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청렴은 사유(思惟)에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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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청렴은 사유(思惟)에서 시작
  • 홍혜민
  • 승인 2018.03.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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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혜민 제주시 세무과
홍혜민 제주시 세무과

최근 김영란법 제정과 관련하여 부패척결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청렴하지 못한 이유 즉, 부정부패의 원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악의 평범성에 대해 주목합니다.

나치즘이 팽배했던 전체주의 시대는 인간의 밑바닥을 치열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이히만은 유대인 학살에 핵심적 인물로 전범자였습니다. 그는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판장에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그는 본인이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고, 국가 명령에 응하는 사람일 뿐이었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수용소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으며 이로써 그는 관료로서 주어진 일을 충실히 수행한 것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나의 유죄는 복종에서 나왔으며, 복종은 미덕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뉴요커>의 기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전범 재판에 참석하여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를 집필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아이히만은 잔혹한 악마도 아니고 이상인격을 가진 싸이코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아이히만은 우리 주위에 있는 너무나 흔한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히만의 죄는 유대인 수용이 아닌 무사유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에 충실히 복종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될지 사유하지 않았다는 무사유가 죄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아이히만은 승진을 꿈꾸었던 평범한 관료였습니다. 그는 승진을 위해서 사악한 음모를 꾸미거나 악랄한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본인의 업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악은 평범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부정부패가 적지 않게 발생했습니다. 업무를 승인하는 결재권자도,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자도 본인들의 행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 깊이 사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고 마침내 사유의 의무를 다하였을 때 청렴한 공직사회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무과에서 4개월 동안 국가의 녹을 먹으며 저의 이름 석 자가 찍힌 문서를 볼 때 나랏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저의 업무가 도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공정한 체납처분 및 조세정의 실현을 위해 항상 사유하는 세무공무원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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