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무너진 연디'..의귀리 마조단(멸실)터(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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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무너진 연디'..의귀리 마조단(멸실)터(추정)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4.2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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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설치된 마조단은 지금의 칼호텔 자리

의귀리 마조단(멸실)터(추정)

마조단 터
위치 ; 남원읍 의귀리에서 남원리로 내려가는 길 중간쯤 백산농장 안
시대 ; 고려 후기(추정)
유형 ; 목축 유적(제단)

▲ 의귀리_마조단_상부
▲ 의귀리_마조단_기단석

 

김인호 박사의 주장에 의하면 '무너진 연디'는 몽고인이 말의 별(房星)에 제사 지냈던 마조단이라고 한다. 김인호 박사의 글을 중요한 부분만 그대로 옮겨 본다.


1986년 10월 22일 (수) 쾌청 옥기 출신 한학자 吳奉南옹(정의향교 전교 역임. 74세)의 인도하에 현장 답사 결과 적석단(積石壇)이었던 듯한데 기단 면적이 한 100평은 너끈하다는 말만 듣고, 언제 누가 무슨 용도로 축조해 놓은 석조물인지, 아는 이가 전무하고 문헌 기록도 전무하다.


1989년 여름에 '관광제주사' 朴瑞東 사장과 취재 기자 하고 3인이 재차 정밀조사. 흔히 하는 식으로 가로세로 몇 치 하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기에 생략하고 '무너진 연디'라는 지방 속칭처럼 상단부는 거의 허물어져 그 많은 돌들이 감귤원 조성하면서 없어진 것 같고, 돌이 워낙 커서 인력으로는 옮길 수 없는 중간 이하 부분만은 아직도 남았는데 그 높이가 지면에서 6∼7m는 될 성 싶다.


기단 면적도 1차 답사시에는 한 100평쯤 되리라 하였는데 2차 조사에서 자세히 보니 동서로 약간 능선이 진 듯한 지형을 이용했던 것으로 전체 지면이 마치 조롱박을 동서로 가로 눕힌 형으로 적석하였고 이것까지 합친 전체 면적은 200평은 될 것으로 3인이 합의하였다.

기단 면적 100평만 가지고도 이를 원상복원한다면 저 경주 첨성대 높이가 9.27m이고 보면, 이보다 훨씬 높은 積石壇이 아니었나 보아지고, 積石 방식도 직선으로 원추형을 쌓아올리지 않고 나선계단식으로 중간중간에 단을 지어 사람이 정상에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던 흔적이 완연하다.


기단부의 돌들, 큰 것은 약 1.5톤 이상 되는 것 등, 대소석을 막론하고 모두 인공을 가한 것으로 보이는 板石들, 이렇게 큰 돌들을 어디서 인력으로 어떻게 옮겨왔을까?

그보다 이 엄청난 대석조공사를 하는 데는 수많은 인력을 동원·사역할 수 있는 재력과 권력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봉수연대는 아닌 것 주지하는 바 조선조 때 비단 제주도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전역에 중국의 봉수연대제를 모방하여 각처에 설치하였거니와, 제주도에도 왜구 방어상 산정과 해안 요소에 이를 설치 운영하였었다.

그러나 '옥기'에 이것을 두었었다는 기록도 일체 없거니와 해안선에서 4Km나 들어간 중산간 가름인 평지에다 봉수연대를 설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중략) 이처럼 문헌 기록과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무너진 연디'는 그 호칭처럼 '허물어진 연대'가 아닌 '다른 무엇'이었음이 분명하다.


옥기 감목관 댁과는 무관하다 함 국가 시설, 왜구 대비, 봉수연대가 아니라면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옥기 감목관 댁'이다. 왜냐하면 이처럼 대역사를 해낼 수 있는 재력가라면 감목관댁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코 목관이나 정의·대정의 목사·현감이 당시에는 인적조차 희박한 허허벌판에 와서 엄청난 석조 시설물을 설치했을 리 만무하고 또한 전해오는 말도 문헌 기록도 일체 없기 때문이다.

필경 감목관(監牧官) 댁의 먼 조상 누군가가 마축번식을 위하여 馬祖神인 저 하늘의 房星에다 기원하고 제사 드리기 위한 제단으로 쌓은 것이 분명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이 의기양양 감목관 댁 종손을 찾아나섰다.

헌마공신 김만일의 3남 大吉의 13대 종손이 태흥리에 산다는 소문을 듣고 오봉남 옹과 함께 찾아갔다. 金潤富 옹 79세, 노익장한 한학자, 대객한 초인사로 찾아온 연유를 말하니 '저희 집안에서 한 것이 아니외다' 소리에 그만 앞이 캄캄,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누가 무슨 용도로 만든 것일까요?' 해 보았으나 묵묵부답, 크게 실망하고 돌아왔다.


옥기라는 지명이 수상 '옥기라. 옥기가 무슨 뜻일까요?' 하고 물어 보면 열이면 열이 '옥기가 아니라 옷귀인데 귀한 옷 衣貴. 그 옛날 감목관 댁에서 나라에 군마를 헌상한 데 대하여 임금으로부터 옷을 하사받은 데서 의귀리라는 지명이 생겼다오' 한다.

'감목관 댁에서 말을 바쳐 헌마공신이 된 것이 17세기 초엽인데 그 전에는 옥기에는 사람도 안 살았고 마을 이름도 없었단 말씀인가요?' 하고 되물으면 이치에 맞지 않음을 깨닫기는 하나 천고의 동면에서 깨어나는 듯하다.

(중략) 김남헌에게 '표리일습'을 하사한 1726년 이전인 1702년 탐라순력도 9쪽의 그림에 '尾衣貴川'이라는 지명이 있으며, 이원조의 탐라지초본 정의건치연혁 山川조 및 도로 院 站附조에 〈수망천은 정의현청에서 西로 30리에 있다 하였고, 같은 거리상에 義貴가 있고 그곳에 院站 '義貴院'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음으로 보아 1702년 이전에 이미 '옥기'라는 지명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옥기는 몽고어 ok-Targui 이상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옥기라는 지명이 밝혀지지 않고는 무너진 연디의 정체도 밝힐 수 없다. 이 땅에 100년간 살며 주인 행세를 했던 몽고인들에게 초점을 돌려 찾아 보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 포착된다.

(중략) '옥기'란 지명은 몽고어 ok-Targui(天空)·ok-Torgui(天空), targui(天神)는 Tengeri(天神)와 같은 말. uk-turgun(욱-두르군)은 방목장·목장, uk은 종족·근원·시초의 뜻(몽고어 사전에 의함) (중략) 몽고어 ok(옥)이 天空·하늘, uk(욱)이 방목장 곧 天神과 放牧 완전히 몽고어를 포함한 북방유목민의 기본 관념·생활양식을 상징하는 언어들이다. 이렇게 되면 '무너진 연디'는 일사천리로 풀려나간다.


무너진 연디는 몽고인의 마조단(馬祖壇) 마조단이란 房星에 제사 드리는 제단이다. '仲春에 吉日을 복하여 국왕이 신하를 파견하여 제사를 행한다'라고 몽고어대사전에 적혀 있다.


馬祖란 星名, 곧 天駟星. 天文에 馬守護神인 房星의 별칭.
房星은 28宿의 하나로 東南에 있는 星名. 車馬를 관장한다 함.
房宿은 28宿의 넷째 星名. 馬神을 맡았다 함.
房星 ; 周禮 夏官 校人에 '掌王馬之政春祭馬祖. (이상 모두 몽고어사전·한자사전에 의함)


'마조신'은 우마 번식 등의 수호신인 방성·천사성·방숙 등 여러 가지의 星名이 있으나 그 위치가 동남방이다. 몽고나 중국 북부에서 보면 제주도가 동남방이다. 따라서 제주도를 房星分野라고 칭하는 일이 옛날로부터 있었다. (중략)


몽고인 채찍 속에 제주인 역사군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옥기 무너진 연디'인 몽고의 마조단, 몽고인의 침략전마로 사용할 목적으로 국책 사업으로 강력히 추진했던 馬政과 마조단. 원조에서 특파된 단사관·만호하는 고관들이 제관이 되어 중춘인 음력2월에 이 마조단에서 저 하늘의 방성 곧 馬祖神에다 마필번식을 기원하는 큰 제사를 엄수하였던 것이다.

이 대공사에 끌려나와 일을 했던 제주인들의 처절한 신음 소리, 이리하여 이룩해 놓은 저 마조단은 제주인의 피와 땀의 결정체일러라.(하략) (남원읍 노인회, 老人誌, 1990. 132-143쪽. 월간관광제주 1990년 1월호)


그러나 지금은 서울 거주 과수원(栢山農場) 주인이 정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형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조경에 쓰인 거석들이 마조단의 규모를 짐작케 할 뿐이다.

※마조단(馬祖壇)이란 말의 돌림병 예방을 목적으로 말의 조상인 천사성(天駟星 ; 先牧·馬社·馬步)에게 제사지내던 단(壇). 마조단의 기원이 어느 때인지 문헌상의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고려시대에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도 고려시대의 답습으로 볼 수 있으나, 어느 왕 때 마조단을 쌓았는지는 알 수 없다.

기록상으로는 단을 설치하고 마조제(馬祖祭)를 실시한 것은 조선 헌종 때의 일이다. 이 마조제는 그 뒤 순종2년(1908) 7월에 칙령에 의해 산천단(山川壇)을 비롯하여 제단의 치제(致祭)를 폐지할 때 함께 폐지되었다.(야후백과사전)

마조제는 국가적으로 큰 행사임과 동시에 조선말까지 이어왔던 우리의 전통적 행사였다. 병조 산하에 있는 전국 목장과 말 사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복시목장 즉 살곶이목장이 있는 현재 한양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한 마조단(현재 백남학술정보관 광장 옆에는 옛 마조단 터임을 기념하는 비석이 있다)에서 길일을 택하여 집행됐다.

말의 수호신인 마조, 최초로 말을 기른 사람인 선목, 말을 처음 탄 사람인 마사, 말을 해롭게 하는 신인 마보의 신위가 각각 모셔졌다.(Weekly Hanyang) 제주도에는 조선시대에 설치된 마조단이 지금의 칼호텔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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