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이야기]가마오름(내용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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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야기]가마오름(내용 보충)
  • 홍병두 객원기자
  • 승인 2018.10.19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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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고 : 140.5m 비고:51m 둘레:2,059m 면적:2,059㎡ 형태:말굽형


 가마오름

별칭 : 가메오름. 부악(釜岳)

위치 : 한경면 청수리 1,202번지

표고 : 140.5m  비고:51m  둘레:2,059m 면적:2,059㎡ 형태:말굽형  난이도:☆☆

 

 

 수백 개의 오름이 제주에 산재하지만 가마오름은 특별한 곳이다. 일제시대 때에 자신의 살을 도려내어 일본군들에게 땅굴 진지로 내어준 현장이며, 세월을 달리한 지금 일부는 전쟁 역사박물관으로 구성이 되어 역사 교육의 장으로 쓰이고 있다. 

오름의 형세가 가마(가마솥)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지만 제주의 수많은 오름이 그러하듯 추상적으로 여겨질 뿐이다.  오름 기슭에는 동굴들이 있으며 천연물이 아닌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시설물은 인공적으로 구축된 동굴 형태의 군사 진지로 모두 17곳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출입구는 무려 33곳에 이른다.

제주도 내에서 확인된 일본군 동굴진지 중 길이가 가장 길다. 지금은 갱도 내부 일부 구간의 통로에 인공 시설 및 일본군 모형물 등을 설치하여 일본 침략의 잔혹한 실상을 국내외에 알리는 평화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유지가 포함된 가마오름 일대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면서 일제의 만행을 증명하는 중요한 곳이다.

현재 전쟁 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개관당시 평화박물관으로 명칭이 정해졌던 곳이다. 가마오름 진지동굴은 일제 침략의 역사적 증거를 보여주는 교육의 장이면서 알뜨르 비행장 등과 함께 아픈 세월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 평화박물관은 근대문화유산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제308호로 지정이 되었다. 

 

-가마오름 탐방기- 

평화박물관은 주차장과 매표소를 통하여 들어간 후 실내 전시관 등과 가마오름의 진지동굴을 살펴보게 된다. 주차장과 매표소를 통하여 들어간 후 실내 전시관 등과 가마오름의 진지동굴을 살펴보게 되는데 전시관의 일부를 담으려다가 포기를 했다. 어차피 실내코스는 이번 통제 과정과 상관이 없어서였다.

전시관 밖으로 나오니 바로 가마오름 능선이 보였고 목재 데크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오름을 오르는 것은 선택사항이며 1.2 땅굴 진지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었다. 정상으로 향하는 탐방로에도 나무 데크나 매트가 깔려 있지만 여름철을 맞아서 수풀들이 일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예초기로 좀 다듬어준다면 편안함을 느끼련만 이즈음 관계자들의 마음도 편치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구석구석을 단장하기에는 의욕이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해발이 낮지만 오름으로써 지녀야 할 말굽형의 모습이 뚜렷하며 주봉이 있는 큰 봉우리와 작은 봉우리로 나누어졌다. 그러면서 이를 각각 큰 가마 오름과 족은(작은) 가마오름으로 나눠 부르기도 한다. 남쪽이 주봉이며 북쪽으로 뻗은 봉우리가 있고 동북쪽으로는 완만하게 이루어져 있다. 오름의 비고는 51m로 나타나 있듯이 등정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며, 주봉 옆에 삼각점 표지가 세워져 있고 일대의 산불예방 감시를 하는 경방 초소가 있으나 그 외에 정상 주변의 특별함은 없었다. 

조망권이 대단한 곳은 아니지만 저지오름 등이 관찰이 되었고 주변의 한적한 마을과 농지들이 눈에 들어오면서 전원형의 마을 풍경과 함께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정상의 가장자리 역시 수풀이 어지럽게 자라고 있고, 삐쭉 솟아오르는 억새들이 능선 한곳을 차지하여 오름의 허전함을 채워줬다.

 

가마오름이 있는 청수리 마을은 한라산 중심부에 못 미치는 웃뜨리(중산간) 권역에 위치하면서 아직도 오름 주변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전형적인 제주의 농촌 모습과 한적한 시골의 풍경을 간직한 평화로운 마을이다.  하산길의 위치가 표시되었고 백(back) 코스가 아닌 둘레를 지나는 전진 코스로 내려가는 것을 선택했는데 이 방향 역시 풀베기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무릎까지 자란 수풀은 산책로의 일부를 차지한 채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탐방로를 돌아 내려오면 진지동굴이 나왔는데 오름을 먼저 선택한 때문에 2지구 땅굴 입구를 먼저 만나게 되었다. 땅굴 속에 대기했던 일본군들이 대공포 발사 시에 이용을 했었던 진지동굴이었다. 당시 동굴의 부분을 시멘트로 발랐던 흔적이 있으며 미로형으로 복잡하게 이어졌다고 하는데 이곳은 개방이 안 되어 있었다.

오름 일대는 농경지로 개간이 되어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사유지가 포함된 가마오름 일대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면서 일제의 만행을 증명하는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제 동굴진지 내부를 잠정 폐쇄한다는 사실 앞에 부족한 이해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당사자(기관. 소유주 등)들의 합의와 원만한 해결을 통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기지 말기를 소망하면서 씁쓸하게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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