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소독동산..노형동 광평 당팟세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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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소독동산..노형동 광평 당팟세경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7.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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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찾아가 비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노형동 광평 당팟세경당

노형동 광평(너븐드르) 당팟세경당

위치 ; 노형동 한라대학 입구 네거리에서 북쪽으로 400여m 가면 e-편한 아파트 입구 어린이공원 안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간신앙(堂)

▲ 노형동_광평본향당(내).
▲ 노형동_광평본향당(외).

이곳은 속칭 소독동산이라고 하는데 뜻은 소의 머리라고 한다. 당은 원래는 이보다 300여m 남쪽에 있었는데 최근 대규모 주택지로 개발되면서 2004년 봄에 이곳으로 옮겼다.

당을 옮기면서 원래 당에 있었던 나무들(팽나무, 사철나무, 꾸지뽕나무 등)도 원래의 위치처럼 옮겨 심었는데 아직 제대로 활착되지 않은 것 같다.

약간의 물색도 나뭇가지에 묶인 채로 옮겨졌으나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당의 명칭은 '당팥세경당' 또는 '너븐드르당팥세경당'이다.

광평마을은 현치적(1640∼1728)이라는 사람에 의해서 설촌되었다. 이곳은 1700년 이전에는 나무와 억새로 뒤덮인 황무지였는데, 현치적이 황무지에 들어와 억새밭을 일구고 사냥을 하면서 살기 시작했다.

이 즈음 아래쪽 동네인 오도롱(지금의 이호2동)에는 풍수지리로 유명한 고전적이 살고 있었다. 고전적은 종종 현치적이 살고 있는 '진밭' 부근을 통해 다니곤 했는데 이렇게 알게 된 두 사람은 친하게 되었고 현치적은 학식이 높은 고전적을 존경하였다.

사냥에 능한 현치적은 꿩을 두 마리 잡으면 한 마리를, 세 마리 잡으면 두 마리를 고전적에게 갖다 주었다. 고전적은 마음 착한 현치적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집자리를 잡아 주기로 결심했다.


"현서방, 내가 터를 하나 골라줄 테니 거기에 집을 짓고 살아 보게. 당대에 밥은 먹을 걸세."
이렇게 해서 현치적은 '진밭'에서 '뒷도르'(여뀌왓이라고도 부름)로 옮겨 살게 되었는데 그 덕분인지 해마다 소들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서 소 부자로 소문이 날 만큼 잘 살게 되었다.

또한 그는 손재주가 있어서 짚신을 잘 삼았다. 소를 먹이러 나갈 때에 짚을 한 짐 지고 가서 돌아올 때는 지팡이에 짚신을 가득 꿰어 둘러매어 돌아오곤 하니 그의 집에는 짚신이 쌓일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짚신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이 길을 가다가 헌 짚신을 신고 가는 사람이 보이면 '너븐드르(광평마을) 현서방네 집에 가서 짚신 한 켤레 신엉 갑서.'하는 말이 인사처럼 되었다.

그리고 그가 부자로 살게 된 데는 당에 대한 정성이 지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날 당밭 부근에서 소를 먹이면서 높직한 '잣' 위에 앉아 신을 삼고 있었는데 어떤 여인이 힘 없이 다가와서는 '밥 호꼼 줍서.' 하며 애걸하였다.

인정이 많은 그는 '여기 조금만 앉앙 이십서. 얼른 집이 강 밥을 갖다 드리쿠다.' 하고는 얼른 집에 가서 밥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앉아 기다리고 있어야 할 여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배고파 기력이 없던 사람이 어디 가 버릴 리가 없는데….' 곰곰이 생각할수록 그 여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인은 신령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 여인이 앉았던 자리에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올렸다. 그 후부터는 해마다 정월이 되면 그 자리에 제물을 차리고 가서 정성을 드렸다. 그러자 해마다 농사도 잘 되고 살림이 넉넉해갔다. 이것을 본 동네 사람들이 차차 그를 본받아 정성을 드리게 되니 오늘날 광평마을의 본향당이 된 것이다.

어느 해 흉년이 들자 현치적은 모아 둔 곡식과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나누어 사흘치 양식을 베풀었다. 이 소식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에게는 선공감참봉(繕工監參奉) 벼슬을, 큰아들에게는 종4품 첨정(僉正)을, 둘째 아들에게는 찰방(察訪)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노후에는 다시 조정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직을 하사했다고 한다.(老衡誌 139쪽)


제일은 정해진 날이 없고 쇠날(丑日) 중 아무 때나 간다. 신년이 되어 상정일에 마을 포제가 치러지고나면 부녀자들은 새벽부터 당에 간다.

제물은 메 5그릇, 과일(사과, 유자), 생선, 돌레떡, 곡식을 기본으로 하고 채소는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안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메를 5그릇 준비하는 것은 송씨할망, 삼승할망, 마누라, 세경할망, 보젯또(피부병을 관장하는 신)를 위한 것이다.

처음에는 사발메 2기, 보시메 1기를 가져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마을에서 시집온 사람은 친정 동네에서 모시던 당 할머니를 위한 메를 하나 더 가지고 가서 예를 들면 '이거 도두리 할마님도 오랑 감수다.' 따위의 축언을 한다.

당 이름이 세경할망인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농사를 짓고 수확한 후에 가을 곡식으로 좁쌀이나 깨를 제일 먼저 거둔 것으로 한 줌씩 떠놓아두었다가 가지고 간다.

피부병이 있을 때에는 삶은 달걀 3개를 추가한다. 허물을 관장하는 보젯또(보젯할망, 허물할망)에게 바치면서 달걀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드러나듯이 피부병이나 허물을 깨끗하게 낫게 해 달라는 비념을 하는 것이다.(이런 신앙형태를 類感呪術이라고 함) 한 촌로(村老)의 말은 신앙의 깊이를 짐작하게 해 준다.


"당에 댕기단 아이덜도 크곡 허난 설러부러십주. 경헌디 한 칠팔년 이선 아덜이 고등학교에 가게 되니 엉덩이에 허물이 납디다. 점점 커가는디 걷지도 앉지도 못하게 되어도 곪질 안 허여마씸. 병원에 강 약을 써도 곪진 안 허곡 먹 닮은 피가 괄괄 나는디 좋질 안 허연 한 일년을 병원마다 안 댕긴 디 어시 막 댕겨수게. 허단허단 버쳔(힘에 부쳐서, 어쩔 수 없어서) 이젠 한 번 본향엘 가 본다고 거길 가수게. 남의 말이 계란을 삶앙 가 보렌 허난 계란을 세 개 삶아놓고 심방을 데련 가서마씸. 가네 빌어수게. 그 후론 허물도 좋아불고 다시는 나지도 안해마씸."

이 당에는 광평 사람들만 다니는 게 아니라 정존마을 사람들도 다닌다. 광평 살다가 멀리 나가 살던 사람이 몸이 아프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이 당에 와서 액을 막기도 하는데 매인심방이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찾아가 비념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특별한 경우에 심방을 대동하기도 한다.

본풀이① ; 예--, 오도롱으로 가지갈라온 송씨할마님, 석가여래불법할마님, 얼굴 차지(용모를 관장한다는 뜻) 혼합천자별금상(混合天子別今上)마누라님(=마마신), 염제신농씬(炎帝神農氏) 상세경, 중세경 문도령, 하세경은 가령비, 세경 장남은 정수남이(=우마를 관장하는 신), 그 사이에 허물 내우는 보젯또(=피부병을 관장하는 신). 낳는 날 생산 차지 죽는 날 물고 차지 호적(戶籍) 장적(帳籍) 인물도감(人物都監) 오개통(五家作統) 차지하던 한집, 올레 안에 좌정한 조상님네랑 몬딱 고찌 동력(同力)헙서.

천하 해동 조선 남방국 우리 나라 노자지국(老子之國?) 장과척숙(未詳) 사백리 주회(周回)에 물로 금을 곰춘(경계선을 그은) 섬이우다. 삼문(=제주성의 삼문) 일사당(一祠堂) 들어사민 일도 이도 삼도리 넘엉 노형마을 천하대천(天下大川) 너븐드르(광평마을)우다. 성은 ○○○, 나이는 ○○생(幾歲) 예명(列名. 가족들의 성과 나이를 각각 고하면서 축원하는 것을 예명올린다고 한다)올렴수다.

(가족들 모두에 대해서) ○○살 받은 공사(恭事=恭神, 儀禮, 祝願의 뜻)우다. 과세문안 정중 오랐수다.(정월에는 과세문안왔다고 하고, 보리 거둘 때에는 '보리 고슬 촐련 오랐수다', 가을 추수 때에는 '고슬동장 오랐수다' 등으로 내용이 달라진다.) 춘하추동 사시절(四時節) 내린 역개 얻어먹은 역개 바치레 오랐수다.

성은 ○○○, 나이는 ○○생(幾歲) (가족들 모두를 남자 먼저 여자 나중의 차례로) ○○살 받은 공사로 모든 추물 올렴시메 받읍서. (가지고 간 제물을 하나하나 ○○ 받으십서, ○○ 받으십서 한 다음) 자손덜이 오랑 상귀(未詳) 올령 가건 흩은 재물 잃은 재물 다 내수와 줍서. 멩(命)과 복을 제겨(차곡차곡 쌓는다는 뜻) 줍서.

자손창성 부귀영화 시켜 줍서. 소원성취 재수대통 시켜 줍서. 춘하추동 사시절에 추하양등 농사짓건 오곡풍등(五穀豊登) 육축번성 만물번성 추곡만발 각곡성실 되게 허여 줍서, 모든 오만육축덜도 다 고찌(같이) 낙루(落淚)허게 말앙 그늘롸 줍서.

이 시국의 벵난지중 가운디라도 할락산이 펭지되나 바당물이 잦아지나 천하각국 운영굿이 칠지라도(소란해지더라도) 이 자손덜랑 소원성취 바랍네다. 정월 이월 삼월달 섣달 그믐날까지 달로 막아 줍서 날로 막아 줍서. 벵난지중 가운디 모든 시게돌림(전염병) 모진 신벵 모진 독감 도둑적칼 강도덜 많읍네다. 이런 일 막아 줍서. 구설모략도 막아 줍서. ….

이렇게 축원을 드린 후 잔 받아 분부하고 철변하여 궤묻음을 하고 산 받아 점쳐서 결과를 말해 주고 각 제물을 조금씩 떠서 부어 넣음으로써 끝낸다.(老衡誌 194∼196쪽)

본풀이② ; 이 당 한집님은 쳇째 삼신불도또, 십오세 미만 어린 애기를 키우는 당이우다. 얼굴 차지 혼합 차지, 벨금상마누라. 든 보제, 난 보제, 자손덜 몸에 부시럼질 주곡. 큰도한집 송씨할마님, 세경신중마누라. 세경땅 열두 가지 시만국(十月萬穀) 보리 농작 시켜 오던 신당한집. 제일은 자손들 생기 맞는 날(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3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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