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조공천..외도2동 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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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조공천..외도2동 월대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09.1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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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내려와 맑은 물가에 비친 달그림자 장관 즐기던 누대

외도2동 월대

월대(月臺)
위치 ; 제주시 외도2동 230번지. 외도천변
유형 ; 놀이시설
시대 ; 조선∼일본강점기

▲ 외도1동_조공포터(디제).
▲ 외도동_월대


외도천(도근천)은 흐르는 하천이 드문 제주도에서 연중 맑고 풍부한 냇물이 흘러 은어의 산지로 유명했으며 언덕에 소나무와 팽나무가 우거져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여름철의 놀이터로 이름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시문을 즐기는 선비들이 모여 시회를 열기도 했으며 연회를 베풀고 상춘을 즐기기도 했던 유서 깊은 명소였다.


물이 깊고 맑아 뱀장어와 은어가 많이 서식하고 있었는데, 특히 이곳에서 나은 은어는 진상품이어서 옛날에는 잡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물도 줄어들었고 은어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김상헌은 이 도근천에 깊은 못이 있는데 모양이 수달 같은 동물이 잠복하고 있어 변화를 일으켜 사람의 보물을 이끌어 당기어 못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소개하고 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중 혜일(慧日)의 글을 실려 있다.


"한라산 높이가 몇 길인가. 절정 위에는 신비한 못물이 모였고, 나누어 나와 북으로 흘러가서 아래에 조공천(朝貢川)이 되고, 달린 폭포가 어지러이 물방울을 뿜어 둥근 구슬처럼 달아나네. 평온하게 흐르는 물이 수리(數理)나 되는데 맑고 깨끗하여 푸른 하늘을 비치네.

도 닦는 사람 종해(宗海)라는 이가 있어 냇가에 암자를 세웠네. 이미 산수의 낙을 따르고, 또 향화(香火)의 인연을 부치었다. 서늘한 가을 아름다운 달, 저녁에 바위를 쓸고 차 마시는 자리를 열었다."


김상헌의 <남사록>에 따르면 ‘도근천은 일명 수정천(水精川)이라고도 하는데, 지방사람들의 말이 난삽하여 도근은 곧 조공이라는 말의 잘못된 표현이라 한다.

언덕은 높고 험하여 폭포가 수십 �을 날라 흘러 그 밑에서 땅속으로 스며들고, 칠,팔리에 이르러서는 다시 돌 사이로 솟아나와 드디어 대천(大川)의 하류를 이루었는데, 이곳을 도근포라 하였다’라고 한다.

김상헌은 이 도근천에 깊은 못이 있는데 모양이 수달 같은 동물이 잠복하고 있어 변화를 일으켜 사람의 보물을 이끌어 당기어 못 속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고 소개하고 있다.(잊혀져가는 문화유적)


월대는 도근천(외도천)의 모양이 반달 같고 옛날 시인․묵객들이 이곳에서 달뜨기를 기다렸다가 시흥을 돋우던 곳으로 몇백년 전부터 월대라고 불렀다고 한다.(제민일보 1995년 9월 14일) 석량(石梁, 돌다리)이 1960년대까지도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었다.

「月臺」라는 비석과 「使相金□□淸德恤民碑」, 「使相梁公憲洙善政碑」, 「使相尹公恤民善政碑」가 세워져 있다.


월대 포구와 도근천은 이곳에서 조공할 물품을 실어 나르는 포구였다고 해서 조공포(朝貢浦)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외도천 주변에서 탐라국시대의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도근천 상류는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는 경관 좋은 무수천(無愁川)이 있다.


월(月) 字를 마치 반달을 그리듯이 쓴 「月臺」碑의 뒷면에는 가운데에 큰 글씨로 〈외도갑자신흥회(外都甲子新興會)〉라 새기고, 우측에 〈主催 金慵(?) 李重華 李亮皓 高性模 文世勳 崔濟斗〉, 좌측에는 〈主催 □□□(쪼아내어 글자 확인할 수 없음) 朴孟浩 金信熙 金昶宇 李辰珩 朴昌植〉라고 새겼다.

월대는 옛날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맑은 물가에 비친 달그림자의 장관을 즐기던 누대라는 뜻이다.


月臺 전각비(篆刻碑)의 글씨는 한말 유학자인 연농 홍종시(硏農 洪鍾時)의 필적이다. 홍종시의 필적은 삼성혈의 ‘乾始門’과 명월리 ‘明月臺’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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