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환경, 그림을 그리기도 어렵다"
상태바
"제주환경, 그림을 그리기도 어렵다"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8.07.24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교사출신 화가 신경수 '보앙'갤러리 대표는 말한다
아름다운 마을 납읍리에 새워진 보앙갤러리

 

납읍리는 자연환경이 아름답다.

그 지형이 기묘하니 동북에서부터 애월 건마루 마이동산이 남쪽 금산(錦山)으로 이어지고, 검은 닭마루 무지동산 꿩장이 고개가 서북으로 돌아오는 능선으로 이어져서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수려하며 광활한 분지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능선(陵線) 너머로는 서쪽에 143m 높이의 어도봉이 손짓하고 동북쪽으로는 높이 175m의 고내봉(高內峰)이 마주하여 정북(正北)으로는 153m의 곽악(郭岳)이 마을의 지반을 받쳐주고 있어 흡사 옥쟁반을 펴 놓은 듯 하다..(납읍리 마을소개에서..)

납읍리는 성안이라고 불리웠던 제주시와 멀리 떨어진 중산간마을이다.

지금이야 길이 뻥뻥 뜷려 다니기에 어렵지 않은 곳이지만 난대식물의 보고인 금산공원이나 납읍토성이 그나마 이 마을의 존재를 높게 알려줄 정도로 도시지역과는 사실 아직도 먼 곳이다.

이 마을 한복판에 ‘보앙’이라는 갤러리가 만들어졌다.

평생 미술선생으로 교직에 몸담았던 신경수 화백(63)이 ‘보앙’이라는 개인갤러리를 이곳에 세운 것은 여러모로 커다란 의미가 있다.

예술과 접하기 어려운 이 지역 학생들과 주민들을 위한 만남과 소통의 장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경수 화백도 이곳에 갤러리를 만든 이유를 “학생들과 함께 미술과 음악 조각과 서예 등 못다한 교육의 뜻과 함께 주민들과도 작은 음악회 개최 등을 통해 소통과 만남을 위한 자리로 납읍리에 갤러리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연을 그림으로 표현해 온 교사겸 작가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가 만든 갤러리 상설전시관에는 70여점의 제주도 풍경화가 늘 결려 있다.

아직도 현역인 그는 미술은 물론 음악활동 서예 등 예술적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이같은 그의 삶에 대해 지난해 10월 개관기념으로 열렸던 신경수 개인전을 맞아 김유정 미술평론가는 ‘문명과 흔적을 지운 기억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그는 제주의 자연이 덜 훼손되고 천천히, 신중하게 변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면, 제주의 아름다운 경관을 오래오래 보존할 수 있는 길로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며 그의 제주환경에 대한 애정을 잘 소개하고 있다.

앞으로 아름다운 마을 납읍리 문화예술의 구심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보앙’(제주말 ‘본다 또는 보아서’)을 찾아 그의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꿈을 들어보았다.

신경수 화백

-이 갤러리는 언제 오픈했는지요..

“지난해 10월28일에 오픈했습니다. 개관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관계로 많은 분들께 알리지를 못해서 아직 이곳을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개인갤러리라는 점이 특장점이겠습니다만 ..제주도에 이런 갤러리가 많이 있습니까..?

“제주도에는 약 100여개의 개인 갤러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술갤러리나 박물관 등 100여개나 더 되지만 젊은 작가들은 갤러리와 카페를 겸하는 경우도 있고 작업실로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합니다만 제가 만든 보앙갤러리는 제주사람이 만든 갤러리 중에서는 제일 큰 갤러리로 알고 있습니다”

 

-작품전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요..

“현재는 제 작품만 70여개 정도를 상설 전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유명작가 유치 등 많은 전시가 이곳에서 이뤄지도록 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아마 특별한 작가들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작 작가들은 다른 곳에서 전시회를 많이 열기도 합니다만.. 앞으로 작품 위주의 전시회를 통해 많은 작가 분들이 이곳을 활용해 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에 갤러리를 만들 때의 계획은 무엇이었는지요..

“저는 지난해 8월말에 교사직을 퇴임했습니다. 퇴직전에 애월고에서도 근무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밴드를 가르쳤습니다. 특히 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뽑아 예능교육을 중점적으로 시켰지요. 당시 음악실이 없어서 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에 이처럼 학생들을 가르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내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으로 열심히 그리다가 가자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 이 갤러리를 만든 계기가 된 것이지요”

 

-앞으로 이 갤러리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은데..

“아직 오픈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금년에는 조금 쉬려는 생각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또 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중입니다. 6개월 정도 내부정리 등을 하며 올해는 푹 쉬면서 내년부터 해야 할 일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서양화를 30여년 이상 계속 그려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한국화를 더 집중해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지역 주민이나 학생, 작가들과의 교류 등의 일도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교사생활과 작가로서의 삶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음악과의 인연은 또 어떻게 맺어진 것입니까..

”고등학교(제일고)에 다닐 때 당시 체육대회 나가면 오현고는 밴드로 상대 학교의 기를 죽였지요. 그래서 당시 제주일고에도 음악부를 만들자고 해서 저는 제1기로 음악부에 들어가 드럼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음대에 가고 싶었지만 당시 드럼주자를 뽑는 대학이 없어서 제주대 미술교육과 제2기로 입학하게 된 것입니다..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접한 계기가 됐습니다“

 

-갤러리 공간에 색소폰과 트롬본은 물론 드럼과 각종 악기 등이 있어 작은 음악회를 열어도 될 정도로 보입니다..

“여러 악기도 준비돼 있지만.. 음악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꾸 잊어버리게 돼서 갤러리에 오면 자주 연주를 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도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실제로 이날 색소폰을 연주한 신경수 화백의 연주솜씨는 수준급 이상이었다)

신경수 화백은 색소폰연주도 수준급이었다

-미술, 음악 등 재능이 다양한데 어릴 때부터 예능에 소질이 있었던 건가요..

“실은 어릴 때부터 악기를 다루고 그림을 그렸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일본에 사시던 외삼촌이 제주에 오실 때 미술재료를 갖다 주셔서 초등학교때도 제 그림은 색깔을 칠한 작품으로 거의 유일하게 항상 학급 뒷 공간에 항상 붙여질 정도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상도 자주 받았습니다. 지금은 교실 뒷면에 사물함을 놓아버려 솜씨자랑 등의 공간이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옛날 학교에서는 그렇지가 않았지요. 그런 점에서 시나 그림 등 교실 뒷면에 아무 것도 붙이지 못하게 된 것은 교사나 학생들에게도 아쉬운 일입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남보다 먼저 미술 등을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음악과 미술교육 그리고 전시 서예나 도자기 공예 등 보앙갤러리의 활용도가 앞으로 다양해 지겠네요.

“갤러리는 일단은 제 작업실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지만..물론 그렇게도 활용하면서 미술이나 서예 조각 음악 등 베우려는 후배들이나 애월읍에 살고 있는 아이들, 그리고 전업작가의 작품 전시 등은 무료대관을 하는 건 어떨까 하는 계획도 세우고 있습니다

요즘은 문화센터 등에서 교육을 거의 무료로 시키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올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좋은 것이라 미술과 음악 등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나 학생들에 대해 정물화 풍경화 인물화 등 회화를 가르치고 조소 조각 디자인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배우려는 사람이 있을 경우 그런 공간으로도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대학에서 미술관련 분야를 다행스럽게 모두 배웠습니다. 당시는 교육과라 전공이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배워서 건축제도 사진 독법 등 많은 부분까지도 알 수 있게 됐지요. 서양화 조소 조각 목공, 공예분야에서 도자기를 만드는 것까지 다 배울 수 있고 가르칠 준비도 다 돼 있습니다”

도자기작품을 보여주는 신 화백

-미술과 음악 등 예술활동을 하시면서 인생에 도움된 것과 손해 본 것이 있는지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요..

“저는 퇴임전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강조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이 세상에 어떤 사물이 있는데 우리에게 눈이 있어서 보면, 형태를 가진 것은 모두 색채를 띄고 있고 형태와 색체를 가진 것은 전부 수축하고 팽창하며 움직이고 있고, 움직이는 것은 소리를 내고 있고, 소리내고 움직이고 형태나 색채를 갖고 있는 것은 집단의 개성, 즉 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인물화를 그리고 멋있는 집을 갖고 있으면 풍경화를 그려봐라, 또 건강하고 싶으면 서예를 하라고 권유했었지요.

소리도 다들 고운 소리니 맑은 소리니 하지만 바른 소리 쓴 소리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이 소리도 우리에게는 엄청 중요하다

소리를 낼 줄 아는 건 악기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을 대할 때 바른 소리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이처럼 자라나는 아이들의 심성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예,체능교육이 중요하고 이를 정신교육처럼 발전시켜 간다면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봅니다.”

 

그는 학생들과 마을주민 작가들이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욜린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가 있는지요..

”저는 첫 번째 개인전 하면서 2년에 한번씩은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회를 하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개성이 강하지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조직이나 단체생활이 잘 안 맞아 미술협회 등에서의 활동을 접었고 더욱이 내가 화가라고 특별히 나서본 적이 없습니다만 앞으로는 저에 대해 또는 작품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려나갈 생각입니다.“

신경수 화백은 인터뷰 말미에 ”제주도의 원시적인 모습이 아름다운 곳인데 좋은 풍경이 있는 곳은 최근 들어 함부로 들어갈 수가 없게 된 곳이 많아졌다는 점이 아쉬운 일“이라며 ”좋은 풍경에는 거의 건물이 다 들어서서 좋은 환경은 지금 다 잃어버렸다는 점이 참 아깝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제주환경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그는 예전에 호텔이 사라진 곳에 학이 날아와 자연 환경복원이 되는 자연스런 모습을 기억한다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제주도의 환경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점을 크게 아쉬워했다.

한편 신경수 화백은 제주시 한두기마을(용담동)에서 태어났다.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후 제주대 사범학과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제주대 교육대학원 미술학과(석사)를 나왔다.

교육발전 공로로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한 그는 그동안 단체전 기획전 공모전 등에 다수 출품했고 현재 한국미술협회 회원과 보앙갤러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