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본래는 객주집..성읍1리 조일훈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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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본래는 객주집..성읍1리 조일훈 초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8.16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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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읍 민속마을의 중심가에 위치한 전형적 민가

성읍1리 조일훈 초가

 

문화재 지정사항 ; 제주도 중요민속자료 제 68호(1979년 1월 22일)
위치 ;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872번지
유형 ; 고건물(민가 초가)
시대 ; 조선(18세기말)

▲ 성읍리_조일훈_가옥_안거리
▲ 성읍리_조일훈_가옥_전경


18세기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은 성읍리 정의현의 객사였던 전 성읍초등학교와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그 남쪽에 있으며 본래 객주집이었다고 전해진다.

325평에 이르는 넓은 대지에 안거리(20평), 밖거리(18평), 모커리(6평), 이문간(5평) 등 5채의 건물이 마당을 가운데 두고 배치되었다.

안거리는 작은방이 없는 전형적인 제주도의 삼칸집이다. 상방(대청마루)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는 큰구들(안방)과 고팡(庫房)을, 다른 쪽에는 정지(부엌)를 배치하는 삼칸집의 평면에 작은구들을 정지 한쪽에 설치한 형태이다.

안거리의 문들은 많이 변형되었지만, 주춧돌이나 풍채의 받침돌, 물팡 등도 품위 있는 옛 민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밖거리에는 쟁기 등 재래식 농기구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마소에게 물을 먹이던 돌 구유 몇 개도 마당 구석에 남아 있다. 동전을 넣어 두는 돈궤가 보관된 것은 예전 객주집이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이다.

창고가 들어선 자리에는 예전 조일훈씨 개인 소유의 말방아가 있었는데 이는 조일훈의 조부가 세웠던 것이라 한다.

제주도에서 개인 집에 말방아를 설치한 예는 매우 드문 것으로 그만큼 대대로 대농가(大農家)였음을 실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마소를 많이 키웠으므로 울타리 안에는 마소를 매어 두는 시설이 있었으며, 마소를 매어 두는 공간과 안마당 사이에는 정낭이 설치되어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에는 정주목이 남아 있다.

이 가옥은 예전 정의고을 당시 주요 도로인 남문길에 울타리를 둘렀으며 '노도리방죽'이라는 남문길 옆 작은 못과 대문간이 맞서고 있어서 정의고을의 요지에 위치한 셈이다.

따라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고 좁은 '올레'는 없고 대문간이 길가에 뚜렷이 배치되어 있다. 서쪽 울타리 돌담에는 '이기선휼궁비'가 끼어 있었다.(이 비석은 지금은 성읍리사무소로 옮겨졌다.)

성읍 민속마을의 중심가에 위치한 전형적 민가이며, 예전 객사와 이웃한 객주집이면서, 독농가의 가옥으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제주의 문화재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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