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삼형제 남쪽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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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삼형제 남쪽2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2.2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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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014m 비고:49m 둘레:986m 면적:72,363㎡ 형태:원추형

 

삼형제 남쪽2

별칭: 샛오름

위치: 중문 색달동 산 1번지

표고: 1,014m 비고:49m 둘레:986m 면적:72,363㎡ 형태:원추형 난이도:☆☆☆☆

 

 

 

깊은 계곡과 수림지대에 숨어 있으면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 화산체...

 

삼형제남쪽1.2로 부르고 있는 화산체는 지난 1997년 오름 재조사를 할 당시에 찾아냈었다. 발견 당시 오름의 명칭을 뚜렷하게 정하지 않았으며 삼형제오름 옆에 있다고 하여 두 산 체는 삼형제 남쪽 1과 2로 한 것이다. 이때 수집이 된 오름들 중 다래오름북동쪽이나 마은이옆 등과 같은 맥락의 표기라고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오름 정상부에 있는 묘의 비문에는 망월악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를 발견했다면 오름 명칭으로 사용할 법도 한데 고민할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다. 표고가 높은 곳에 위치를 하는 때문에 달구경을 하는 데 제격이라 선조들은 망월악(望月岳)이라고 한 모양이다.

또 다른 묘비에는 유목악(流木岳)이라고 새겨져 있다. 특히나 유목악과 함께 석악상서(石岳上西)라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과 조금 떨어진 곳의 돌오름 위 서쪽을 지칭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삼형제 오름 중 둘째와 세째 사이에 위치를 해서 샛(사이+ㅅ. 제주 방언)오름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나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어쨌거나 삼형제남쪽은 두 개의 화산체이나 막상 탐방을 할 경우 세 개의 산 체를 넘나드는 과정이 이뤄져야 한다. 굼부리가 없는 만큼 원추형으로 구분을 하고는 있지만 등성은 평평한 편이며 원만한 경사로 이뤄져 있어 탐방에 큰 어려움은 없다.다만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때문에 일반인의 무단출입은 통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삼형제 남쪽2 탐방기-

나란히 이어진 두 화산체를 따라가는 동안 등성마루는 이렇다 할 경사가 없어 진행에 별 무리가 없었다. 다만 조릿대가 군락을 이룬 채 빽빽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서두를 정도가 못 되었다. 등성을 따라 이동을 하다가 옆 산체의 정상부에 다다르니 올랐던 봉우리가 보였다.

지나온 곳과 또 만나게 될 곳이 있음을 알고 나니 실상 망오름의 두 산 체는 봉우리가 세 개로 나눠져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산 체 세 개를 따라 기슭 아래로 골짜기를 이루고 있는 2막 3장의 오름이라고나 할까. 얼마 후 정상부를 확인했다. 역시나 전망은 남의 오름 이야기일 뿐 표식으로 매달린 리본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이제 박 씨 할망 무덤을 비롯하여 망월악의 백미인 전망 터를 향해 전진을 하는 일이 남아 있다. 천리를 해 간 묘 터가 보였는데 정교하게 쌓여진 돌담의 상황으로 봐서는 꽤나 오래된 묏자리였는데, 봉분이 있던 자리를 터전으로 삼아 자라는 잡목들이 알려주듯 천리를 한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풍경이 있는 오름. 그나마 가을의 중심을 벗어났기에 앙상한 가지만 남아서 하늘이 보였다. 자연의 깊은 숲을 차지하여 외부로의 눈길을 방해하는 망월악이지만 파란 하늘마저 가리지는 못 했다. 다시 묘를 찾아 이동을 하다가 축축한 곳을 만났는데 습지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늪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하지만 어느 정도 물이 고이는 곳이었다.

등성에서 이런 모습을 만나는 것이 흔하지는 않기에 주변을 더 살폈더니 질퍽한 바닥 주변에 곰취들이 군락을 이룬 모습이 확인되었다. 저들의 계절은 아니지만 일부는 마르지 않은 연 초록색으로 고운 잎을 탐스럽게 들어내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을 살피다가 마침내 첫 번 째 묘를 찾아냈는데 비석을 확인하니 허씨의 묘였다.

오래도록 벌초를 안 했는지 봉분과 주변은 조릿대들이 장악을 했다. 천보이악갑산! 비문에는 망월악과 관련한 내용은 안 보이는데 무슨 뜻일까. 하늘이 보존하는 산허리나 망자를 산허리에 묻으며 하늘의 보존을 기린다는 정도의 뜻으로 풀이를 하면 될까. 묘의 상황이나 비석의 내용을 확인하고 실망을 했으나 반전이 이뤄지는 과정은 오래지 않았다.

바로 인근의 큰 나무 아래로 돌담이 둘러져 있고 시야가 트인 곳이라 특별한 느낌을 받았는데 역시나 정확한 판단이었다. 망월악의 백미로 통하는 박씨 할망의 묘이며 비로소 이 비문에서 망월악에 관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망월악의 인증은 반드시 이 묘를 찾아내야만 완성이 된다.

묘를 둘러쌓은 산담은 대체 어디서 돌들을 구했을까. 그 옛날 상여를 메고 이곳까지 왔다는 게 대체 말이나 되겠는가. 오름의 기슭이나 정상부에 묘가 있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망월악을 조상의 안식처로 삼은 것은 대단한 일이라 여겨졌다. 보통의 묘 보다 그 이상의 면적을 차지한 묘. 빽빽한 숲이 건만 유일하게 트인 공간으로 이뤄진 터.

어떻게 이런 곳을 찾아내었을까. 구태여 풍수지리나 명당을 운운하지 않아도 한눈에 직감할 수가 있었다. 산담을 등지고 앉은 채 한동안 생각을 하며 전망을 보태었다. 가을에 취하고, 풍경에 취하고,  자연에 취하여 있노라니 비로소 망월악의 심지와 가치를 넉넉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마지막 세 번째 산 체를 향하여 이동을 했다. 주변 어딘가에 다른 묘들이 또 있다는 내용을 확인한 때문에 마저 찾는 과정을 이어갔는데 등성을 오르내리는 동안은 계곡을 만나는 것도 필수적이다. 탐방로는 없지만 이동을 하는데 별문제는 없는 데다 자연미는 더 느낄 수가 있었다. 

 

계곡 주변은 이미 가을을 떠나보낸 상태였는데 고지대인 만큼 빠른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초행인데다 미지의 깊은 숲인지라 느리게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했고 리턴 방향을 향하여 숲을 헤쳐나갈 즈음 열린 공간으로 비로소 햇살이 강하게 비쳐왔다. 이미 만났고 발을 디뎠으니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호시탐탐 만날 날을 기다리다가 성취를 했으니 흐뭇할 따름이다.

잠시 선 채로 이동한 경로를 그려보는 동안 내내 감동이 밀려왔다. 다시 묘를 만났다. 깨끗이 정돈을 한 모습이지만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박 씨 할망 묘와는 다른 방향이지만 이곳에서는 한라산 영실기암 주변이 훤하게 보이는 만큼 역시나 명당을 운운하며 선택을 했을 것이다.

대체 어떤 연유로 이곳까지 생각을 했으며 망자를 맡길 장소로 이렇게 깊은 숲을 어떻게 찾았을까. 망오름과 주변 탐방을 마치고 리턴 코스를 준비했다. 쉬운 방법이라면 백(back) 코스가 맞겠지만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을 탐색하니 1100도로변이었다.

어디선가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직 계곡에 도착을 하지도 않았건만 현장 확인을 명령하는 자연의 소리가 들린 것이다. 쉽게 건너는 계곡이지만 좀 더 아래쪽을 확인하니 높은 낭떠러지였다. 절벽의 높이가 족히 2~30m 정도는 될 것 같아 보인다.

건기의 모습이지만 집중호우가 이어질 때면 폭포로 변할 지역인 셈이다. 아찔한 모습이지만 기슭에 서서 멀리를 보니 풍경이 열렸는데 산방산을 시작으로 일대가 보이면서 가을이 노래하고 춤을 췄다. 수고한 레이스의 과정에 축복이라도 하듯 하늘과 구름도 한편이 되어 박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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