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당신들의 고향..송당리 본향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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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당신들의 고향..송당리 본향당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8.11.2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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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주또는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제주도에 입도한 외래신, 산육‧농경의 신

송당리 본향당

 

松堂本鄕堂

위치 ; 구좌읍 송당리 산199-1번지. 당오름(306m) 기슭. 당오름 서북쪽 끝자락과 건천인 산앞내 사이에 형성된 좁은 평지에 당 자리가 마련되었다.
문화재 지정사항
①‘송당리 마을제’;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5호(1986년 지정)
②‘송당본향당’; 제주도 민속자료 제9-1호(2005년 지정)

▲ 송당리_본향당굿(160221신영태)
송당리_본향당(1997년_11월)

제주도에서 송당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마을이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지켜지고 있는 민간신앙인 당신앙의 대상인 당신(堂神)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장이기 때문이다.

한라산에서 솟아난 토착신 소로소천국은 수렵‧목축신이며, 서울 강남 천자국(남산 송악산)에서 태어난 백주또는 오곡의 종자를 가지고 제주도에 입도한 외래신으로써 산육‧농경의 신이다.

이 두신이 결혼해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고, 자손들이 제주 전 지역 368 마을로 뻗어 당신이 되어 좌정했다고 전해진다.


다음은 송당 당본풀이 요약이다.

⑴서울 남산 송악산에서 태어난 금백주가 알손당 ‘고부니모를’에서 솟아난 소로소천국과 결혼하여 아들 열여덟 딸 스물여덟을 낳고 산다.(토착신과 외래신의 결합, 마을의 형성과 번성)
⑵옷, 밥, 젖을 달라 조르는 자식들을 기르기 위해 남편과 ‘오봉이굴왓’을 경작하여 농사를 짓자고 약속했는데(농경 생활의 시작), 시주를 받으러 마을로 가던 동개남 상좌승이 소로소천국에게 점심밥을 달라고 하므로 주었더니 모두 먹고 달아나 버린다.(배고픔의 발생)


⑶시장기가 난 소로소천국은 밭을 갈던 소를 때려 죽여 구어 먹고 심지어는 남의 소까지 잡아먹고 겨우 배고픔을 달래며 쟁기로만 밭을 갈아 나간다.(배고픔의 해결-육식 식성)


⑷화가 난 금백주는 땅 가르고 물 갈라 살림을 분산하자고 고함을 친다.(이혼-곱가름)


⑸부인과 가족을 떠나 소로소천국은 고부니모를로 내려가서 강진옄의 딸을 첩으로 얻고 수렵 생활을 한다.(토착신과 재혼-마을의 분리)


⑹일곱째 아들이 자라서 일곱살이 되니 아버지 무릎에 앉아 수염을 잡아당기고 가슴팍을 치고 하니 불효하다고 하여 무쇠설갑(鐵函)에 담아 동해 바다에 띄워 버린다.(아들의 불효-추방)


⑺석함은 동해 바다 용왕국 산호수 가지에 걸려 용왕의 셋째딸과 혼인하였는데 너무 식성이 과다하였기 때문에 용궁에서 쫓겨나게 된다.(혼인→식성 과다→추방)


⑻강남국에 가서 세변을 막고 도원수가 되어 제주도에 돌아온다.(난리 평정-귀향)


⑼아버지에게 절을 하려 하니 아버지는 달아나 당신이 되고 어머니 금백주는 살 곳을 찾아가 산 설립, 물 설립하고 인간 백성들에게 수명장수, 오곡풍성, 육축번성, 농사설비 시켜 주라고 한다.(부자상봉-새 마을 형성-당신의 기능 획득)


⑽자식들은 사방으로 가지를 뻗어 마을 단골들에게 낳는 날 생산, 죽는 날 물고 받는 당신이 되었다.(마을의 토주관-당신으로 좌정)(문무병,제주도 당신앙 연구. 1993. 58-59쪽)

또 다른 본풀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소천국은 하상천자국 잔소남밭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도로 들어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며 산다. 백주할망은 왕대웃성 갈림길에서 태어나 중의 아기를 임신하여 부모의 미움을 산 까닭에 무쇠 철갑에 담겨져 바다에 버려지며 성산 온평리에 표착한다.

둘이 만나 혼인하여 송당으로 가서 산다. 자식이 많아지자 농사를 짓기로 하지만 소천국은 밭 갈던 소를 잡아먹고 만다. 이로 인하여 백주또가 소천국과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여 살림을 가른다.


첫아들 문곡성이 자라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 받자 아버지를 찾아나서 문곡성을 만나지만 버릇없이 굴다가 소천국의 미움을 사게 되어 소천국에 의하여 무쇠 석함에 담겨져 바다에 버려진 뒤에 용왕국에 닿는다.

문곡성은 자신을 알아본 용왕국 셋째 딸과 혼인하여 살게 된다. 그러나 문곡성은 식성이 과다하여 상자에 담긴 채 쫓겨나자 천자국으로 간다. 흉험을 주어 자신의 존재를 알려서 난을 평정한 뒤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제주로 돌아온다.

그 기세에 놀란 소천국과 의붓어머니는 죽어 당신(堂神)이 되고, 형제자매들도 모두 좌정처를 찾아 떠난다. 문곡성 부부는 한라산 바람목에 좌정하여 만민의 제사를 받아먹고 그들을 지켜준다.


백주또와 소천국은 부부였으나 소천국이 밭갈이하던 소를 잡아먹는 바람에 별거하게 된다. 그 아들 문곡성이 아비를 찾아 나섰다가 불효하다는 죄목으로 바다에 유기된다.

문곡성이 용왕국에 이르러 말잣(막내딸)과 혼인하지만 식성이 과다하여 쫓겨난다. 둘은 천자국에 이르러 난리를 평정하고 그 공을 인정받은 뒤에 위풍당당하게 제주섬으로 귀향한다.

그 모습에 놀란 소천국은 달아나다 죽었다. 문곡성은 동생들을 각처의 당신으로 좌정하게 하고 자신은 거멀(구좌읍 덕천리)에 좌정하였다.


본풀이의 내용으로 보아 송당본향당은 본래 웃손당, 즉 지금의 송당 상동의 본향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웃손당·샛손당·알손당·즉 송당리 전체를 포괄하는 본향당으로 점차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신화들의 이야기 구성은 다소 엉성한 면이 있으나 여러 본풀이를 종합해 보면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①토박이 남자와 외래 여자의 결합 ②수렵과 농경의 혼화 ③다산과 배고픔 ④불효 ⑤질투 ⑥유배 ⑦용왕딸과 결혼 ⑧축출과 이국에서의 무공 ⑨금의환향 ⑩보복을 두려워하여 피신 등의 화소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동아일보 1973년5월 7일)

송당본향당은 제주도 신당의 원조라고 널리 알려진 당으로, 제주도 당 신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당은 중산간 지역의 당임에도 영등굿을 하고 있다. 이는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본향과 더불어 주목되는 사례이다.


신목은 팽나무로, 제단 뒤의 오른쪽 구석에 있다. 다른 당의 팽나무에 비하면 수령이 그다지 많지 않아 줄기가 굵지 않다. 그 가지에 물색을 약간 걸어두었다. 본래 수령이 많은 팽나무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나무를 잘라냈다고 한다.

미신타파를 내세워 당시 구좌면 양某 부면장이 인부를 데리고 와서 팽나무를 잘랐는데 불과 3일 뒤에 외아들을 잃어 그 죗값을 치렀다고 한다. 그 뒤 마을 사람 李某씨가 위패를 모시고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다가 지금의 자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1970년대 미신타파운동 당시에는 세화리 고대중(高大仲) 심방이 무구와 신패를 보관하고 있었다. (동아일보 1973년 5월 7일, 경향신문 1987년 6월 18일 「박성수 교수의 단군기행」, http://dbplus.naver.com/네이버민속신앙정보)


본래 널찍한 제장을 두고 약 2m 높이의 홑담을 장방형으로 쌓았다. 현재는 왼쪽에 건물을 지으면서 이 담을 헐었다. 안쪽에 제단과서쪽 담 가까운 곳에 궷집을 두고 있다. 평소에는 돌로 만든 문을 닫아 둔다.

그 속에는 '금백조 신위'라는 위패가 있고, 향로를 비롯한 몇 가지 무구 그리고 각종 옷가지와 신발, 가락지, 비녀 등을 넣어 두고 있다. 과자 등 신앙민이 바친 제물들도 들어 있다. 전에는 돌반지도 있었는데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궷집 앞에 가로로 길게 시멘트 제단을 마련하였다. 제단은 4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제단 앞에 자그마한 향석(香石)이 놓여 있다. 맨 상단에 궤가 세 개 마련되어 있다.


원래 벡주또 마누라신이 좌정하고 있는 웃손당, 곧 송당리 본향당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3일에는 신과세제(새해의 복을 기원), 2월 13일에는 영등굿(비바람을 달래고 해조류와 곡식의 풍성 기원), 7월 13일에는 마불림제(건강과 우마의 증식 기원), 그리고 10월 13일에는 시만곡대제(新萬穀大祭=추수감사제)를 올렸는데, 이것을 묶어서 ‘송당리 마을제’라 하고 1986년 4월 10일 제주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였다.


송당리 마을제에서 가장 큰 굿은 그 해 마을이 무사태평하고 농사를 비롯한 생업이 잘 되기를 비는 ‘신과세제’이다.

제물은 마을 사람들이 제각기 준비하며, 제의는 심방이 주관한다. 제물로는 메 두 그릇, 구운 생선, 다섯 종의 과일, 돌레떡(백시리), 삶은 달걀 등이 사용되며, 돼지고기는 절대 올리지 않는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치마와 저고리, 가락지, 비녀, 옷감 등을 바치는데, 이것은 모두 당집에 모셔 둔다.


신과제세를 중심으로 제차를 살펴보면, 먼저 마을 사람들이 받들어 제향을 치를 수 있도록 신문(神門)을 열어 주시라는 ‘궷문 열림’이 진행된다. 이어서 굿을 하는 장소와 굿을 하는 연유,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을 알리는 ‘초감제’가 행해지고, 신궁문(神宮門)을 여는 ‘군문 열림’ 제차에 이어 신이 내려오는 길이 깨끗하도록 사기를 쫓아서 정화시키는 ‘새도림’이 진행된다.


새도림(‘도’는 아래아 발음. 제주어로 쫓아내다의 뜻. 사악한 귀신을 쫓아냄) 제차가 끝나면 옥황상제와 본향신을 청해 들이는 ‘신청궤’에 이어, 맞아들인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심방과 마을 사람들이 신명나게 춤과 노래를 부르는 ‘풍니놀이’가 행해진다.

마을 전반의 운수를 무점으로 알아보는 ‘도산받음’ 제차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의 신수를 계절별로 알아보는 ‘자손들 각손받음’에 이어, 그 해 마을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비는 제차인 ‘액막음’이 진행된다.

당굿을 통해 마을 집집마다 본향 당신에게 ‘아무개 집안에 왔다’고 아뢰고 식구들의 산을 받는 ‘예명올림(열명)’을 하고, 집안에 아픈 환자가 있을 때 집안의 액을 막고, 마을의 연유를 닦고 마을의 도액을 막는 일을 본향당신을 청해 기원하게 된다. 마지막 제차는 ‘도진’으로, 청해 들인 신들이 잘 돌아가도록 행하는 굿이다.


※당굿 순서 ; 궤문열림→열명→초감제→군문열림→새도림→본향듦→풍니놀이→마을 도산받음→집안 각산받음→마을 도액막음→집안 액막음→궤묻음의 순으로 진행되며, 당굿은 원래 상궤문, 중궤문, 하궤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하여 상궤․중궤․하궤의 문을 닫는 것으로 끝난다.(네이버뉴스 2011-02-14) 굿은 하루에 끝나지 않고 3일 동안 계속했다.


송당리 본향당의 단골중 으뜸은 광산김씨다. 단골은 상·중·하로 나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400년전 광산김씨가 들어와 설촌한 마을인만큼, 이들이 상단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광산김씨의 집성촌인만큼 광산김씨의 집성촌인만큼 마을에서 큰 일을 맡아보는 이장, 노인회장, 부녀회장 등이 광산김씨 이거나 이 집안의 부인들이 도맡아 한다. 심방을 모시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등의 진행도 이 마을 광산김씨 종가가 맡아서 한다.(한라일보 130117)


신당에 대한 주민들의 믿음은 대단히 크다. 중산간마을임에도 불구하고 4․3 때에 사상자가 40여명에 그쳤고, 한국전쟁에는 30여명이 참전했지만 전사자가 5명뿐이었고 월남전에도 10명이 참전했지만 전사자가 없었다는 것은 모두 신당의 백주또할마님니 마을을 보호해 주는 덕분이란 생각이 하나의 신앙으로 뿌리박혀 있다.(동아일보 730507)

송당리 마을제는 송당리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제보존회에 의해 치러지고 있다. 근래에 이르러 ‘매인심방’이 정해지지 않아 굿을 할 때마다 외부에서 심방을 섭외하고 있는데, 그 동안은 고패주(고대중), 고봉선, 박인주, 문성남, 문성남의 처가 매인심방의 계보를 이어 왔다.(디지털제주시문화대전)

2003년에 제주시 건입동에 거주하는 정태진 심방이 송당본향당의 매인심방을 맡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동안 송당본향당 매인심방의 계보는 단절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정태진 심방이 매인심방을 맡기로 함에 따라 그 계보가 다시 이어지게 되었다. 정태진 심방은 2003년 음력 7월 13일 마불림제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매인심방의 구실을 맡게 된다.(http://chejuhak.new21.net/)

정태진 매인심방은 2015년 12월 말 70세의 나이로 타계했고, 2016년 신과세제부터는 오용부 심방이 매인심방을 맡아 집전하였다.

2003년 1월 제주도와 북제주군은 제물을 준비하고 우천시 마을제를 지내는 대체 공간으로 본향당 제단 동쪽에 제사각(祭祀閣)을 지었다. 이 건물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우진각 지붕에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이 건물은 무속식으로 치르는 마을제와 어울리지 않고 주변 경관과도 조화를 이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제물을 차리고 대기하는 공간이 치성을 드리는 제단보다 높게 만들어진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


송당 본향당은 2009년 7월 제주시가 기존의 관광 명소 이외에 제주시 일대의 대표적인 장소 31곳을 선정해 발표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이다.(네이버 백과사전)

《작성 060824, 수정보완 111124,13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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