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영원히 송덕..대서리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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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영원히 송덕..대서리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0.22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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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살던 백성들이 사당을 세운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500년

대서리 신묘금지비(神廟禁地碑)

위치 ; 대서리 추자초등학교 북쪽 최영장군사당 동쪽
유형 ; 비석(기타)
시대 : 조선시대 추정

▲ 대서리_신묘금지비


사당 동쪽에는 「神廟禁地碑」가 세워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廟○○麗朝都統使崔將軍公蒙○□(= +梵)節斧○○候風於斯島○○○居民立祠尊宇于合五百餘○○○○○安致祥此豈非過化○○○○○○曹秉廈島任此○其忠義興○○○餘作契四時禱祠引成不忘之規而 (= +非)尊處□(= +生)暗葬之幣故稟達營門威給完文上下島民立石頌德永爲禁護


辛丑九月 日 濟州曹秉廈再拜 其弟 爀 謹書 ※○은 마멸되어 판독하지 못한 부분임


(이 묘는 고려국 조정 도통사 최영 장군이 임금의 명을 받아 목호를 토벌할 때 이 섬에서 후풍하며 백성들을 교화했으므로 그 때 살던 백성들이 사당을 세운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500년이 되었다.

그간에 재난을 막고 복을 빌었으므로 이는 어찌 지난날의 교화의 자취가 아니냐?

신축년에 曹秉廈가 이 땅에 임명되자 그 충의와 더불어 민안을 위하여 몇 개의 계를 만들고 사시절 사당에 기도 드리는 것을 잊지 않도록 규정했다.

그러므로 성역이 아닌 데가 없는데 암장의 폐단이 있으므로 영문에 품달하여 완문을 받았다. 이에 상하도민은 영원히 송덕하여 금지 보호하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운다.

신축년 9월 일 제주 조병하 두 번 절함. 그 동생 혁 삼가 씀.)


여기서 신축년은 비석의 마멸 정도로 보면 1841년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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