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제주 출신 노동운동가가 본 4.3.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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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제주 출신 노동운동가가 본 4.3.항쟁’
  • 김태홍 기자
  • 승인 2018.03.12 1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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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활동가 박성인 씨 육지사는 제주사람 월례강연 나서
 

 

"4.3은 패배했지만 당시 민중들이 염원했던 갈망과 염원,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봉기었음은 재평가해야 한다"

제주출신으로 노동운동 현장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대를 고민하며 활동가로 살아온 박성인씨가 지난 10일, 서울시의원회관에서 열린 육지사는 제주사름(대표 박찬식) 월례강연에서 이와 같이 주장했다.

박씨는 4.3당시 생이오름에서 군경에 의해 사망한 할아버지와 행불자인 샛아버지를 둔 4.3유족이며, 제사 때마다 숨죽이며 주고받는 이야기를 통해 4.3의 비극을 어렴픗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82년 여름, 제주도를 도보여행하면서 4,3 알리기에 참여하고, 생존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4.3의 참상과 그 참상에서 살아남은 ‘민중’의 모습을 인식하게 된 것이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1983년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 4.3의 패배 경험을 지닌 부친이 노동운동의 끝은 실패할 것이라며 우려했다고 한다. 1992년 수감 중에 ‘다랑쉬굴’ 유해발굴 기사를 접하고, ‘4.3은 왜 우리에게 죽음으로만, 유해로만 다가오는가? 죽음은 ‘패배’한 결과일 뿐이고 4.3의 참된 모습은 민중이 주체가 된 자주적인 독립국가 건설을 희망하는 운동이자 항쟁이었는데....’안타까움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4.3의 패배를 새롭게 재해석하고자 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4.3은 미군정과 그 하수인인 친일세력, 서청 등의 탄압에 맞서 친일청산과 자주적인 통일 독립국가 건설을 염원했던 민중들의 항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3만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학살당하고 투쟁을 주도했던 세력들의 궤멸, 한반도가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4.3만의 실패가 아닌 당시 독립국가를 염원했던 세력들의 한계였으며 당시 4.3은 전국적 수준에서 투쟁의 끝자락에 놓여 있었고, 새로운 투쟁을 촉발시킬 힘도 없이 제주지역이 고립됨으로서 단독선거로 탄생된 이승만 정부에 의해 엄청난 살상이 자행되었다고 평가했다.

박씨는 또 4.3의 투쟁과정에서 3.1절 시위와, 3.10총파업으로 확인된 제주도민의 투쟁역량을 노동현장과 지역차원에서 조직적이고 공세적으로 공고하게 구축해 나가지 못했다는 점을 노동운동적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리고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가 탄압에 맞선 불가피함과 5.10단독선거 저지라는 공세적인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4.3은 패배했지만 당시 민중들이 염원했던 갈망과 염원,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봉기었음은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법제정 이후 2000년대까지 진상규명 활동은 인권, 평화, 상생 측면에서의 성과에 머물러 있으며, 민중항쟁으로서의 4.3은 여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진전만큼만 진상이 규명되고, 그 만큼만 계승된다고 했다. 자신이 노동운동에 집중하는 것이 4.3진상 규명과 4.3항쟁 정신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자신은 지금도 한반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꿈꾸고 있고, 지난 35년간 노동운동을 해왔던 스스로에게 ‘4.3항쟁’에 대한 두 가지의 질문을 집요하게 던지고 있다고 했다. 왜 ‘4.3항쟁’은 패배했는가? 하는 끊임 없는 성찰과 해석, 그리고 ‘4.3.항쟁의 정신을 21세기에 계승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것이다.

박씨는 뒤따라가면 고립되고, 고립되면 피해자로만 남는다며 제주도는 지금까지 ‘변방’의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가장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자리는 모든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며, 제주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부딪히는 곳, 동북아 세력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곳, 자본의 욕망과 대안적 삶에 대한 바램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곳이다. 이 가장자리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패배한다. 변화를 주도할 때 이길 수 있다고 역설했다.

현재 제주도는 자연이 역사를 압도하고, 그 자연을 자본이 장악해가고 있고, 문제는 자본이라며 작금의 제주의 상황을 비판했다. 강정마을, 제2공항 강행, 난개발 등으로 제주도가 다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데, 해방 후 ‘민중 주체의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이 ‘4.3.항쟁’의 희망이자 과제였듯이, 21c 평화와 인권, 생태와 노동, 민주주의(현장, 학교, 마을)의 새로운 전망을 세우고 싸워나가는 것이 ‘4.3.항쟁’의 정신을 21c에 계승하는 것이라며 강조하며 이 날의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 강연은 육지사는 제주사름이 4.3 70주년에 즈음하여 4.3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해석을 시도하고자 마련한 강연으로, 50여명의 회원들이 모여 진지하게 경청했다.

박성인씨의 강연이 끝난 후, 같은 장소에서 재경 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 준비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재경제주4·3희생자유족청년회(이하 재경4.3유족청년회)는 20세에서 55세까지 청년들로 구성되었으며, 4.3희생자유족청년들과 전국 각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올바른 역사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4·3사건의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의 길에 앞장서며 4·3과 관련된 제반활동을 통해, 4·3이 항쟁이라는 역사적 위상을 정립하고, 그 진실을 알려나가고자 하는 모임이다.

제주에서는 청년유족회가 2002년 결성되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서울에서는 비숫한 시기에 재경유족회가 만들어졌으나 지금까지 청년유족회는 꾸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 4.3의 비극을 어렴픗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80세가 훌쩍 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고령의 몸으로 4.3해결에 나서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직도 요원한 4.3의 완전해결을 구 다음세대인 청년층이 나서서 그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밖에 없기에 4.3의 해결과 위상정립, 전승을 위해, 70주년 활동을 계기로 서울, 경기권에서도 모임을 결성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청년유족회 결성 논의를 위해 지난 2018년 1월 22일 저녁 7시에 ‘백년의 노래’영화관람을 마치고 1차 예비모임(파스쿠찌 대학로점)을 가졌고, 3월 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4.3의 완전해결 촉구대회 행사이후 저녁에 2차 예비모임을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에 이날 준비위원회를 발족하게 되었다.

재경유족청년회는 제주유족청년회와 같은 목적을 추구하며, 연대함과 동시에 서울, 경기권에서 시민사회단체와 연계하여 4.3의 전국화, 세계화, 4.3의 항쟁정신을 계승하는 활동들을 펼쳐나간다.

이후,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의 참여단체로 공식활동을 시작하고, 범국민위에서 1년전부터 준비해온 70주년 행사들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또 경기, 수도권의 청년유족들을 결합하기 위해 회원가입운동을 전개한다.

재경유족청년회는 정식출범식은 4.3 70주년의 주요행사가 치러지고 난 5,6월 경에 정관과 조직을 정비하여 개최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발족한 준비위원에는 제주를 낳은 국제적인 음악가 소프라노 강혜명씨를 비롯하여 회사원 김동욱씨, IT전문가 이진철씨, 교사 등 각 계의 청장년층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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