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향살이의 삶이란 모질고도 질긴,숙명의 여정(旅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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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살이의 삶이란 모질고도 질긴,숙명의 여정(旅程)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8.12.20 0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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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야생초도 타향살이가 버겁다. 양재금방망이

야생초도 타향살이가 버겁다. 양재금방망이

양재금방망이 (국화과) Senecio scandens Buch.-Ham. ex D.Don

 

올해엔 11월 24일 첫눈이 내렸습니다. 유별나게도 서울, 경기도 지역에 내린 첫눈에 대설주의보가 내렸습니다. 새벽부터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솜뭉치를 내리쏟듯 몇 시간 만에 서울 도심의 빌딩과 거리를 하얗게 덮어 버렸습니다. 이날 서울에는 오전 10시까지 적설량이 8.8cm이었고 10시 30분에 대설주의보가 해제되었습니다. 올해 첫눈은 1981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첫눈이 펑펑 쏟아지자 우선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눈이 내린 전날 함께 야생초를 찾아다니는 지인을 만나 점심을 먹었는데 아직도 양재천의 양재금방망이가 싱싱하게 꽃을 피우고 있더라는 말을 들은 탓입니다.

첫눈이 이토록 많이 내렸는데 양재금방망이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눈이 그치자 바로 서울 강남 양재천에 있는 양재금방망이를 찾아갔습니다. 양재천 제방길에 들어서니 천변과 제방에 눈이 온통 하얗게 쌓여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노란 꽃과 파란 풀잎이 눈 더미 사이사이에 드러나 보였습니다. 찾고자 하는 양재금방망이였습니다.

한겨울 눈 속에 피어있는 동백꽃은 보았지만, 눈에 묻혀 활짝 핀 풀꽃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복수초나 얼레지 등이 눈 속에 묻힌 것과 또 다릅니다. 이른 봄꽃은 눈 속에서 봄을 기다리지만 겨울 눈 속의 꽃은 봄부터 가을까지 힘겹게 자라서 꽃을 피웠는데 눈 속에 묻히면 열매를 맺어 여물지도 못하고 한살이가 끝나는 것입니다. 즉 한 생애를 헛되이 보내고 사그라져야 하는 서글픈 삶이 되고 맙니다.

양재금방망이는 수년 전 양재천 제방 비탈길에 잡초처럼 몇 포기 보였는데 그 꽃이 무슨 꽃인지를 몰라서 매우 궁금해했던 꽃입니다. 양재천은 1995년 이전에는 콘크리트 블록으로 뒤덮인 직선 호안(護岸)과 둔치가 삭막한 도심의 버려진 하수 천이었습니다. 강남 개발이 마무리되어가는 1995년부터 각계전문가를 동원하여 치수(治水) 위주가 아닌 자연형 하천으로 되돌리기 위한 친환경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양재천은 우리나라 도심하천 복원사업의 표본이라고까지 자찬할 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하천으로 거듭났습니다. 많은 화초와 공간 그리고 벤치와 가로등이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천변에는 야생화 단지라 해서 많은 외래종 꽃을 심어 놓았습니다.

금계국, 붓들레야, 루드베키아, 독일붓꽃, 야로우, 란타나, 체리세이지, 가우라, 샤스타데이지, 스텔라원추리, 클레마티스, 팜파스리드, 미국미역취, 꽃범의꼬리 등등 외래종 전시장 같았습니다. 우리 풀과 꽃들은 찾아보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양재금밤망이도 그 무렵 야생화단지 조성 때 따라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필자는 양재천 제방을 갈 때마다 항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봄, 여름, 가을철에 가보면 야생화단지라는 곳에 가꾸어 놓은 꽃들 대부분이 화훼종이거나 외래종입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화단도 아닌 제방 비탈에 잡초처럼 홀로 자라는 야생초가 있었습니다.

그 생김새가 알 듯 모를 듯 전에 보지 못했던 꽃이라서 수년 전부터 야생화 동호인 몇 명이 무슨 꽃인지 궁금해하였던 꽃입니다. 그러다가 2013년도에 ‘산림과학 공동학술발표논문집(2013.4월)’에 국내 미기록 외래식물로 발표되면서 ‘양재금방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꽃은 번식력이 그렇게 왕성하지는 않은가 봅니다.

발견된 햇수는 제법 되었는데 자생지역이 무리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거의 한정된 곳에 머물고 많이 번져나가지는 않았습니다. 줄기도 덩굴성은 아니지만 비스듬하게 누워 자라고 야리야리한 줄기에 꽃도 코스모스와 국내 자생종 금방망이와 중간 형태의 모습에 산국처럼 노랗게 꽃을 피웁니다. 중국, 일본, 인도, 네팔,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의 온난한 기후에 분포하는 야생초라 합니다.

<멀리 생소한 이역 땅에서 뜻하지 않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양재금방망이 꽃>

 


양재금방망이는 국화과 금방망이 속(屬)의 다년생 반 덩굴성 초본입니다. 설상화는 8~10개로 코스모스 꽃잎 모양입니다. 잎은 삼각형 또는 삼각상 심장 형으로 서로 마주나며 줄기는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가늘고 깁니다.

두상꽃차례가 줄기 끝이나 줄기 사이에서 많이 나와 원추 또는 산방상 원추꽃차례로 다닥다닥 무리 지어 달리며 총포가 길쭉한 편입니다. 현재까지는 이곳 외의 국내 다른 지역에서는 보고되지 않은 유일한 자생지입니다. 다른 외래 원예종처럼 정비된 화단구역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마치 버려진 잡초처럼 제방길에 설치된 데크 밑과 제방 비탈에 자라고 있습니다.

꽃도 색깔도 볼품이 있고 꽃 피는 시기도 초가을부터 늦게까지 개화기가 깁니다. 다만 2~5m의 반 덩굴성 줄기가 서로 엉클어져 정원용 화훼류로서는 적합하지 않지만, 그런대로 야생하고 있는 모습이 밉상은 아닙니다.

더구나 번식력이 왕성하여 주변 식물에 해를 끼치는 수준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탓에 개화기를 잘 못 잡고 아직 이곳에 충분히 적응이 안 된 결과인지 무성한 꽃 무더기가 눈 속에 몽땅 파묻힌 것을 보니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소복소복 쌓인 하얀 눈 속에서 파란 잎과 샛노란 꽃이 피었으니 얼마나 진풍경입니까? 하지만 식물의 처지에서 보면 대참변입니다. 추위는 점점 심해지는데 언제 열매 맺어 씨앗을 익혀 후손이 번져 나가겠습니까?

겨우 뿌리줄기로 근근이 번져나가고 있어 보이지만 개화 시기를 조정하지 못하면 오래 견딜 수 있을까에 대해 의문이 드는 종입니다. 자연환경에서 야생으로 자라거나 번식하는 것이 관찰되지만, 개체군을 스스로 유지 못 해 소멸하고,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미정착 외래식물로 끝날 것인지? 완전히 정착해 스스로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 귀화식물로 남을 것인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는 양재금방망이입니다.

눈 더미에 파묻힌 새파란 잎과 올망졸망 활짝 핀 노란 꽃송이를 보며 원래 살던 지역을 떠나 멀리 타관 객지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은 식물이건 사람이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다 나름대로 살던 곳이 있고 적합한 환경이 따로 있음을 새삼 느낍니다.

야생초도 타향살이가 버거운데 문화 다르고 환경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는 다문화가족의 한국 적응 생활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칩니다. 나아가 눈 속에 묻힌, 노랗게 활짝 핀 양재금방망이 꽃이 한창 피어나는 꽃다운 젊은이의 모습으로 겹쳐 떠오릅니다.

사할린과 일본 열도, 동남아 등에 끌려가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젊은 꽃들, 광부와 위안부의 타향살이 모습으로 클로스업됩니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다문화가족, 낯선 땅에서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했던 징용 광부와 위안부, 마치 그들의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타향살이의 삶이란 모질고도 질긴, 무릇 생명체가 다 안고 가야만 하는 숙명의 여정(旅程)인가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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