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동치못..수산1리 윤구동목사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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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동치못..수산1리 윤구동목사선정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5.18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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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년으로 재앙 당했을 때 곡식 사들여 굶주리는 백성 구제

수산1리 윤구동목사선정비

使相尹公久東恤民善政碑(사상윤공구동휼민선정비)
위치 ; 성산읍 수산리 731. 성읍-송당 쪽 네거리 도로변
문화재 지정사항 ; 비지정
시대 ; 조선

 


성산읍 수산리 수산초등학교 남쪽 성읍과 송당으로 갈리는 네거리길 북서쪽 밭 가운데에 비석이 있다.

비석의 좌대는 자연석 현무암 두 개 위에 하나를 올려 놓았고, 그 위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만 글씨가 있는데 가운데 큰 글씨로 '使相尹公久東恤民善政碑(사상윤공구동휼민선정비)'라고 되어 있고(久東이란 글씨는 다른 글씨에 비하여 그 크기가 반 정도밖에 안 되며 중심선에서 오른쪽으로 약간 벗어나게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 작은 글씨로 '公庶居官淸淨爲治(공서거관천정위치) 及當災歲停積救飢(급당재세정적구기)', 왼쪽에 '嘉慶二十二年十一月 日 竪(가경이십이년십일월일수)'라고 쓰여 있다.


윤구동은 순조 15년(1815) 제주목사로 도임하여 정축 10월에 형조참의로 이임하였다. 供彼庫(공피고)를 신설하는 등 청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백성을 다스렸다.

흉년으로 재앙을 당하였을 때 곡식을 사들여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여 제주도의 곳곳에 비석이 세워졌다.

비석이 있는 이곳은 속칭 '동치못'이라고 하는데 성읍·난산·성산 고성·시흥으로 향하는 사거리이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149쪽)

이 비석은 윤 목사가 이임한 지 한 달만인 1817년 11월에 세워진 것이다. 비석에는 이끼가 껴서 하얀 얼룩이 진 상태지만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嘉慶'은 청나라 인종 때의 연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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