땅한 진지 구축을 위하여 선택이 되었던 장소 중 한 곳이라 할 수 있다.

당시는 1100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한라산 방향으로 계속 이동을 하는 동안 작전 등을 하는데 있어서 오름과 숲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주변을 전망하고 감시를 하는데 있어서 최적의 조건이라기보다는 이곳을 마땅한 장소로 선택한 것 같다.

전망만 생각을 한다면 격전을 치렀던 붉은오름 외에도 노로오름이 더 좋은 조건이지만 살핀오름에 진을 친 것은 당시의 급한 상황을 상상하게 한다. 불과 76m의 비고(高)가 말해주듯 과거나 지금이나 주변을 자세히 살필 정도의 입지는 아닌 만큼 여건이 그러했었을 것이라 짐작이 된다.

제주의 오름들은 역사의 흐름이 진행되는 동안 여러 고초를 겪어왔다. 고려 말 최영 장군의 부대가 여몽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렀던 현장이 새별오름이고, 김통정 장군이 이끄는 삼별초군이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전멸하면서 오름을 피로 물들었다는 곳이 붉은오름이다.

일제시대 때에는 많은 오름들이 일본군들의 진지동굴로 파헤쳐 졌고, 근대에 들어서는 4.3과 관련하여 소개령이 내려지면서 수많은 양민들이 피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는 골프장이나 고급 숙소 등이 들어서면서 자신의 살의 일부 또는 대부분을 빼앗긴 오름도 있다.

한라산과 더불어 제주의 환경적 최고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오름들은 앞으로도 문명의 이기 앞에 얼마나 아픔을 겪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사실상 1100도로를 이용하여 살핀오름 한 곳만을 탐방할 경우 소요시간은 불과 60분 정도면 족하다.

그러나 한라산국립공원 내에 위치하는 때문에 현재로서는 일반인의 출입이 불가하다.​ 공교롭게도 1100도로를 기준으로 하고 애월읍 광령리나 유수암리 권역의 오름들은 대부분 출입이 허용되고 있다. 일대의 붉은오름과 노루오름 그리고 한대오름 등이 개방이 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살핀오름이 통제되고 있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통제가 풀린다면 살핀오름을 연계하는 주변의 오름들을 만나는 루트가 워낙 좋아서 오르미들에게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살핀오름 탐방기-

사전 허락을 받았을 경우를 기준으로 살핀오름을 만나는 초입은 여러 갈래가 있다. 1100도로변 영송 주변을 비롯하여 붉은오름 탐방로를 연계하거나 노로오름 등을 거칠 수도 있으며, 세성제(삼형제)오름 중 막내오름을 경유해서 가도 만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가장 근거리를 선택할 경우는 1100고지 휴게소 아래 방향 약 900m 지점을 초입으로 선택하면 된다. 무단 진입 시 과태료를 내야 하는 등 제제가 따르는 만큼 아쉽지만 무단 출입은 포기를 하는 수밖에 없다. 사전 취재 허락을 받은 탐방 팀에 합류한 만큼 부담 없이 도로변 안으로 들어섰는데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그 양방향으로 선명하게 길의 흔적이 보였다.

일찍이 제한구역으로 정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드나든 흔적일 수도 있고 주변에 묘가 있는 만큼 벌초 등과 관련하여 출입을 한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고무신 한 켤레려니 했는데 머지않은 곳에 또 한 쪽이 보였다. 설마 이 깊은 숲을 지나면서 이런 채비로 하지는 않았을 테고 누가 무엇 때문에 고무신을 남겼는지 아리송했다.

안 보이는 곳으로 치우려다 훗날 개방이 될 때 이정표 역할이라도 하라고 그냥 내버려 뒀다. 노로오름이나 붉은오름을 가는 동안은 당단풍을 비롯한 활엽수들이 보이는데, 살핀오름으로 향하는 동안 만나는 것은 참나무류가 대부분이고 그 아래로는 조릿대가 장악을 하고 있었다.

시기적으로도 그러하지만 토양 등 환경이 다르고 9부 능선과 10부 능선을 넘나드는 위치적 요소도 작용을 할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그래도 소복하게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가는 동안 느낌이 좋았고 자연미가 넘쳐나는 곳을 지나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한동안 경사가 없는 숲길을 걷다가 삼나무 숲을 만났는데 비로소 살핀오름의 기슭에 접근을 한 것이다.

일부에만 삼나무들이 있는데 이곳을 통과하고 오르면 정상에 도달하게 되는데 숲을 지나니 다시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하게 보였다. 정상부에 도착을 하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특별히 모여 있을 공간이나 평평한 지대는 없으며 이를 대신하여 여러 형상들이 많이 보였다.

바위를 끌어안고 성장을 진행하는 나무를 비롯하여 이끼류와 양치식물 등이 정상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도 눈에 띄는 기이한 형상의 바위가 있었는데 행여 김통정 장군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면 이 바위일 것이라 여겼고 이내 장군석이라고 명명하였다.​

주변의 몇몇 바위​들은 지금의 장군 바위를 호위하듯 마주하고 있어서 장군을 수호하는 공신에 해당이 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장군은 하나이지만 보좌관은 둘이 되었다. 남쪽으로 열린 공간을 통하여 전망을 해봤다. 아...... 대체 뭘 어떻게 살피란 말인가.

잔뜩 흐린 데다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더니 점차 굵게 변해갔다. 시야는 완전히 가린 상태로 변했고 오매불망 기회를 기다리다가 겨우 찾은 살핀오름이 건만 일대를 살피니 아무것도 안 보였다. 그저...... 정상의 비탈에서 비를 맞으며 김통정 장군과 그 휘하 병사들의 영혼을 살피는 것이 전부가 되었다.

한쪽에는 골짜기처럼 패인 공간이 있었는데 정상부는 주변을 살피기에도 적당하지만 한쪽은 병사들이 숨어서 적진으로부터 보호를 하기에 좋은 장소로 여겨졌다. 아마도 쉬는 동안은 이곳을 거처로 삼으면서 작전과 대응책 등을 논의했으리라. 한쪽에는 거목이 쓰러진 채 있었다.​

   
 

뿌리가 있었던 곳은 커다랗게 빌레를 이루고 있고 흙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강풍에 쓰러질 수밖에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결국은 몸체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서 확인을 하니 비로소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커다란 기암이 뻗어있고 그 상부에서 자생을 이어가던 나무이다.

공교롭게도 날씨가 좋은 날 이곳을 찾는다면 쓰러진 나무 위를 올라가서 전망을 하기에 좋을 것 같았는데 쓰러진 이후에도 살핀오름​을 지키며 사목으로서의 일익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올라온 루트의 맞은편으로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그곳에도 길의 흔적이 있었는데 붉은오름이나 영송 방향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날씨가 좋았으면 어느 방향이든 전진 코스로 갈 예정이었지만 아쉽게도 포기를 했다.

퇴각이다. 작전상 퇴각이 아니고 날씨에 패배를 하고서 쓸쓸히 물러나는 꼴이 되었다. 일부 거목들이 내리는 비를 1차 저지하며 약하게 떨어뜨리지만 버티기에 한계가 따랐다. 바위를 지탱하고 자라는 이끼류와 양치식물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빗물이겠지만 이방인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빗물이다.

능선을 내려오고 다시 뒤돌아서서 바라봤는데 모처럼의 기회를 얻어 찾은 살핀오름이었기에 아쉬움이 너무 컸고 언젠가는 날씨가 맑고 가시거리가 좋은 날 다시 찾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돌아 나오는 과정에서는 비에 젖은 조릿대 사이를 지나는데 여간 불편했다. 바지 깃과 신발은 이미 흠뻑 젖은 상태인지라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거움을 느꼈다. 어렵게 만난 살핀오름인데 참 어려운 행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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