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의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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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정의에 대하여
  • 이지원
  • 승인 2018.12.1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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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서귀포시 기획에산과
이지원 서귀포시 기획에산과

우리 공무원은 행정업무를 하다가 보면 정의(情誼)와 정의(正義)가 충돌하면서 청렴성에 대한 도전을 받게 되는 경우가 간혹 생긴다. 우스갯소리로 선진행정과 후진행정의 차이점은 선진행정은 안 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누가 가더라도 안 되는데 후진행정은 누군가에게는 되고 누군가에게는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가의 여부에 있는 것이라 한다.

혹시 지금 업무를 하면서 이런 고민에 빠진 분들을 위하여 김홍섭선생(1915~1965)을 소개한다.

법조 3성(星)으로 꼽히며 존경받는 인물인 김홍섭선생은 자신의 판결로 교도소에 가게 된 이들을 찾아다니며 삶의 용기를 주고 참회를 인도하여 사도(使徒)법관으로 불리었는데 비단 이런 구도(求道)의 모습만이 유명한 것은 아니다. 그는 평생 동안 청빈한 삶을 추구하여 장인으로 부터 물려받은 양복저고리를 입고 옆구리에 사건 기록과 단무지 도시락을 든 채 매일 집에서 법원까지 걸어 다닌 모습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여기질 정도였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은 자신의 '수도생활'에 지장이 된다며 처가에서 보내준 쌀가마니도 되돌려 보내었다한다.

그가 생전에 남긴 메모에는 '재직하는 동안 직장이나 동료에게 폐가 되거나 불명예를 끼치는 일은 않을 것, 적당한 보수 외에 어떤 불의의 이득을 탐하거나 특권의식을 부려 지탄받는 일을 회피할 것, 기질과 역중에 맞는 자리를 골라 옮기도록 할 것'이라 되어 있었다 한다.

그는 또한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 고민을 하였는데 흔히 범하기 쉬운 교만과 독선, 자기 과신 대신 지극히 겸손하고 성실한 삶을 살고자한 모습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매일매일 민원인을 맞이하는 우리 공무원이 바로 닮아야 할 모습이란 생각을 해 본다.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 소장 암살 사건의 주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허태영 대령이 사형집행을 앞 둔 순간 김홍섭선생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은 특히 유명한 일화이다.

동아일보 1957년 10월 1 ~3일, '情誼(정의): 고 허태영 씨의 고별에 답하여' (동아일보, 2015. 3. 17., 신나리 기자, 중 일부 발췌).

"나는 비로소 모든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습니다."(사형수 허태영)

"비길 데 없이 반가운일, 부럽기조차 한 일이오.····이제 사람은 갔다. 갔지마는 그와 나 사 이의 情誼(정의)는 남는다."(법관 김홍섭)

그는 법(法)은 불가불 필요한 것이며 재판은 최소한의 정의(正義)를 실천하기 위해 없을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정의(正義)의 심판을 하였지만 이와는 별개로 수인(囚人)과의 정의(情誼)를 돈독히 한 모습에서 '정의'는 그 음절의 발음기호가 서로 같은 것처럼 양자가 결코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정의(情誼)에 이끌려 정의(正義)를 져버릴 위험에 자주 빠지곤 한다면 김홍섭 선생의 수필집 『무상을 넘어서』(1960년)를 통하여 마음을 다잡으며 한해를 마무리 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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