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귤림당 개건..조천리 백희수목사선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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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귤림당 개건..조천리 백희수목사선정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0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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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저미(別儲米)와 내탕전(內帑錢) 1,000냥 특별히 지원받아 궁민(窮民) 진휼

조천리 백희수목사선정비

사상백공희수청덕선정비(使相白公希洙淸德善政碑)

시대는 조선시대이나 건립년대는 미상이다
높이 76㎝, 너비 40㎝, 두께 17㎝
비문은 전면에 〈使相白公希洙淸德善政碑〉라는 글씨뿐이다.

 


◦무신인 백희수 목사(겸방어사)가 이현공(李玄功)의 후임으로 제주에 재임한 기간은 철종2년(1851)7월부터 철종4년(1853) 12월까지로 제주방어사로 재임했던 기간은 총 2년 6개월이다.

당시 제주목사의 임기는 2년 반으로 되어 있었지만 대개의 목사가 제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떠난 것에 비춰 볼 때, 백희수의 공적을 짐작할 수 있다.(북제주군 비석총람 667쪽, 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증보탐라지 등에서 그의 재임 기간의 기록을 보면


★橘林堂을 개건하였다.
★부임하는 해 여름부터 제주도에 가물이 들어 가을이 되어도 수확을 할 수가 없었다. 1851년 가을 백희수는 이런 실정을 장계(狀啓)로 조정에 호소하여 호남(湖南) 이전곡(移轉穀)인 별저미(別儲米)와 내탕전(內帑錢) 1,000냥을 특별히 지원받아 궁민(窮民)을 진휼하였다.

별저미에 관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비변사등록(濟州牧使 白希洙의 狀啓에 대해 보고하고 湖南의 別儲米 1천 5백 석을 보낼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司啓曰, 卽見濟州牧使白希洙, 年分狀啓, 則以爲濟州, 稍勝於大靜, 旌義, 反遜於大靜, 俱未免歉, 而抄出飢戶, 自今年十二月爲始, 限麥秋十五排巡, 不可不還分者, 壯爲五萬六千一百四十一口, 弱爲二萬六千三百三十四口, 而容入還米, 當爲二萬二千六百五十石零, 今秋當捧外, 不足條爲三千三百六十五石零, 以庚午春本牧別儲米湖南移轉在條中, 限折米三千石劃給事, 請令廟堂稟處, 舊還姑爲仍停, 官鎭門聚點, 依近例亦爲停止, 而右項諸條, 固當覆啓回下後擧行, 候風沙海, 遲速無期, 一邊擧行, 一邊登聞, 爲辭矣, 不待回下, 先爲擧行, 自是本州已例, 所陳諸條, 依狀請施行, 別儲米請劃, 仰承特下判付, 已有許劃, 使之依式排巡, 計口均分, 期於實惠下究之意, 分付, 何如, 答曰, 允。(철종2년辛亥十二月三十日)


내탕전에 관한 기사는 다음과 같다.


조선왕조실록 철종2년(1851) 12월 29일(경술) ; 제주의 세 고을에 내탕전을 내리다


敎曰: “卽見濟州牧狀啓, 則三邑年形, 未免歉荒。 特下內帑錢一千兩, 自廟堂分付。”(하교하기를, “지금 제주 목사(濟州牧使)의 장계(狀啓)를 보건대 세 고을의 농사 형편이 흉년을 면치 못하였다. 특별히 내탕전(內帑錢) 1천 냥(兩)을 내리니 묘당(廟堂)에서 분부하라.” 하였다.)


濟州에 하사한 內帑錢을 즉시 輸送하고 湖南의 別儲米를 즉시 劃送하게 할 것을 청하는 備邊司의 啓 (탈초영인 비변사등록 24집)


司啓曰, 傳曰, 卽見濟牧狀啓, 則三邑年形, 未免歉荒, 至於賙救之議, 念其民情, 極爲憧憧, 特下內帑錢一千兩, 而湖南別儲米中, 量宜劃送之意, 自廟堂分付該道臣事, 命下矣, 特下帑錢, 旣承成命, 依已例, 分付戶曹, 使之從便輸送, 而本州還穀, 自是不敷, 島中事勢, 異於陸地, 則今於賙救之政, 無怪其請劃, 移轉湖南別儲米中一千五百石, 趁卽劃送之意, 分付道臣, 何如, 答曰, 允。(철종2년辛亥十二月三十日)[출처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http://db.history.go.kr]


★유생 姜琦奭의 건의를 받아들여 제주성 남수구 북쪽 沖庵 김정(金淨)의 적거지에 김충암적려유허비(金沖菴謫廬遺墟碑)를 세우고 비문을 스스로 썼다.


★1852년 가을에는 정의현 순행 길에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가 낡은 것을 보고 정의현감에게 수리하도록 하였으며, 12월 초 중국 상선이 대정현 범천포 앞바다에 표도한 것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철종4년(1853) 12월에 제주를 떠났다. 제주를 떠난 후의 행적으로는 왕조실록에 “철종11년(1860) 3월 10일 전라우도수군절도사(全羅右道水軍節度使), 철종11년(1860) 4월 12일 전라도병마절도사(全羅道兵馬節度使), 철종11년(1860) 12월 1일 삼도수군통어사(三道水軍統禦使), 철종13년(1862) 5월 28일 함경북도병마절도사 등의 기록이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도총관(1864)을 제수한 기록도 있다. 북제주군 비석총람에는 한성부左尹을 역임하였다는 기록도 있으나 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백희수 목사의 선정비는 이곳 외에도
화북동 비석거리의 使相白公希洙恤民善政碑(1854년 건립)
신촌리 비석거리 使相白公希洙善政碑(1856년 건립)
삼도2동 제주목관아 使相白公希洙恤民善政碑(1857년 건립)
보성리 보성초등학교 使相白公希洙去思碑(건립연대 미상)
북촌리 비석거리의 使相白公希洙淸德善政碑(1879년 개건)
등 제주도내 6기의 선정비가 있다.
《작성 060521, 보완 15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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