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연디왓..애월리 애월연대(涯月煙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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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연디왓..애월리 애월연대(涯月煙臺)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1.2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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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주둔한 곳에 연락을 취했던 조선시대 통신망의 하나

애월리 애월연대(涯月煙臺)
 

위치 ; 애월읍 애월리 1975.
시대 ; 조선
유형 ; 방어유적(봉수)

 

▲ 애월리_애월연대(1705)보수공사중
▲ 애월리_애월연대

적이 침입하거나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방호소나 수전소 등 군대가 주둔한 곳에 연락을 취했던 조선시대 통신망의 하나이다.

평상시에는 하나, 황당선이 보이면 둘, 가까이 오면 셋, 범경이면 넷, 싸움이 붙은 상황이면 다섯개의 연기 또는 불빛을 피웠다.

제주도의 방어시설은 크게 3성·9진·10수전소 등으로 구분되며, 제주도 일원에는 산을 이용한 봉수대 25개소와 해안선 고지대에 설치한 연대 38개소가 있어 성·진·수전소와 연락을 취했고, 해안에는 환해장성을 쌓아 외침을 막았었다.


애월연대는 애월진에 소속된 연대로 속칭 연디왓에 있다. 밖으로 돌출된 해안과는 450m 정도 떨어져 있지만 지형이 주위보다 높아서 동쪽으로는 남두연대(직선거리 4.2Km), 서쪽으로는 귀덕연대(직선거리 3.2Km)와 우지연대가 있는 귀덕리 해안을 거쳐 멀리 수원리 해안까지 감시할 수 있다.


애월연대는 『탐라방영총람(耽羅防營總攬)』이라는 고문헌에 ‘제주에서 서쪽 47리에 있고 애월진에 속해 있으면서 별장은 매번 1인이고 15일마다 5일 번을 서고 연군 12명이 2인씩 15일마다 5일을 선다’고 기록돼 있다.

또한 ‘제주병제봉연총록(濟州兵制烽臺總錄)’에는 ‘제주삼읍군제에 애월연대는 동쪽 남두연대와 응하고 서쪽 귀덕연대와 응한다. 별장 6인 직군 12명이 있다’고 기록됐다.


『제주의 방어유적』등에는 이 연대는 대지가 경사져 있어 높이 1.2m의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연대를 쌓았다고 기술하였으나 석축을 쌓은 것이 아니라 자연적인 암반을 이용한 것이며 축조 후에 그 주변에 돌을 모아 놓은 것이다.


상부 8.3m×8.2.m, 하부 9.3m×9.4m, 높이 4.8m인 사다리꼴로 구축되었다. 난간벽의 폭은 1.1m, 높이 0.7m이고 입구의 폭은 1.4m이다. 다른 연대와 비교하면 연대의 높이는 매우 높고 입구 또한 중앙에 있지 않고 오른쪽에 치우쳐 있다.

축조 방법은 거친돌 허튼층쌓기로 테두리는 심석(心石)을 상부와 하부 사이의 중간 높이에 2단 물려 쌓았으며, 층수는 13층이다.(제주의 방어유적 222쪽)


위 책에는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고 써 있으나 돌 쌓은 기술과 형태를 협자·말등포·소마로 연대와 비교할 때 1975년 전후에 다른 연대들과 함께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시청이 제주산업정보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신석하 교수)에 의뢰해서 2010년 12월29일부터 2011년 2월22일까지 애월연대에 대한 실측조사를 한 보고서를 보면 서남측 모서리 돌(石) 사이가 25cm 벌어졌고, 북벽 일부가 중간부에 배가 불러와 돌출상태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서 2017년 5월 현재 해체보수공사중이다.(공사 기간 170215∼170614, 수리기능자 한식석공 제4125호 김일태, 공사감독관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김은철. 위 사진 참조)
《작성 061214, 보완 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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