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난쟁이도..도순동 국민방위군 묘터(이장멸실)
상태바
[향토문화]난쟁이도..도순동 국민방위군 묘터(이장멸실)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3.15 0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당시 제2국민역(당시 국민방위군) 대상자로 징집돼 강정초등학교에 집단수용됐다가 숨진 사람들

도순동 국민방위군 묘터 國民防衛軍墓 (이장멸실)

국민방위군 묘터 國民防衛軍墓 (멸실)
위치 ; 서귀포시 도순동 1368번지 상수도 보호구역 하천변 속칭 '난쟁이도', 강정슈퍼 동쪽으로 농로를 따라가면 하천의 다리를 만나는데 다리를 건너지 말고 위쪽으로 200여m 가면 상수도 보호구역 속칭 난쟁이도 하천변에 있다.

시대 ; 대한민국
유형 ; 무덤

▲ 강정동_국민방위군묘


6.25 당시 집단수용됐던 제2국민역 대상자들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사망하여 현 강정 상수원 보호구역 하천변에 가매장된 채로 방치되고 있었다.

이곳에는 어린이 무덤 형태의 무연 분묘 50여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 무덤의 주인공들은 6.25 당시 제2국민역(당시 국민방위군) 대상자로 징집돼 강정초등학교에 집단수용됐다가 숨진 사람들이다.

강정동 마을 원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국민방위군 설치법에 의해 17-40세 사이 청장년이 국민방위군에 편입되어 훈련을 받던 중 서기1951년 1.4 후퇴 때 국군과 함께 집단으로 남하했으며, 이들 중 2-3천명이 제주도까지 와서 수용되었다는 것이다.

관계기관에서는 이들 중 전염병 등에 걸린 환자와 훈련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을 강정초등학교에 「특수공동수용소」를 설치하여 집단수용했으며, 사망자가 발생했을 경우 강정천변에 가매장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무연분묘들은 푯말도 없이 방치되어 있었으며 일부는 묘인지 구릉인지 식별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에 대한 사실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역사의 뒤안길로 파묻혀 있었다.

다만, 지난 1993년 이후 서울시에 거주하는 유족 김흥순씨가 이에 대한 무명용사탑 건립 등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청와대와 서귀포시 등에 제출하여 조사활동이 이루어졌다.(제민일보 4329년 2월 1일)

문동필씨(1936년생, 강정동)에 따르면 문씨도 열서너살의 나이로 시신을 나르는 일에 세 번 참여했으며, 시신을 묻을 당시에는 나무로 푯말을 만들어 세웠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이들 유해 발굴을 위하여 2003년 5월 19일 제주방어사령부 주관으로 시신 발굴을 위한 개토제를 올리고 시삽했다.

6월 5일 유해발굴을 마친 결과 국민방위군 추정 유골 44구와 유아 유해 22구를 확인했다. 국민방위군 유해는 6월 13일 서귀포시 소재 해병 제6613부대에서 영결식을 가졌다. 양지공원에서 화장한 후 7월초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제 임들의 이름을 기억해 줄 사랑하는 동료 호국영령들의 곁으로 모셔 드리나니 부디 영면하시어 조국의 수호신으로 거듭나시기를 기원합니다.'(제민일보 2003년 5월 20일, 6월 7일, 6월 14일, 제주일보·한라일보 2003년 6월 14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