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민가 가옥..성읍1리 고상은(高相殷) 초가→성읍마을 대장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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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민가 가옥..성읍1리 고상은(高相殷) 초가→성읍마을 대장간집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1.2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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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대장간으로 쓰였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성읍1리 고상은(高相殷) 초가→성읍마을 대장간집

 

제주도 중요민속자료 제 72호(1979년 1월 22일)
위치 ;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862번지
유형 ; 고건물(민가 초가)
시대 ; 조선

 

▲ 성읍1리_고상은초가(대장간집).
▲ 성읍리_고상은초가전경

이 가옥은 중요민속자료 제69호인 고평오 가옥과 이웃하여 있다. 고평오 가옥 이문간 길 맞은편의 예전 관리들이 전용했던 음료수인 '남문통'(관청못) 바로 남쪽에 단출하게 서 있다. 자그만 안거리와 ㄱ자형으로 놓인 7평 짜리 모커리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문이나 우영도 없다.

19세기 말엽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가옥의 특색은 예전에 안거리가 대장간으로 쓰였었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안거리 평면의 간살은 나중에 시설된 것으로 보인다. 안거리는 작은 방이 딸린 삼간집이며 모커리에는 정지간이 마련되었는데 이 정지간도 20세기 중반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대장간으로 쓰였던 안거리는 대장간일 당시 가옥 구조를 추측하건대 그 가옥의 구조가 상방과 작은구들 및 정지간의 구별이 되지 않은 채 통칸으로 꾸며졌던 것으로 보인다.

대장간 한가운데에는 땅에 기둥뿌리를 묻는 '생깃기둥'(상기둥)을 세우고 비스듬히 대들보를 얹었던 원초적인 가옥 형태였을 것이다.

이 가옥은 객사에서 남문으로 이르는 길가에 세워졌다. 이 길은 예전의 정의 고을로서는 중요한 도로였다.

이 가옥의 이웃인 객사 남쪽 네거리에는 '노도리방죽'이란 못이 있으며 이 가옥 바로 남쪽 맞은쪽에 관료들이 이용했었다는 '남문통'(관청못)이라는 우물이 있었고, 지금도 그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제주도의 어느 마을에서든지 대장간이 마을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던 사실과 이 가옥의 위치는 상통되는 점이 있다.

우영과 같은 공간마저 없이 단출하게 세워진 가옥이기는 하지만, 이 가옥은 민가로서의 값어치보다는 예전에 대장간으로 쓰였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작성 061217, 보완 1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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