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안돌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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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안돌오름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4.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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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368.1m 비고:93m 둘레:2,093m 면적:298.148㎡ 형태:말굽형

 안돌오름

별칭: 돌오름. 안돌. 내석악(內石岳)

위치: 구좌읍 송당리 산 68-2번지

표고: 368.1m  비고:93m  둘레:2,093m 면적:298.148㎡ 형태:말굽형  난이도:☆☆☆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진 채 우리네 인생사를 떠오르게 하는 두 화산체...

 

이 오름과 관련하여 일찍이 돌오름(石岳)이라고 하였다는 내용은 다소 의외이다. 오름 정상부에 돌이 많아서 돌오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건너편에 이와 비슷한 입지를 지닌 오름이 하나 더 있어서 한라산을 중심으로 구분하여 안팎(內外)을 뜻하는 명칭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즉, 안쪽은 안돌이며 바깥쪽은 밧돌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나란히 이어진 모습에서 형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봉우리 사이에 동쪽으로 입구가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가 있어서 오름으로의 구색은 갖추었지만 민둥산처럼 오름 정상 부근에는 나무들이 없다.

한자 차용 표기로 밧돌은 외석악(外石岳) 또는 외돌악 등으로 표기하였고 안돌은 내석악(內石岳)이라고 하지만 잘 부르지는 않는다. 돌오름이라고는 하지만 이곳을 둘러보면 돌보다는 경석(화산송이)으로 덮여 있는 곳이 많이 보인다. 민둥산이라서 햇볕을 많이 받아서 그러는지 등성이에 여러 종류의 야생화가 계절에 따라 피어난다.

오름 전체에 초지가 있어서 마소 떼들이 있으며, 소나무와 청미래덩굴 등이 자라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민둥산처럼 여겨지나 북쪽의 정상 봉우리를 중심으로 굼부리가 완만하게 계곡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화산체로서의 입지가 잘 나타난다. 이 북쪽 기슭 아래로는 다시 밧돌(오름)이 이어지면서 맞닿아 있는데 두 산 체의 모습은 특별한 느낌이 든다.

환경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곱고 부드러운 풀밭과 여기저기 박힌 돌들을 비롯하여 자연림이 자란 모습 등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안팎으로 구분을 한두 화산체를 오르내리는 과정은 마치 인생사의 한 면을 생각하게 만든다. 안돌에 오르면 밧돌이 눈앞에 펼쳐지고 밧돌에 오르면 안돌이 다시 나타난다.

유난히도 부드럽게 보이면서도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과정은 더러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우러진 모습들에서 다소 힘이 솟는 것 또한 두 오름의 입지를 잘 반영하고 있는 때문이다. 제주의 수많은 오름들 중에는 등정의 계절을 구분하고 그 시기와 탐방의 선택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이를테면 한여름에 민둥산 형태의 오름을 오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 될 수가 있다. 하절기답게 숲으로 구성된 오름들이 있기 때문에 보통은 이런 곳을 찾아 탐방을 하게 된다. 가을은 억새 물결을 쫓게 되며 비교적 가시거리가 좋은 오름에 윙크를 보내게 된다. 가시거리는 곧 오름 군락을 조망한다는 의미도 부여가 된다. 오름에 올라서 오름을 바라보고 덤으로 한라산과 바다까지 전망이 가능하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것이다.

 

안돌과 밧돌은 민둥산처럼 볼품없이 형성이 되었지만 여기 또한 주변의 오름을 조망하는데 있어서는 그 중심이 되는 곳이다.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함께하여 쌍둥이나 형제 오름처럼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두 오름 사이로 잣담(돌담) 경계가 있었다고 한다.   찾아가는 방법은 대천동 사거리에서 송당 방향으로 가다가 송당 목장 입구 맞은편의 비포장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이 길을 따라 약 1km 정도 가다가 시멘트 포장길 사거리에 주차를 하고 걸어가도 되며 일행이 많지 않을 경우는 오른쪽(북쪽) 소로로 200여 m를 더 가면 입구에 도착이 된다. 그곳 맞은편에는 거슨새미(오름) 입구가 있다.

 

-안돌 탐방기-

몇 곳의 초입이 있으나 거슨새미 입구를 마주한 곳으로 향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예약도 없었고 통보도 안 했는데 소떼들이 마중을 나왔다. 역시 1:1이 아닌 다수 대 한 사람이 눈싸움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저들 영역에 들어왔다고 언짢게 여기는 것 같았는데 충돌을 피하여 애써 거리를 두고 진입을 이어갔다. 바로 안돌을 향하여 올라가기에는 경사가 심했다.

워밍업도 필요하며 주위를 둘러보며 가는 것이 바람직했는데 들어가서 좌측의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 좋아 선택을 하였다. 매트 같은 것은 없으며 사람들이 다녔던 발자국을 따라서 올라가면 되었다.  정상에 오르니 북쪽으로 능선이 쭉 펼쳐졌는데 경사를 오른 탓에 거친 호흡으로 변했지만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곧 안정을 시켜줬다. 

안돌오름에서 특별히 둘러볼 곳은 없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말굽형 화구 안쪽만 더러 잡목들이 있고 벌거숭이의 정상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조망을 덤으로 하고 맞은편의 밧돌로 이어갔는데 오름 사이에도 길은 없으나 잡초 밭을 지나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다. 조선시대 때에는 이곳에 잣담(경계돌담)이 쌓아졌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삼나무가 그 경계를 대신하며 목장의 구분을 정하고 소떼들의 ‘가출’을 막기 위하여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하지만 탐방객들의 진입을 돕기 위하여 허술하지만 사다리로 엮은 나무가 있어 이를 넘어가니 밧돌  기슭 아래로 이어졌다.  밧돌 정상의 능선 역시 밋밋하게 보였다. 계절을 잊고 피어난 철쭉꽃 몇 송이가 보였고, 입지가 그러하듯 햇볕을 안고 지내는 곳이라 야생화도 곳곳에 보였다. 특별하게 둘러볼 곳도 없는 만큼 능선을 따라서 한 바퀴 돌고 화구를 둘러봤다.

 

  햇볕이 스며드는 시간이라서 흐릿하지만 서쪽 능선의 삼나무와 소나무들이 이곳 벌거숭이와는 대조를 이뤘다. 돌이 많아서 돌오름이라고 부르지만 정상이나 주변 능선에서 돌무더기를 찾아보기는 어려웠고 대신에 부분적으로 파헤쳐 진 곳에는 화산송이가 많이 보였다.  화구 안이나 정상 부근에 무덤이 몇 개 있는데 이곳 산담(돌담)들은 비교적 정교하게 쌓여져 있었다. 

오름 명칭이 말해주듯 예전에 이곳의 돌을 이용했으리라 짐작이 되었다. 제주의 묘에 돌을 쌓는 이유는 분명하다. 건천 지대인 제주의 산간은 크고 작은 산불이 많이 났었기 때문에 산불예방(방지)을 위하여 산담을 쌓았으며 목장이나 방목지에 있는 마소 떼들의 출입을 막기 위하여 쌓았던 것이다.

물론 섬나라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유교사상의 일환으로 조상숭배 사상도 한몫을 했다. 그런 만큼 이 오름도 명당을 운운했을 것이다.  밧돌에서 안돌로 이어지는 과정 역시 별 어려움이 없었다. 누가 되던지 어차피 이 둘은 한 번에 만나야 할 오름인 만큼 서로의 정상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과정은 필수적인 차례가 되었다. 나란히 이어진 두 오름의 매력은 어우러진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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