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펄랑..비양리(비양도) 술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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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펄랑..비양리(비양도) 술일당
  • 고영철 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7.13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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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고종 13) 혐재리에서 분리, 사람 살기 시작해

 

비양리(비양도) 술일당
 

유형 ; 민속신앙
시대 ; 조선∼현대

▲ 비양리_술일당
▲ 비양리_술일당전경

위치 ; 비양도 포구에서 북쪽으로 50여m 떨어진 곳에 속칭 '펄랑'이라고 하는 늪지대가 있고 그 동쪽 20여m 떨어진 곳에 한림초등학교 비양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펄랑'과 비양분교 사이에는 높이 2m 가량되는 암반이 있다. 그 암반 위 우묵한 곳에 당을 마련하였다.

비양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적이 있고,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에 따르면 비양도에는 고려 말 해상 방어를 위하여 망대를 배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으나, 1876년(고종 13)에 본격적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협재리에서 분리되었다.

제단은 시멘트로 만들었는데 규모가 매우 작다. 사철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으며, 지전, 물색, 명실 등을 걸어 두고 있다.

'종남머리 술일한집'을 모신다. 이 신은 비양도 사람들의 생산·물고·호적을 관장한다. 제일은 매 술일(戌日) 곧 개날이다.

이에 따라 개당이라고도 한다. 금릉 또는 옹포에서 가지 갈라 온 당이라고도 한다. 현재 매인심방은 없으며, 뭍에서 보살할망이 와서 필요에 따라 비념을 하고 간다. 돼지고기도 금기하지 않는다. 『무가』에 본풀이가 실려 있다.(제주의 마을 비양리)


〈본풀이〉; 종남머리 술이한집 개로육서 가는 선 오는 선 낙기선 삼천 어부 일만 해녀 차지한 영감또 술일한집. 제일 1월 1일. 자손에 생기맞는 날 택일해서 제를 지냄.(애월면 하귀리 남무 43세 강조규) (제주도 무가본풀이사전 582쪽)
《작성 05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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