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흙붉은오름(아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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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흙붉은오름(아라동)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10.17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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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1,380.7m 비고:146m 둘레:3,403m 면적:721,090㎡ 형태:말굽형

 흙붉은오름(아라동)

별칭: 토적악(土赤岳)

위치: 제주시 아라동 산 67번지

표고: 1,380.7m  비고:146m  둘레:3,403m 면적:721,090㎡ 형태:말굽형 난이도:☆☆☆☆ 

 

 

위로는 부악을 받들고 아래로는 사랑하는 돌오름과 마주한 옥문형의 특별한 화산체...

실로 경이롭고 신비로움을 간직한 오름이다. 오름의 흙이 붉은(스코리어) 때문에 붙은 명칭이며 이 때문에 한자로는 토적악(土赤岳)이라 표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부악(釜岳. 한라산)을 우러르며 받드는 형세의 토적악은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때문에 찾는 이들이 드문 오름이다.

한라산 백록담을 중심으로 할 때 동쪽 기슭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했고 높은 오름이다. 일반적으로 오름을 정의할 때 독립형 소화산체로 구분을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 화산체의 겉은 화산이 폭발하면서 흩어지거나 굳어진 화산재가 섞인 검은색 또는 스코리어라고 일컫는 붉은 송이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흙먼지가 쌓여서 식물들이 자리를 잡은 곳은 노출이 안 되었지만 부분적으로 옛 모습에 가까운 모습을 간직한 곳도 더러 있다.

화산체 겉의 색을 참고로 하여 붉은오름이나 검은오름 등으로 부르는 곳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자연 생태와 식생의 정도는 많은 변화를 가져온 때문에 노출형의 화산체가 흔하지는 않다. 흙붉은오름을 토적악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가 않다.

대부분의 오름은 자연 그대로 남는 경우가 드물고 기후와 바람을 비롯하여 흙먼지를 포함하는 환경에 따라 생태의 변화 작용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 토적악은 아직도 태곳적의 모습을 유지하며 자연 생태의 큰 변화가 없이 일부를 노출한 채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방인들의 출입을 거부하고 문명의 이기를 외면한 채 자연 그대로를 간직한 토적악이기에 과연 신이 지키는 곳이라 아니할 수가 없다.

13부 능선에 자리한 토적악은 아래쪽의 돌오름과 함께 암오름과 숫오름으로 비교를 하며 옥문형이라 일컫는 샘을 간직하고 있다.​ 위로는 부악을 받들고 아래로는 돌오름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 둘은 각각 남녀의 상징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흙붉은오름의 샘터는 여인의 상징이 되고 돌오름은 철모를 엎어놓은 듯한 외형으로서 남성을 상징하는 때문에 숫오름으로도 부른다.

오름 화구 내에 있는 샘으로써는 가장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얻게 된다고 전해지고 있다. 짐작건대 토적악은 암오름이 되고 돌오름이 숫오름이 되어 이 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흙붉은오름 탐방기- 

이른 새벽에 성판악을 출발하였다. 동이 트는 시간에 맞춰서 진행을 한 후 속밭에 도착이 될 무렵 서서히 아침이 열렸다. 초행길이자 첫 만남이 될 두 오름을 찾는 때문에 긴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서두른 것이다. 사전 허락을 받고 입산 신고 후에 취재와 현장 실태를 조사하는 학술단을 따라 동행을 하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사라오름 입구에 멈춰 선 ​후 재 정비를 하고 마침내 깊은 숲으로 향했다.

정해진 등반로가 없는 데다 사람들의 발길이 없는 숲은 여름을 맞아 푸름으로 성장을 진행하고 있었다. 조릿대왓을 지나고 계곡을 지나면서 얼마 동안 전진을 하다가 털앵초를 만났다. 독초인 천남성과 한살림을 차린 모습 때문에 적과의 동침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묘사를 했다.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다가 ​​습지를 만났는데 비가 온지도 제법 되었고 그 양도 많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연중 물이 고이는 날이 많은 모양이라 생각되었다.

아마도 노루나 다른 동물들의 우물터로 사용이 되고 있을 법했다.  gps의 신호를 따라 기슭을 오르는데 경사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방인들의​ 출입에 반갑게 대할 리가 없는 토적악인 지라 조심스럽게 정상을 향하여 올랐다. 나무숲을 헤치며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쳐드니 비로소 토적악의 등성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첫 만남이 건만 오름의 명칭을 강조라도 하듯 맨 먼저 맞아주는 것은 등성의 한 부분을 차지한 스코리어의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도 오래전부터 등성의 일부는 식물이 자라지 못할 정도로 붉은 송이가 외부로 노출이 된 채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통의 오름에서는 흙먼지 등이 바람에 날리면서 등성을 덮어주는 때문에 잡초나 수풀이 자라지만 토적악의 현실은 이와 다르다. 그래도 한라산 국립공원내에 위치를 한 때문에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어서 일부는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여러 여건상 어려움이 있겠지만 그래도 세월의 힘을 안은 오름에는 식물들이 필사적으로 식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개간지로 변한 등성에 오르기로 했다. 어차피 하산 때 그 방향을 선택하면 되기 때문이다. 개간지를 따라 기슭 아래에 도착을 하면 고랑처럼 패인 곳이 나오며 길을 대신했다. 개간을 하면서 흩어진 돌들을 모아 놓은 것 같았는데 묘하게 이뤄진 화산체의 특성이 드러났다.

한쪽은 삼나무가 주인공이 되어 숲을 이루고 있고 다른 방향에는 으악새가 구슬프게 울어대고 잡목들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붉은 송이가 차지한 때문에 식생이 어려운 환경이지만 일부 고산식물들은 그래도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며 성장의 진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자생력이 강한 제주조릿대도 여름을 맞아 새 순들이 돋아나고 있고 이름 모를 식물들이 곳곳을 차지하여 얼굴을 내밀었다.

여름을 맞은 토적악 정상으로 이어지는 등성은 열악한 환경을 뒤로하고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다.  정상에 채 올라서기도 전에 주변을 바라보는 순간 절로 걸음이 멈춰졌으며 시간조차 정지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은 오직 두 눈뿐이었으며 대자연이 펼쳐진 주변을 바라보며 경이로운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옷을 벗은 산 체의 일부는 허접한 상태라서 보기가 민망스럽고 안타까울 정도였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하여 기후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자연적인 요소를 통하여 토적악의 헐벗은 부분을 가리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등성에 서서 남쪽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진달래밭 능선을 따라 부악과 장구목 능선까지 웅장하고 신비스럽게 열리는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눈높이의 큰 차이가 없는 곳에 선 채로 열린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애써 거칠게 숨을 들이켜고 내쉬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오래도록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한 채 자연 그대로이기를 원하는 토적악은 빠른 변화가 어렵겠지만 나름대로 환경의 법칙과 순리를 따르고 있었다.  정상부 근처에는 언제 누군가 쌓아올렸는지 모르지만 돌탑이 있었는데 역시나 붉은색을 띤 돌들이라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사용하여 올려놓은 모양이었다.

정상에 서니 분화구를 뚜렷하게 확인할 수가 있었으며 화구가 터진 방향으로는 속칭 숫오름이라 불리는 돌오름이 마주해 있었다. 동쪽으로 입구가 벌어진 말굽형 분화구의 깊숙한 지점에서는 옥문형이라 일컬어지는 샘이 솟아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샘은 제주도의 수많은 화산체 중 분화구 안에 있는 샘으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공교롭게도 이 화구의 터진 방향은 숫오름이 있는 동쪽이라서 토적악과의 사랑을 확인시키는 듯했다.

이곳의 샘물로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드리면 아이를 얻게 된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정해진 길이 없는 데다 초행자로서 자연 생태를 어지럽힐 것 같아서 찾는 것은 포기를 했다. ​행여나 눈으로라도 볼 수 있을지 살폈지만 화구 주변과 안쪽은 고산식물들과 잡목들이 ​값 비싼 보물이라도 숨겨 놓은 양 가리고 있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라고 했던가. 부악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고개를 높이 쳐들 필요는 없었다. 장엄하고 위대한 산 체를 눈앞에 두고서 한동안 바라보는 느낌은 현장에 발을 디딘 것 이상으로 상쾌했다. 하지만 눈을 떼면서 그 마무리는 근거리로 향하게 되고 붉은 송이가 군데군데 펼쳐져 있는 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동쪽 등성에는 민백미가 하얗게 꽃을 피웠고 일부 다른 식물들이 등성을 덮은 주변에 아예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제주에서 만나는 민백미는 지대가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식물이지만 열악한 환경의 토적악을 차지한 모습이라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붉은 송이가 차지한 반대쪽에 비하여 동쪽은 조릿대를 비롯한 고산식물들이 질서 있게 차지를 하여 반전을 시켜줬다. 능선을 따라 조금 더 이동을 하니 시로미가 군락을 이룬 채 여름을 맞아 성장의 진행을 이어가는 모습이 확인되었다. 지천에 펼쳐진 시로미는 싱그럽고 윤기가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에게는 보살핌도 배려도 필요로 하지 않게 느껴졌는데 열악한 환경이지만 주어진 터전에 잘 적응을 하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진시왕을 받들었던 ‘서불’이 이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서 무덤 속에서 나올만할 정도였다. 불노초를 캐지 못한 '서불'로서도 이만하면 귀한 시로미로 여길 테고 진시왕으로부터 충신의 자격과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사면의 등성은 조릿대 키가 작은 조릿대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서사면에 비하여 비교적 변화가 잘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초여름 여린 잎을 내민 조릿대 군락을 보면서 어떻게든 나머지 등성도 차지할 것을 주문했다.  어느덧 돌오름을 관찰할 수 있는 곳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 자체로도 보통의 오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철모를 엎어놓은 듯한 모습과 봉긋하게 솟은 산체의 특별함에 이내 숫오름이라는 별칭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토적악과 숫오름의 사랑은 이 지점을 기준으로 이뤄지고 있을 것이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는 마주한 채 그리움을 실어 밀어와 애정의 행각을 벌이이게 너무나 좋은 곳이다. 감싸듯이 그를 향해 팔을 벌리고 받아들이는 자세의 말굽형이자 옥문형의 흙붉은오름은 여성을 상징하는 암오름이 되는 것이다.

그 모습을 위에서 내려다보니 너무나 정겹고 완벽한 한 쌍의 짝이 되었다. 누가 더 잘나고 못나고를 묻지도 않고 따질 필요도 없이 그저 두터운 사랑을 간직한 채 서로는 마주하며 짝을 이루고 있었다.  토적악을 떠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대상은 반대편 등성에 외롭게 서 있는 소나무의 몫이 되었다.

해발과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생각하면 소나무의 존재가 특별하게 여겨질 수도 있었는데, 아마도 흙붉은오름지기이거나 수호자 역할이라도 하는 모양이라 여겨졌다. 이제 흙붉은오름에 작별을 전하고 성널오름과 사라오름을 바라보며 돌오름으로 향할 차례가 되었다. 역시나 정해진 루트가 없는 때문에 GPS와 감각을 통하여 진행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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