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송아오름
상태바
[오름이야기]송아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4.05 0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고: 104m 비고:29m 둘레:747m 면적:30,701㎡ 형태:말굽형

송아오름

별칭: 송악(松岳)

위치: 한경면 저지리 134번지

표고: 104m  비고:29m  둘레:747m 면적:30,701㎡ 형태:말굽형  난이도:☆☆

 

 

명칭을 떠올리며 청송을 그렸지만 환경의 변화와 병마로 엣 모습이 사라져 아쉬웠던 오름...

 

오름 일대에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음에 연유하여 송아오름이라 했고 한자로 송악(松岳)이라 한다.별칭으로 송화악(松花岳)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오름에 해송이 많이 있는 것과 뜻을 같이 한다. 

다른 맥락으로는 송아 자체를 송이(화산 송이. 스코리어)의 변음으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으며, 주변의 오름들이 동물의 형상을 빗대어 부르는데 연유하여 송아지와 연계를 하였으나 이는 좀 빗나간 풀이로 여겨진다. 완만한 비탈면 전체가 해송 숲으로 이루어졌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많은 변화가 이뤄져서 오름의 명칭을 무색하게 한다.

등성과 기슭의 소나무들은 일부 베어져 사라진 데다 근년에 재선충병으로 인하여 잘려나가기도 했다. 산 체의 크기나 높이는 대수롭지 않지만 그 옛날에는 오름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했으리라 추측이 된다. 그러면서도 주변 도로의 위쪽이나 이계오름에서 바라볼 때는 오름으로 여기기 힘들 정도인데 비고(高)가 불과 29m인 만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정상부 일대를 제외하고는 능선과 기슭 아래가 대부분 농지로 개간이 된지 오래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오름으로서의 가치나 입지도 떨어진 상태이다. 웃드르(중산간)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농사만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때문에 조상들의 땀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농사용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땅 한 평이라도 더 활용을 하기 위하여 노력을 했음을 엿볼 수 있는 것도 개간의 현장을 보면서 알 수 있다. 그러기에 오름의 변화나 훼손으로 인한 아쉬움보다는 개척정신과 더불어 지혜와 슬기가 돋보인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산 체의 동쪽 기슭 부근에는 당밧물이라 부르는 우물이 있는데 과거에 이 일대 주민들이 식수를 겸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못의 기슭에는 하르방당이 있었는데 근래 들어 이용하지 않으면서 당목(堂木)만 남아 있다. 도로변 어느 방향을 통해서라도 진입이 어렵지는 않지만 농경지로 변한 사방을 선택하기보다는 수순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송아오름 탐방기-

 

입구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도로변의 한구석을 선택하여 주차를 하였고 주변에 농지로 이어지는 곳으로 소로가 나 있었으며 물인 고인 못(淵)이 있었다. 못에는 송이고랭이를 비롯하여 수초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위의 한쪽에는 당목인 팽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오래전부터 송아오름지기로서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과거에 이곳을 하르방당으로 지정한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그럴만하다. 소로를 따라 안으로 진입을 했다. 좌측으로 기슭과 등성 언저리가 있으나 사실상 오르기는 힘든 여건이었는데 이 정도의 산 체를 두고서 탐방의 묘미를 느끼겠다는 것은 억지이기에 정해진 루트를 따랐던 것이다.

소로는 농사용 차량이 다니는 때문에 바퀴가 지나간 곳 외에 중앙 부근은 잡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가을의 중심에서 들판에 나가면 수크렁이 우쭐거리기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어쩌다 억새가 군락을 이루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 세기는 더 강하게 여겨졌다. 송아의 허리를 오르기 전에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중산간 지역의 민가와 교회 등이 보였다.

행여 하는 욕심으로 서부권 해안까지 욕심을 부렸지만 비고(高)가 말해주듯 어림없었다.  기슭을 가로질러서도 소로가 나 있었는데 농사용 차량이 드나드는 길이지만 근년에 재선충병 소나무 작업 차량이 다니면서 더 다져놓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낮은 경사를 따라 등성을 향하여 전진을 하게 길이 이어졌고 조심스레 기슭 언저리에 올랐지만 수풀이 무성한데다 이렇다 할 풍경은 열리지가 않았다.

이를 대신하여 현장의 무성한 잡초와 한 판 승부를 벌인 것이 전부가 되었다.  화구와 기슭의 대부분은 농지로 변해 있었고 성장을 이어가는 양배추가 균형 있게 자리를 잡았는데  얼핏 토양을 봐도 화산체의 한 부분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스코리어가 섞인 농지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비옥하게 만들어 놓았는데 성실과 근면은 농민들에게 슬기와 지혜를 안겨줬으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담장을 사이로 지나는 동안에는 수확 시기를 앞둔 콩들이 탐스러움을 보여줬다. 행여 피해가 될까 주심스럽게 전진을 했는데 구태여 가지 않아도 좋겠지만 등성에는 가시덤불을 비롯하여 빽빽한 수풀들이 방해를 하는 바람에 선택을 한 것이다.​ 이윽고 정상부에 도착을 했다. gps를 통하여 비고점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산 체의 크기나 높이도 그러하고 눈짐작만으로도 충분했다. 

송아오름. 송악(松)..... 명칭을 떠올리며 해송이 빽빽하게 차지를 하고 숲을 이뤘었다는 옛날의 풍경을 그려봤다. 몇 그루 안 남은 소나무의 일부는 솔수염 하늘소의 만행으로 인하여 고사 직전이었다. 제주의 많은 오름들에서 이런 모습을 만나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현장이었다. 기대치의 전망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허리를 펴고 눈을 돌리니 일부 풍경이 열렸다. 저지오름이 보이고 인근의 이계오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평화스럽게 보였지만 내가 선 자리는 결코 평화롭지 않았다. 오름 탐방을 통하여 흐뭇함과 보람을 느끼게 되지만 송아오름만큼은 어느 한편에 아쉬움과 애처로움이 남아 있었다.  이런 입지와 환경 때문일까. 나 아닌 어느 누구도 송아오름 한 곳을 만나기 위하여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걸쭉한 저지오름이 아니다 할지라도 이계오름과 가메창 등이 인근에 있기에 함께 점령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