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제주도지관..종달리 경주김씨입도조(김검룡)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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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제주도지관..종달리 경주김씨입도조(김검룡)묘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3.03 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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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헌마공신으로 유명한 김만일은 김검룡의 7세손이다.

종달리 경주김씨입도조(김검룡)묘
 

위치 ; 종달리 마을 서쪽 고막곶
유형 ; 무덤
시대 ; 조선초

▲ 종달리_김검룡묘문인석
▲ 종달리_김검룡묘근경

경주김씨(慶州金氏) 제주입도조 김검룡(金儉龍)의 무덤이다. 경주김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56대 경순왕(敬順王)이다.

경순왕의 아홉 아들 중 장자인 김일(金鎰)은 금강산에 입산했고, 둘째 김굉(金鍠)은 나주김씨와 안로김씨(安老金氏)의 선계가 되었으며 셋째 김명종(金鳴鍾)과 넷째 김은열(金殷說)은 경주김씨의 파조가 되었다.

그 뒤 다시 분파하여 김인경(金仁鏡)을 파조로 한 명암공파(明庵公派), 김인관(金仁琯)을 시조로 하는 태사공파(太師公派), 위영(魏英)을 파조로 하는 호장공파(戶長公派), 파장유(派將有)룰 중시조로 하는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등으로 대별되고 있다.


김검룡은 경순왕의 넷째 왕자 안동군 김은열(金殷說)의 16세손이며, 김녕군 김시흥(金時興)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익화군 김인찬(金仁贊)으로 조선개국 일등공신이며 의정부 좌찬성 벼슬을 했다. 김검룡은 셋째 아들이다. 제주에서 헌마공신으로 유명한 김만일은 김검룡의 7세손이다.


김검룡(金儉龍)의 입도 동기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김검룡(金儉龍)이 조선 초인 정종 말기 태종 초 감목사(監牧使)로 입도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태종3년 양마 6필을 생향인 경기도 양근현(楊根縣) 마유봉(馬遊峰)에 보내어 헌마한 후 같은 해 제주도지관(濟州都知官)이 되었다는 기록이 전승되는 점으로 미루어 감목사라는 벼슬로 제주와 인연을 맺고 정의현 오조리에 정주한 것으로 보인다.(디지털제주문화대전)

이 즈음 조정에서는 제주의 고(高)씨와 문(文)씨 가(家)에서 세습하여 오던 오랜 전통인 성주(星主)와 왕자(王子) 작(爵)을 자진 반납하였으므로 제주 토관직(土官職)을 개혁하여 새로이 좌우도지관(左右都知官) 직제를 설치하고 이미 존속해 오던 제주도지관을 폐지하기에 이르자 김검룡은 관직을 그만두었다.

이후 그는 서당을 열어 훈학에 힘쓰며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는데 그의 문장과 명성은 경향에까지 미쳐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지미의맥 121쪽)


묘의 모양은 방묘(方墓)이나 옛날 모습 그대로는 아닌 것 같다. 특히 무덤의 돌쌓음 방식은 전통적인 우리 나라의 방식은 아니다.
《작성 070306, 보완 1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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