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꽃동산..소길리 석관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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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꽃동산..소길리 석관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13 0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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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석관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나 피장자와 연대는 알 수 없어

소길리 석관묘
 

위치 ; 애월읍 소길리 마을 남쪽 속칭 꽃동산
시대 ; 고려(?)
유형 ; 고분
문화재 지정되지 않음

▲ 소길리_석관묘
▲ 소길리_석관묘

신엄중학교 30년지에는 '궷물 앞 밭에 있었던 고분'이라고 되어 있다. 일제시대에 도굴되자 당시 구장이었던 좌영봉은 이 사실을 애월경찰관주재소에 신고하였고 일본인 순사부장이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발굴하였다.

도굴로 인해 부장품들이 사라진 상태이며, 좌 구장은 이를 거리못으로 옮겨 팡돌로 사용하였다.(신엄중학교 30년지 404∼405쪽)


현재는 애월읍 소길리사무소에서 400여m 떨어진 속칭 꽃동산 무성한 잡초 사이에 묻힌 석관이 있다.

현무암으로 된 석관의 크기는 길이 2.91m, 높이 0.73m, 폭 0.9m인데 윗판은 1장, 양쪽 마구리 각 1장, 옆면은 각각 2장씩으로 모두 6장의 현무암 돌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많은 돌판으로 이루어진 석곽묘와 뚜렷하게 구별된다.

지판(아랫돌)은 없었다고 한다. 이 유적은 본래 좌랑못 남쪽 양시우씨 밭에 있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인구가 불어나 식수 문제로 거리못에 우마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한 표석을 세울 때 이 유적의 석관 좌우 판석을 옮겨와 이용하였다고 하며 윗판은 밭 경계 표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4년 이 석관의 보존 가치가 인정됨에 따라 흩어져 있던 석관재를 현재의 꽃동산으로 옮겨와 본래의 모습을 추정하여 석관을 복원하였다.

이 석관묘는 제주도의 석관을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나 피장자와 연대는 알 수 없다.


주민 양창어씨(84세)에 따르면 일제 때 도굴꾼에 의해 속칭 '자랑못(좌랑못)' 남쪽에 위치한 고분이 파헤쳐진 후 이 석관이 연못 근처에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한 때 주민들이 빨래판으로 사용했을 정도로 별다른 관심없이 방치되어 오다가 지난 1961년 마을청년회가 분실을 우려해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석관묘에 대한 관리는 1년에 한 번 청년회에서 풀을 베는 정도이다. 석관묘는 고려시대 전반에 걸쳐 유행하던 묘제 형태이다.(제주일보 1997년 6월 14일, 애월읍지 529쪽, 디지털제주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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