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정, “우리는 군림하되 봉사하지 않는다..”
상태바
원희룡 제주도정, “우리는 군림하되 봉사하지 않는다..”
  • 고현준 기자
  • 승인 2019.02.13 0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층취재 4)기자가 직접 민간 환경미화원으로 취직해 일해 보니..

 

이번 기회에 음식물쓰레기 수거 경험을 하면서 환경미화원들에게 노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기자가 듣기로는 이들 노조 소속 환경미화원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한다.

결국 오후 3시 이후에는 민원이 생겨도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위탁을 주었는데 이를 맡았던 업체가 적자가 나자 이 업무를 포기했다는 것.

이후 다른 업체를 모집했지만 응하는 업체가 없었고 결국 내가 소속된 한 업체 한 곳 만이 입찰에 참여해 이 업무를 맡게 된 것이라고 한다.

사실 10억여원의 예산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민간수탁 업체는 8억여원에 이 업무를 맡기로 해서 시작된 일인데 문제는 민간수탁업체를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맡은 업무라 일이 서툰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이에 대한 배려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무조건 공무원이 하라고 하면 해야 했고 가라고 하면 무조건 가라는 명령이 계속 됐다.

기자는 일을 하는 동안 이 일이야 말로 제주시청과 업자가 서로 협력자가 되어 음식물쓰레기 처리의 문제점을 파악하여 이를 알리고 함께 해결방법을 찾는 협력자 정도로 생각했던 것인데..

이는 협력이 아닌 종 또는 노예나 다름 없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원희룡 제주도정 운영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자가 느낀 제주시청의 음식물쓰레기 처리방식에 대한 공무원들에 대한 인상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군림하되 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민간수탁업체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시만 있었고, 어떠한 배려도 용납되지 않았다.

제주도민에 대한 배려가 전혀 보이지 않는 원희룡 제주도정의 불통행정이 제주시청 공무원 사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기사는 기자가 직접 취직을 해서 체험한 민간 음식물쓰레기 처리를 담당하는 환경미화원 일지다.

매일 새벽 4시30분부터 시작되는 이 일을 하는 동안 기자는 단순노동이었지만 제주도의 심각한 환경문제의 현실을 직시했다.

특히 원희룡 제주도정이 현실을 모르는 저급한 도정 운영방식도 새롭게 알게 됐다.

현장을 모르고 책상머리에서만 지시를 내리는 공무원들의 실태를 보면서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이 모두가 제주도정을 이끌고 있는 원희룡 지사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장에 대한 내용은 알고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점에서 이를 지적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런 식으로 제주도정을 운영한다면 제주환경의 앞날은 암울하고 발전가능성도 없고 해결방안도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이다.

본지는 기자의 민간 환경미화원 경험을 토대로 이같은 제주환경 문제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원희룡 제주도정의 환골탈태하는 변혁을 촉구한다는 차원에서 연재를 계속 한다.

 

2019년 1월8일 이틀째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지 두 번 째날..

새벽 3시30분에 알람이 울리고 또 50분에 울리고 새벽 4시가 되어서야 힘겹게 일어나 앉았다.

이 날은 피곤도 하고 얼굴을 닦기도 싫어 세수도 하지 않고 그냥 나갔다.

빵모자를 쓰고 얼굴까지 막고 있는 터에 세수가 무슨 대수랴 싶었기 때문이다.

이 날은 전날 운전을 맡았던 프로운전자인 전직 직원이 나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지옥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팀원 중에서 한 사람이 운전을 하기로 했다.

내가 운전을 해보려고 시도해 봤지만 트럭을 운전해 본 일도 없고 더욱이 수동이라 나는 도무지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

운전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미화팀으로 배정돼 쓰레기 수거를 담당키로 했다.

이날 운전에 서툰 나와 팀을 이룬 김진형은 시동을 거의 1백번 이상 꺼뜨리는 일을 반복했다.

일은 더디고 운전은 되지 않고 후진을 하지 못해 쓰레기통을 멀리서 가져와야 하는 힘든 일이 계속 반복됐다.

정말 고된 하루였다.

새벽 4시반에 시작된 일이 저녁 6시가 넘어서야 겨우 일이 끝났다.

첫날은 그나마 오후에 끝났지만 이날은 최장 14시간 이상이나 일한 날이었다.

   

보람이라고 하기조차 힘든 지옥같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형에게 용기를 주면서 우리는 함께 즐겁게 일을 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단순노동이었기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몸을 움직인다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남들은 경험해 보지도 못하는 일인데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하며 서로를 위안하며 웃으면서 일했다.

하루종일 한끼도 먹지 못한 우리에게 사장은 저녁이라도 멋있게 먹자며 식당에서 다시 모이자고 했다.

이날은 화북에 있는 보쌈정식 집으로 가서 맛있는 아점저 저녁을 첫 식사로 했다.

마침 우리 팀원 중에 한사람이 보쌈정식을 먹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일이 일찍 끝난 팀은 우리가 계속 일을 하고 있었기에 고통을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다들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우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정말 힘들고 고된 하루가 끝나고 먹는 한끼의 식사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1년 이상 이 일을 해 왔다는 우리를 도와주는 젊은 30세 청년도 이날은 함께 자리했다.

일은 우리에게 넘기게 되었지만, 이 친구는 정말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일에 정말 열심인 청년이었다.

우리는 계속 이 친구가 필요했다.

사장에게 "이 친구를 계속 우리와 함께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사장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너무 그들에게 의지하면 안된다”는 것이 사장의 생각이었다.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해야 하며 인원수도 맞추져 있어서 곤란하다”는 것이 사장의 뜻이었다.

그런 와중에 사장과 청년은 식사 중에 서로 말다툼까지 하게 됐다.

사장과 청년은 서로 아무 것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서서 중재도 할 수 없었다.

결국 식사후 이 청년을 내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면서 사정을 이야기 했다.

청년은 내 명함을 보더니 “그런 분인 줄 몰랐다며 적극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셈이다.

나는 “내일부터 이틀간 서울 출장이니 갔다 와서 보자”고 했다.

이 청년도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서울로 가서 쉬고 온다”고 했다.

우린 갔다 와서 다시 보자고 했다.

정말 힘들었던 하루는 결국 밤 11시가 되어서야 모두 마무리됐다.

내일도 새벽 4시면 또 나가야 하는데..

(이 기사 연재 계속 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