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나무못 사용..용수리 덕판배 '라파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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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나무못 사용..용수리 덕판배 '라파엘'호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7.11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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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신부가 상하이에서 사제서품 받고 황해를 건너다 용수리에 표착했던 배 복원

용수리 덕판배 '라파엘'호

신창리 덕판배 '라파엘'호

위치 ; 한경면 용수리 성김대건신부제주표착기념관
유형 ; 항해어로유적
관련 시대 ; 조선

 
 

덕판배는 한반도와 제주,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연륙선, 진상품을 올리는 진상선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과거 제주인들의 기나긴 항해에 든든한 버팀목이 됐었다.

제주의 덕판배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된 '제주도포구연구'에 따르면 제주도에서는 보통 덕판배를 이용했다.

쇠못을 사용하지 않는 덕판배는 '구실잣밤나무'로 제작됐다. 제주에서는 자배낭, 조밤낭 등으로 불리는 나무로 도내 전역에 자란다. 못의 녹슬음 때문에 쇠못을 사용하지 않는 덕판배지만 이음 부분을 연결하는 못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피새'가 이 역할을 담당했는데 섬유질이 강한 '솔피나무'로 만들었다. 덕판배의 크기는 길이 6∼7m, 폭 3m가 보통이다.

덕판배는 두개의 돛대를 달고 주로 바람을 이용하는 풍선으로 덕판은 뱃머리의 받침대를 가리킨다. 뱃머리에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덧붙였는데 이는 제주 해안을 드나들 때 암초에 부딪혀 뱃머리가 잘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덕판배를 이용하여 전라남도 강진과 일본을 드나들던 연륙수단으로 사용됐는가 하면 여객·화물수송 및 일부에선 고기잡이배로 쓰였다.

라파엘호는 김대건 신부가 상해에서 한양으로 가기 위해 탔던 배다.


김대건 신부의 약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836년 Maubant 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됨(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마카오 유학
1942년 마카오를 떠나 만주 장춘에 있는 교우촌에서 생활
1944년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 서품

1845년 1월 서울 도착(페레올신부 입국을 위한 해로 개척 및 집 마련 목적)
1845년 3월 신자 11명과 서울 출발, 양자강 입구 오송항 도착
1845년 8월 사제 서품
1845년 9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김대건 신부, 신자 11명 상하이 출발(라파엘호로 명명, 선장 김대건), 9월 28일 제주도 죽도 표착, 용수리 포구에서 배 수리
1845년 9월 29일 출발, 10월 12일 강경 도착
1946년 9월 김대건 신부 순교(병오박해)

라파엘호는 어떤 배였을까. 승선했던 페레올 주교가 쓴 편지글에는 라파엘호의 외형이 다음과 같이 그려져있다.

"그 배는 길이가 25자(7.5m), 너비가 9자(2.7m), 깊이가 7자(2.1m)입니다. 이 배를 건조하는 데는 쇠못 한 개도 들지 않았고, 널판은 나무못으로 이어져있습니다. …엄청나게 높은 돛대 두 개에는 서로 잘 꿰매지지 않은 거친 광목으로 된 돛 두 폭이 달려있습니다. 뱃머리는 선창까지 열려있는데, 그것이 3분의 1을 차지합니다. …갑판의 일부분은 자리로 되어있고, 일부분은 아무런 고정기구도 없이 그저 잇대어 죽 깔아놓은 나무판자로 되어있습니다. 거기다가 배 안으로 들어가는 구멍 셋이 있습니다."(한라일보 2010년 9월 6일)

라파엘호는 1999년 천주교 제주교구가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한 기념사업으로 편지글 등을 토대로 제주대에 용역을 의뢰한 것으로 덕판배의 일종이다. 관련 전문가의 연구 결과 실제 배의 길이나 너비는 편지글 내용보다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교구는 1999년 성산읍 오조간이조선소에 의뢰해 라파엘호를 복원했다. 오조간이조선소 대표는 지금은 고인이 된 김천년씨. 1996년 덕판배 복원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배 목수였다. 삼나무로 제작된 라파엘호는 못 하나 박지 않고 3개월여의 노력 끝에 완성, 1999년 7월 31일 진수식을 가졌다.


이 배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황해를 건너다 북군 한경면 용수리에 표착했던 배를 복원한 것이다. 이 배는 장거리 항해를 목적으로 지은 배이기 때문에 갑판이 있고 선실에는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다.

1999년 9월 복원한 라파엘호로 상해-제주 해상 순례를 시도했으나 높은 파도로 중단되었다.

라파엘호는 항해 재현 행사 후에 용수리 포구에 놔두었다가 천주교신창교회에 옮겨 보관하다가 김대건신부기념관을 짓게 되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신창성당에 있을 때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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