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제주 최초..조일리 우도등간(옛등대)(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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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제주 최초..조일리 우도등간(옛등대)(복원)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0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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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여섯째이며 목제 등대(등간=燈竿) 형태로 설치

조일리 우도등간(옛등대)(복원)

위치 ; 우도면 조일리 쇠머리오름 동쪽
유형 ; 등대
시대 ; 구한말(1906)

▲ 조일리_우도옛등대
▲ 우도울기등간도면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903년 세워진 팔미도 등대이다.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13.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1903년 건축 이후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 곳곳에는 팔미도 등대를 비롯해 모두 1995개의 등대가 있으며 이 가운데 약 200개가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말 개항과 함께 미국, 영국, 러시아, 일본 등의 선박이 조선으로 몰려올 당시 그들이 가장 먼저 요구한 게 등대시설 설치였다. 해양수산부가 2004년 냈던 '대한민국 등대 100년사(1903년~2003년)'를 보면 우리나라에 등대가 건립된 배경엔 일본이 있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잇달아 치른 일본은 이 과정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한국에 항로표지 설치를 요구했다.


1903년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점등했고 뒤이어 전국 연안에 등대가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등대의 역사는 곧 침략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1906년 12월 부산 영도에 만들어진 등대도 일제의 군수품 수송을 위해 처음 만들어진 것이고, 1918년 만들어진 강원도의 주문진등대도 일본의 대륙진출 야망에 의한 것으로 일본식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우도 등대는 제주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근대식 등대이며 관련 기록이 비교적 상세히 남아있다. 제주도 최초인 우도등대는 1906년 3월에 처음 불이 켜졌는데 이는 전국에서 여섯째이며 목제 등대(등간=燈竿) 형태로 설치됐었다.

즉, 호롱에 석유를 넣어 불을 켠 뒤 쇠기둥에 올려 달도록 한 것이다. 조선이 주도적으로 등대를 만들었다면 제주항(사라봉)에 먼저 만들었겠지만, 일본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오는 항로에 맞추어 우도에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참고 ; 산지등대는 1916년)


일본 해군성은 러일전쟁(1904~1905년)에 대비, 1904년 12월 세관공사부에 우도 등대를 시급히 건립해 줄 것을 요청했다.

1904년 러일전쟁이 시작되자 한·일 정부는 합의를 통해 두 나라가 보유한 기자재를 활용해 등대를 짓기로 했다. 1905년 1월 우도에 목재가 도착하자마자 하역과 측량이 이뤄져 약 한 달 만에 등대가 완성됐다.


공사는 일본측에서 맡았다. 이 때의 명칭이 우도 등간이었다. 등간은 임시 등대 시설에 해당한다. 우도와 더불어 죽도, 울기 등 3곳엔 등대가 아닌 등간을 설치했다.

해전에 대비해 급작스레 만들어지다 보니 정식 등대가 아닌 등간으로 들어선 것이다. 즉, 제주 최초의 등대 역사는 곧 전쟁과 침략의 역사로 시작됐다. 6m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 석유등을 달아 도르래로 올리고 내린 단순한 구조였다.

석유등의 수명은 50일이었고, 군인들은 등이 꺼지면 기름을 채우고 다시 등탑으로 올려 보냈다.


이즈음 우도에는 해군 초소도 들어섰다. 러시아 발틱 함대가 아프리카 희망봉과 인도양을 지나 8개월의 항해 끝에 제주 바다로 향하는 것을 탐지하기 위해 도고 제독은 수병들을 우도로 보냈다.

우도 초소에선 함대가 북상한다는 소식을 보고했고, 사전에 첩보를 입수한 일본 함대는 1905년 5월 27일 대한해협에서 대승을 거뒀다. 당시 해군 초소 유허비는 우도봉에 세워져 있다.


명치44년(1911) 3월 발행한 것으로 된 '항로표지관리소 제3연보'엔 우도 등간 설치 과정, 참여 인력, 임금 내역 등이 담겼다.

그에 따르면 우도 등간을 제작하기 위해 명치37년(1904) 12월 25일 목재 절단과 조립에 착수했고 이듬해 1월 15일 울기 등간에 쓰일 재료와 함께 배에 싣고 목적지로 향했다. 일본인 공사 감독과 인부들도 그 배에 탔다.

목재를 실은 배가 우도에 도착한 때는 1월 24일. 등간 설치는 간단치 않았다. 날씨가 문제였다. 우도에 도착하는 대로 측량을 하고 짐을 내리려고 했지만 파고가 높아 결국 1월 31일에야 섬에 배를 댔다. 이튿날부터 바로 공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온도가 0도~5도까지 내려가 작업에 애를 먹었다. 가까스로 등간 제작을 마친 날은 2월 26일. 일본인들은 풍랑으로 귀국길에 차질을 빚다가 3월 5일 고향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일찍이 등간이 완성되었지만 점등은 그로부터 몇달 뒤에 이루어졌다. 군사시설이 아닌 바다의 길잡이로 불을 밝힌 것은 이듬해 점등기(가스등)를 설치하면서다.

석유등보다 불빛이 센 아세틸렌 가스등으로 밤바다를 3㎞까지 빛을 비추었다. 이로써 공식 기록에 등장하는 우도 등대 점등 시기는 1906년 3월 1일이다.


전쟁 대비해 급조한 등간에 이어 제대로 된 등대를 지은 것은 일본과 성산포 간 선박과 물자 이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 물살이 급한 우도해협을 지나는 자국의 선박과 군함을 보호할 목적도 있었다.


처음엔 무인 등대였으나 관리 차원에서 사람들이 머물기도 했다. 1908년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장이 작성한 공문을 보면 우도에는 직원 1명과 급사 1명 등 등대원 2명이 머물렀다.

등대국장은 우도를 비롯해 등대가 들어선 곳마다 수목이 빈약하고 음용수가 부족한 점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등대 인근에 채소밭을 일구도록 했고, 급사까지 골고루 땅과 종자를 나눠줘 경작토록 했다.


사료에 따르면 우도 등대는 가스등을 달고, 여러 번 고치기를 거듭했지만 목재 건물은 바닷바람에 오래 견뎌내지 못했다. 이를 벽돌로 단장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19년이다.

벽돌로 원형 등탑을 쌓으면서 최초의 목제 등대(등간)는 허물어 졌다. 벽돌이 귀하던 시절, 이를 굽고 배로 실어 나른 후 해발 123m의 우도봉 위에 근대식 등대를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우도 등대의 중요성을 대변해 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일제가 제주의 자원과 도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벽돌을 등짐에 지고 우도봉까지 나르고 시멘트를 타설하는 것은 고된 노동이었다.(제주일보 130217)

1958년 축전지와 발전기를 사용해 전원을 공급하는 등명기를 달았다. 1960년에는 안개가 끼면 메아리와 비슷한 음성을 내보내는 신호기(사이렌)가 설치됐다. 1919년 건물은 2003년까지 84년 동안 운영되었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제주해양관리단으로 바뀐 제주지방해양수산청은 우도 등대 100주년을 기념해 2006년 우도등간을 되살려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던 1907년 대한제국 세관공사부 등대국에서 내놓은 '한국등대 1연보'에 실린 우도와 울기 등간의 도면(牛嶋及蔚騎燈竿之圖)을 어렵사리 입수해 100년전 실물 크기 그대로 제작했다.

뒤쪽은 1919년 세워진 뒤 2003년까지 운영된 구등대이다.현재 우도 등간은 1919년 생겨난 벽돌 재료 등대와 2003년 신축한 현대식 등대 사이에 놓였다.

맞춤한 것처럼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지만 본래 위치는 아니다. 복원물 높이는 8m가 넘는다. 우도 등간 꼭대기에 석유등을 달았는데 도르레로 연결돼 사람의 힘을 빌려 아래위를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는 구조다.

당시 석유등의 수명은 50~60일 정도. 등이 꺼지면 도르레로 내려 불을 켠 뒤 다시 등탑으로 올려보냈다. 1919년 등대는 비상용으로 지금까지 활용되지만 우도 등간은 '상징적인 존재'로만 서있을 뿐이다.(한라일보 100326)

이에 앞서 제주해양수산청은 2002년 9월부터 우도 등대에 32억원을 들여 높이 16m의 등탑을 새로 만들고, 첨단 대형 등명기를 설치해 육안으로 등대 불빛을 식별할 수 있는 거리를 현재 20마일에서 27마일로 늘렸다.

이와 함께 소규모 홍보관과 전시실, 영상실, 야외전시장 등의 체험학습장과 전망대, 산책로, 미니 등대 등을 이용한 사진촬영장소 등의 시설을 갖췄다.

등탑 겸 홍보관에는 항로표지 소개 패널 등 13점이 전시되며, 영상실에서는 등대원의 하루와 아름다운 등대 영상물이 상영된다. 또 야외전시장에는 국내의 아름다운 등대 8점과 외국 등대 6점이 모형으로 제작되었다.《작성 060526, 수정보완 111108, 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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