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중간 교신..신풍리 남산망(봉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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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중간 교신..신풍리 남산망(봉수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7.10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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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봉수대 신호받아 정의현성에 연락하는 역할인 듯..

신풍리 남산망(봉수대)

위치 ; 성산읍 신풍리 1675-1번지. 남산봉 동쪽 정상에 있다.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봉수대)

 

▲ 신풍리_남산봉.
▲ 신풍리_남산망

망(望)은 봉수대를 뜻한다. 제주도의 봉수대는 일반적으로 해안에서 1-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오름의 정상 둘레에 흙을 돋우어 원형(지름 7-10m)의 둔덕을 이중으로 만들고 가운데에 봉덕을 설치한 것이다.

둔덕은 불이 옆으로 번져 나가는 것을 막는 시설이다. 연기 피우는 장소는 주봉덕 외에 약 10m의 간격으로 4개를 일렬로 더 설치하였다.


남산망은 정의현에 소속되었으며 북동쪽으로 독자망(3.9㎞) 남서쪽으로 달산망(4.5㎞)과 교신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봉수대들이 모두 해안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것과는 달리 이 봉수대는 해안에서 6.2㎞나 떨어져 있고 정의현성에서는 1.1㎞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해안을 감시하기보다는 다른 봉수대로부터 신호를 받아 군대가 있는 정의현성에 연락하는 일이 더 중요한 역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남산봉수에 대한 옛기록을 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처음 나타나며 탐라지(1653년), 탐라방영총람(1760∼1770년), 제주병제봉대총록(정조년간), 제주읍지(정조년간), 제주대정정의읍지(1793년), 탐라지초본(1842∼1843년) 등에 기록되어 있고, 정의군읍지(1899년)에는 ‘今廢’라고 되어 있다.(1996, 남제주군의 문화유적)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는 고종32년(1895)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봉수대의 형태는 중심으로부터 반경 11.2m, 14.3m 거리에 돌아가면서 둑을 쌓고 고랑을 두었으며 중심에는 높이 2.5m 정도의 봉우리(봉덕)를 만듦으로써 일반적인 봉수대의 형태(이중원형봉수대)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름 전체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나무들 때문에 봉수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는 없으며 4개의 작은 봉덕도 구분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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