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마농개..신흥리 갯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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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마농개..신흥리 갯담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5.13 23: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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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리는 '원'이라 하지 않고 '개'라고 한다. 조간대에 5개의 '개'가 있다.

신흥리 갯담

갯담(垣)
위치 ; 조천읍 신흥리 북서쪽 바닷가
시대 ; 조선
유형 ; 어로시설(돌그물)

 
▲ 신흥리_갯담

신흥리 바닷가의 조간대(朝間帶)에는 물고기를 가둬서 잡는 시설인 원(垣=갯담)을 만들어 뒀다. 원은 포구인 큰개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설치되었다.

동쪽 원은 자연적인 용암 암반이 이어지다가 끊어진 부분만을 담으로 연결하였다. 담을 쌓은 길이가 20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원 안은 꽤 넓은 편이다.

서쪽 원은 서북쪽 해안에 완만하고도 넓게 펼쳐진 백사장에 쌓았다.

명칭 ; 신흥리에서는 '원'이라 하지 않고 '개'라고 한다. 마을 갯가 조간대에는 모두 5개의 '개'가 있다.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마농개'·'새배개'·'큰개'·'알뎅개'·'도릿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동쪽 '도릿개'는 자연적인 용암 암반이 이어지다가 끊어진 부분만을 담으로 연결하였다.

담을 쌓은 길이가 20m 정도밖에 안 되지만 원 안은 꽤 넓은 편이다.

갯담 보수 ;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보수한다. 정기적인 것은 아니고 보수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보수하는데 이에 참여하지 않는 가호에서는 궐금(闕金)을 내야 한다.

어법 ; 주로 멸치들이 몰려오므로 족바지를 가지고 개별적으로 잡는다. 자기가 잡은 고기는 자기 몫이다.

이 마을에서 큰개는 마을 가까이에 있어 멸치가 몰려들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알기 마련이나 가장 서쪽에 있는 '마농개'와 동쪽에 있는 '도릿개'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

부지런한 사람만의 몫이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이 2개의 개를 '도둑개' 또는 솔짝개'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나 몇 사람만이 가서 잡아 버리면 마을 여러 사람들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도 잦았다.



《마농개》


꿩마농(달래)이 많이 자라는 갯가에 있다고 하여 마농개라 한다.(金奉禹씨 증언) '얽은지미'(岬)가 돌출하면서 후미진 안에 자리잡았다.

담 좌측에 5평 정도의 암반이 있다. 그 암반을 의지하여 담을 축조했다. 암반을 포함한 담의 길이는 47m, 폭은 2m. 바깥으로 비껴 쌓지 않은 곧은 담이다.

조간대 상층에 위치하나 어떤 썰물 때라도 물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 살짝 물웅덩이를 이룬다. 모래 바닥에 띄엄띄엄 돌멩이들이 보이며 간조 때라도 물이 고이는 곳은 300평 정도 된다.

《새배개》


동쪽으로는 '새배코지'(岬) 서쪽으로는 '농개알코지'를 의지하여 그 안에 후미진 곳에 자리했다. 두 개의 코지를 의지하여 그 안에 100평 정도의 만을 이룬다.

두 코지의 목에 8.5m의 담을 축조하여 갯담을 만들었다. 개 안의 수심은 조금 깊은 듯하여 조간대 중층을 이룬다.

바닥에는 돌멩이가 가득하고 그곳에 톳이 가득 자란다.(제주민속유적 319∼322쪽) 담을 쌓았던 흔적만 남아 있을 정도로 크게 허물어졌었는데 2004년 7월초에 20년만에 마농개와 새배개를 보수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말로는 요즘도 작은멜이 가끔 들어서 잡으러 간다고 한다.(2004년 7월 9일 김수일씨 등 면담)



《큰개》


마을 동쪽의 '동바리코지'와 서쪽의 '오다리코지'로 이루어지는 깊숙한 만의 안쪽이 '큰개'이다.

후미진 곳의 동쪽에는 '엿개'라는 포구가 있었으나 지금은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엿개(옛개)는 도로보다 안쪽으로 들어가 길 바깥 쪽 약간 남은 곳을 포구로 쓰고 있으며 알뎅개의 옆에 새로 성창을 만들었다.

포구의 서쪽에 있는 '큰개'는 썰물 때는 물이 거의 빠지지만 완전히 빠지지는 않아 물웅덩이가 이곳저곳에 남는 조간대 중층이다.

만 안쪽에는 대부분 모래가 깔렸으나 큰개의 갯담은 두 개의 암반을 의지하여 축조했다. 수천평으로 보이는 매우 넓은 면적이며 담은 'ㄱ'로 꺾인 모양으로 쌓았다.

동서 방향으로 쌓은 부분은 요즘은 보수를 하지 않아 흔적만 보이지만 폭은 2.3m 정도로 보이며, 꺾이어 남북 방향으로 쌓은 부분은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폭은 1.4m, 높이는 1m 정도이다.

길이는 240m나 된다.(제주민속유적 319∼322쪽) 더구나 2000년에 방사용 탑을 쌓을 때 큰개의 갯담을 대부분 이용해서 쌓았다고 하며 큰개는 보수를 한 지가 20년이 더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옛일을 회상하는 주민들은 '큰개에 멜이 들어사 장관이주.'라고 하며 큰 멜떼가 자주 들었다고 한다.(2004년 7월 9일 김수일씨 등 면담)



《알뎅개》


만의 동쪽 중간쯤에 있다. 물웅덩이를 이루는 곳에 갯담을 쌓았다. 길이 13.4m, 폭 2.8m이며 높이는 허물어져 알기 힘들다.

모래 바닥에 큰 돌들이 많이 깔렸다. 새로 만든 성창 옆, 탑의 바로 북쪽이다. 필자가 1983∼5년 사이에 이곳 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이 곳 근처에서 낙지가 많이 잡혔었다.

지금은 알뎅개와 웃뎅개 사이에 시멘트로 포장한 도로가 초소 쪽으로 연결되어 있다.



《도릿개》


도릿개('도'의 원래 발음은 아래아이다)는 함덕리와의 경계선상에 있다. 7.9m의 담을 축조한 것만으로 500평 정도의 넓은 개를 이루었다.

갯담은 함덕 마을과의 다리(橋) 구실도 하기 때문에 도릿개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조간대 상층에 해당되나 천연적으로 물웅덩이를 이룬다.(제주민속유적 319∼322쪽) 지금은 해안도로를 만들면서 형태가 달라져 버렸다.

신흥리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정해년(1887) 이 해는 오곡이 다 풍작이 되고 물고기와 자라가 저절로 원(垣) 안에 들어와 산처럼 쌓였으나 주민이 희소하니 보고도 못 본 척해서 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경인년(1890) 봄 3월에 성창을 고쳐 쌓았고, 큰개원(大浦垣), 새뱃개원(剡舟浦垣), 마능개원(馬陵浦垣) 등을 축성하여 바닷고기를 잡았다.

기유년(1909) 봄 3월에 해변의 각 원에 멜이 크게 들어 먼저 본 사람은 수십짐씩 잡았고 끝에 간 사람도 5~6짐씩은 잡았으니 이는 옛개동네가 생긴 이래 처음 보는 일이라고 90여세 된 장로들이 말하였다.(북제주문화원, 신흥리지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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