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큰지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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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큰지그리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09.20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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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598m 비고: 118m 둘레: 2,164m 면적: 344,976㎡ 형태: 말굽형

 큰지그리

별칭: 지기리악(之基里岳)

위치: 조천읍 교래리 산 119번지

표고: 598m  비고: 118m  둘레: 2,164m 면적: 344,976㎡ 형태: 말굽형  난이도: ☆☆☆

 

 

초원을 거느렸고 기슭 아래에는 편백나무가 숲을 이뤘으며 전망하기 좋은 화산체...

크고 작은 뜻을 붙여서 큰지그리와 족은지그리로 구분을 하고 있지만 지그리 자체의 어원이나 뜻은 알려진 바가 없다. 한자로 지기리악(之基里岳)으로 표기를 한 것으로 봐서는 마땅히 붙일만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순수와 억지를 통하여 맞춰본다면 주변을 에워싼 오름과 초지들 틈에서 갈라진 채 솟은 봉우리나 산 체를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능선이나 화산체의 외형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들 이렇다 할 추측조차 안 나온다. 

큰지그리가 족은지그리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기에도 무언가 석연치 않다. 반대쪽의 바농오름에 더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은 형제 보다 각각 다른 명칭이 어울릴 만도 하다. 큰지그리가 자리 잡은 주변은 조천과 봉개 권역의 인기가 있는 여러 오름들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하나같이 당당하고 잘난 모습을 내보이려 하는 산 체들이 쉴 새 없이 두 눈을 분주하게 한다.

큰지그리의 아래로는 목장과 초지가 드넓게 펼쳐지며 숲을 이룬 곶자왈 일대가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정상부의 남쪽(남동. 남서)으로 벌어진 두 개의 굼부리가 있으며 남동쪽의 경우 얕은 편인데 묘가 있으며 전형적인 말굽형임을 한눈에 알 수가 있다. 교래자연휴양림을 통하여 큰지그리오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기도 하다.

숲길을 따라 힐링을 하다가 초지를 만나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고 편백나무 숲을 거슬러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각본도 각색도 없이 자연이 제공한 공간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은 꾸밈보다는 순수가 우선이고 그 결실은 덧셈으로 장식이 된다. 숲길과 오름! 꿩 먹고 알 먹고, 마당 쓸고 돈 줍는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비고(高)가 118m로서 남서향의 말굽형 화산체인데 높이를 생각하면 최적의 조건인데다 정상이 배려하는 전망대는 오른 자에게 반드시 보람을 안겨준다. 곶자왈과 초지를 따라 환경의 변화가 잘 이뤄지는 때문에 워밍업의 고민은 출발부터 버려도 된다.  

과정과 진행이 아름다운 만큼 탐방의 깊은 맛이 나고 등정의 쾌감을 넉넉하게 얻을 수 있는 오름이다. 큰지그리는 봉개의 민오름을 경유하여도 되며 족은지그리와 연계를 하는 탐방도 가능하다. 그러나 교래 자연휴양림이 생기고 난 후 곶자왈 탐방로가 생긴 이상은 달리 선택의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행여 시간이나 체력적인 부담이 없다면 위 오름들을 포함하는 탐방도 매력이 있다. 

 

-큰지그리 탐방기-

휴양림의 곶자왈 숲을 통하여 큰지그리까지 가는 과정은 별 어려움이 없다. 민오름이나 족은지그리로 가지 않고 다시 휴양림 초입지로 백(back) 코스를 한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방목 울타리를 빠져나오면 바로 초지가 펼쳐지는데 한동안 곶자왈을 따라 진행을 하느라 숲 향에 취했다가 바깥세상을 만나니 별천지라는 기분이 들었다.

이리저리 살피느라 두 눈이 분주해지고 마음과 몸을 적셨던 진한 자연의 향은 사라졌지만 분위기의 반전은 계속되었다.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찔레꽃이 대세이다. 부르지도 않고 유혹도 없건만 어느새 발길은 이들에게로 향하고 눈과 코는 가능한 가까이하려 애를 쓰게 되었다.

늦봄의 햇살에 실린 진한 향이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순백의 꽃잎과 진한 향에 흐느적거리다 고개를 드니 비로소 멀지 않은 곳에 큰지그리가 나타났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오름의 등성을 따라 정상의 전망대가 아스라이 보였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을 드리운 하늘이 이토록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온 적이 있었던가.

색조의 넉넉한 배려도 나의 편이고 약한 봄바람에 실린 초지의 숲 냄새와 청정의 맑은 공기도 내 편이 되어줬다. 거칠지 않은 빌레왓이 섞이지만 바닥 층은 초원처럼 부드럽게 펼쳐졌고, 친환경 매트는 둘째하고 그 흔한 타이어 매트조차 ​거부를 한 채 자연의 길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성장을 이어온 고사리는 반항이라도 하듯 허리선까지 자란 것도 있고, 산두룹을 비롯하여 구찌뽕 나무도 열매를 선보이며 가을을 기다리고 있었다.

행여 하고 허리를 숙여 덤불 속을 뒤지니 산탈이 영글어 색조의 변화를 위한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도 확인이 되었다.  일행이라도 있으면 원두막에 앉아 여유라도 부리련만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차라리 혼자라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은 이 주변의 대자연이 베풀어 주는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었던 때문일까.

아름다운 것은 먼저 본 자의 몫이라지만 함께 나누지 못할 때 아쉬움도 따르게 되는 법이다. 비로소 그런 느낌이 들 때쯤 이 모든 것을 혼자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마침내 큰지기리는 웅장하고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태역(잔디)이 제공하는 부드러운 바닥을 지나는 것도 이제 마무리 단계이고 목장 울타리를 지나면 바로 오름 안내 표식이 있다.

입구에는 키가 큰 편백나무가 울창하게 자리 잡고 있고 ​평상이 몇 개 놓여 있으며 탐방로의 바닥은 친환경 매트로 단장을 하였다. 보통의 오름 보다 진입 과정이 긴 때문에 더러 거친 숨소리도 들렸지만 ​편백나무의 응원을 받으며 느리게 오르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능선의 숲을 빠져나오면 정상이 가까워졌음을 알게 되는데, 조릿대가 새순을 선보이고 개민들레가 노랗게 꽃을 피웠지만 이들과 눈싸움을 하는 것은 하산 때로 미뤘다.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르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적셔줬다. 미세먼지도 황사도 큰지그리 앞에서는 출입이 통제되었기에 청량의 음이온을 마시기 위하여 애써 크게 심호흡을 하며 오르니 드디어 정상이다. 목재로 만들어진 전망대를 바라보며 기대치를 더 높게 수정을 했다. 마무리 지점에서부터 곱게 열린 하늘과 주변은 충분히 이를 가늠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디를..... 어느 방향을 먼저 접수를 해야 할 것인가. 실컷 바라봐야 한다. 지겹도록 눈싸움을 해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오름을 보려면 오름으로 올라가야 하는 법. 끝없이 펼쳐지는 오름 군락들을 바라보며 하나씩 이름을 불러봤다. 전망대 난간에 기대어 바라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기만 했는데 쾌감이라고 했던가.

작은 흥분과 탄성의 자격을 성취한 사람은 그 맛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른 자들만의 권리이고 오른 자들에게 베푸는 자연의 법칙이기도 하다. 족은지그리와 바농오름을 시작으로 먼 곳과 가까운 곳의 크고 작은 오름들이 눈앞에 펼쳐졌고, 방향을 돌리니 민오름과 대나오름을 비롯하여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수직의 풍경도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올라온 방향의 반대쪽으로는 족은지그리로 이어지는 길목이며, 또한 이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다시 초지나 큰지그리로 향할 수도 있다. 큰지그리가 제공한 분위기를 비롯한 모든 것들은 오르는 동안에 쏟은 에너지의 곱셈이 되어줬다. 오월이 지나는 봄 햇살의 심술이 정도를 넘어섰지만 결코 기분을 망가뜨리지는 못했다.

그늘이 없는 정상 전망대이지만 한동안 세상 구경을 실컷 하다가 하산을 준비했다. 처음부터 백(back) 코스를 선택했지만 아쉬움이 없는 진행이었다. 새삼스럽게 진행할 방향을 바라보니 온통 숲으로 덮인 곶자왈 일대가 확인이 되었다. 저 숲 아래를 지나는 동안 또다시 힐링의 공간을 차지하여 대자연과의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다. 

하산 시 기슭 아래 편백나무 숲의 평상을 차지하여 휴식을 취하는 탐방객들의 여유로움이 보이길래 따라 할까 말까 잠시 생각을 했지만, 정상에서의 건방진 휴식을 실컷 취한지라 더 이상은 사치로 여기고 큰지그리와 작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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