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붕성지통..성읍1리 조명윤처김씨효부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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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붕성지통..성읍1리 조명윤처김씨효부정려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8.21 0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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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백골이 연인의 피를 빨아들인다'는 속설 비문에 적혀

성읍1리 조명윤처김씨효부정려비(金氏孝婦旌閭碑)

위치 ; 표선면 성읍리 969-4번지. 정의읍성 동문 밖 100m 지점 우측 돌담 사이
시대 ; 조선(1891)
유형 ; 비석(효부)
문화재 지정 사항 ; 비지정
규격 ; 높이 60㎝, 너비 36㎝, 두께 12㎝, 석실 높이 80㎝, 지붕 모양 돌을 얹어 놓았음.

 

 
 

효부 김씨는 조명윤(趙命允)의 처이다. 김씨는 본래 천성이 어질고 온화했으며 행실도 고결하였다.

혼인한 후 시부모님을 극진히 섬기고 남편을 존경하여 가정을 화목하게 하였다. 불행히 남편이 일찍 죽자 그녀 또한 따라 죽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시아버지의 나이가 연로(年老)하여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으므로 마음을 고쳐 어려운 살림인데도 시아버지를 봉양하였다.

시아버지의 병이 위독하게 되자 대변을 맛보며 치료하고 병이 낫기를 하늘에 빌었으므로 온 마을 사람들이 감복하였다.

이런 사실이 이웃에 알려져 조정에서는 고종 28년(1891)에 그 효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려(旌閭)와 함께 효부비(孝婦碑)를 세웠다.(남제주군의 문화유적 160쪽, 남제주군 문화유적 실태조사보고서 149쪽)


비문은 전면에만 있는데 贈嘉善大夫戶曹參判趙命允妻貞夫人金氏旌閭(이상 큰 글씨 석 줄) 光緖十七年辛卯八月十二日判下(이상 작은 글씨 한 줄)이라고 새겨져 있다. 光緖는 청나라 光緖帝의 연호이며 辛卯는 1891년이다.

풍양조씨 가승(豊穰趙氏家承)에는 다음과 같은 행장(行狀)이 기록되어 있다.


二十一世 允永 初諱命允 嘉善大夫戶曹參判 墓在溫平生水洞午坐子向 配貞夫人光山金氏良謙女 生有卓異之行早値崩城之痛每欲下 但舅姑年高在堂不敢辜恩生事葬祭尤極一鄕莫不稱善自洞報官自官部旣有 揚之文後光緖辛卯判下棹楔之典後孫蒙其先蔭烟戶雜役特爲 減矣 墓在溫平生水洞先墓側辛坐乙向 有碣旌門在城邑里東門外大路北 有四子三女 忌六月二十日 配忌二月十六日(豊穰趙氏家承 日∼月쪽)

여기서 崩城之痛이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것인데 남편을 잃은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진시황 때 제(齊)나라 范杞梁(범기량)의 아내 맹강녀(孟姜女)가 그 남편이 성(만리장성)을 쌓는 부역(賦役)에 동원되어 가서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남편을 찾아 나섰다.

남편이 있는 곳에 이르렀더니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맹강녀가 성(城) 밑에서 곡(哭)을 하자 폭우가 내려 성이 무너졌다.

무너진 성 속에서 수많은 백골들이 노출됐다. 맹강녀는 사람의 백골이 연인의 피를 빨아들인다는 속설을 떠올렸다.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일일이 백골 위에 떨어뜨렸다. 어떤 백골이 피를 빨아들였다. 그렇게 해서 남편의 유해(遺骸)를 찾았다고 한다.(경향신문160803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이 일을 '맹강녀곡장성(孟姜女哭長城)'이라고 부른다.
《작성 060201, 보완 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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