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본향당신..성읍2리 구렁팟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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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본향당신..성읍2리 구렁팟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2.0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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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택은 인가 한 채 없는 '구렁팟'에서 농사 지으며 설촌,,


성읍2리 구렁팟당


위치 ; 구렁팟당은 표선면 성읍2리 구렁팟마을 북쪽에 있다.
유형 ; 민속 신앙
시대 ; 조선

 

 

 

 

이 당의 특징은 당집 안에 나무로 조각한 신상(神像)을 모시고 신체(神體)로 삼은 것이었다. 그러나 당집이 화재를 당하였을 때 한 신앙민이 불길 속에서 신체를 모시고 나왔으나 거의 다 타 버렸기 때문에 다시 만들 때는 돌로 새겨 만들었다고 한다. 화재 당시 신상을 꺼내 나왔던 신앙민은 1997년 현재 마을에 생존해 있었다.


당집은 돌로 쌓은 벽에 스레트 맞배지붕, 동쪽으로 문이 있으며 단일 공간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북쪽에 시멘트로 20cm 정도로 낮게 만들어진 긴 단이 있고 그 단 위 중앙에 다시 10cm 정도의 단을 돋아올려 거기에 돌로 다듬어진 신상을 모셨다.

붉은 치마에 녹색 저고리를 입혔으며 노란 목도리를 걸치고 머리에는 검은 유건 같은 것을 씌웠다. 신상의 동쪽에는 조그만 어린이 모양의 신상이 머리에 두건을 두른 모습으로 서 있다. 주변에는 촛대와 향로 등 제기가 진열되어 있다.

 

이 당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양남택은 지금의 '구렁팟'(表善面 城邑二里)을 설촌한 사람이며, 또 그 마을의 본향당(本鄕堂)을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구렁팟'은 아주 오랜 옛날에 이미 동네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중간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폐촌되었다가 다시 그에 의해서 재건된 마을이다.


양남택은 원래 정의고을에서 이방(史房)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해 정의고을 현감이 3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게 되었다.

현감을 배웅해 드리기 위하여 화북(濟州市 禾北洞) 포구로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연일 태풍이 불어 배를 띄울 수 없어서 며칠 동안 화북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태풍은 보름 동안이나 계속되어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었다.


어느 날 밤 꿈에 하얀 소복으로 단장한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나는 한양 남대문 밖 도정승(都政丞) 아들이노라! 제주도에 왔다가 고향엘 가지 못할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 화북에서 있고 싶어도 해감냄새가 지독하여 도저히 머물러 있지 못하겠으니, 나를 어느 깊은 산골로 가서 잘 모셔달라. 그러면 너에게 부(富)를 내리겠노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 '개꿈이려니' 생각하고 지나쳐 버리려고 했었는데, 이튿날 밤 꿈에도 그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똑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큰 고민거리였다.


'아, 귀신이 꿈에 나타나서 나에게 잘 모셔달라고 부탁을 한다고 하면, 무슨 증거물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그날 밤 꿈에도 서울 남대문 밖 도정승 아들이라는 할아버지는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는 양남택의 걱정을 이미 들었다는 듯이,


"날 모셔 가려거든 원님이 타고 가려는 배의 나무조각을 하나 뜯어다가 거기에다 화상을 그리되, 코 위로는 떠나는 원님의 얼굴만 그리고, 그 밑으로는 새로 부임해 오는 사또의 모습을 그리면 나의 혼이 그리로 들어가서 너를 따라가겠노라."


양남택은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배로 가서 널판대기 하나를 떼어다가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지시대로 화상(畵像)을 그렸다.


귀신의 조화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날이 화창해졌다. 원님을 배웅하고 나서 화상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 온 양남택은, '어디로 가서 모실까' 망설이다가 '구렁팟'으로 가서 모시기로 작심했다.

'구렁팟'으로 화상을 모시고 집이라기보다 낟가리 비슷하게 초옥을 만들어 그 안에 모셔 내버렸다.


몇 해 후였다. 어느 날 밤 꿈에 다시 그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아, 나를 구렁팟으로 모셔줘서 고맙긴 하다마는 어느 누구 밥 한 그릇 대접하는 이도 없고 해서 내가 살아갈 수가 없으니, 네가 내 곁으로 와 살면서 나를 잘 대접해 주면, 당장 너를 부자가 되게 해 주마."


'들은 게 병'이란 격으로 귀신이 꿈이 나타나서 그렇게 말했는데,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양남택은 인가(人家)라곤 한 채도 없는 '구렁팟'으로 가서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다.

아닌게 아니라 귀신의 조화인 듯이 농사를 짓기만 하면, 팥씨 다섯 방울만 뿌려도 다섯말이 날정도로 해마다 풍년이었다. 양남택은 이내 곧 부자가 되었다. 이는 귀신의 도움이라고만 여겼다.


이 소식은 퍼지고 퍼졌다. 차츰차츰 인근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구렁팟으로 모여들어 살기 시작해가자 큰 동네가 형성되었다.

그래서 양남택은 그 마을(城邑二里)의 설촌자가 되었고, 서울 남대문 밖 도정승 아들이노라며 꿈에 나타난 할아버지는, '구렁팟'으로 모여든 마을 사람들의 제반사(諸般事)를 수호해 주는 본향당신(本鄕堂神)이 되었다.


<남제주군 성산읍 신풍리, 吳文福(남)제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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