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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
"천지간 그 어디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 있을 수 있는가?"[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아린(芽鱗)과 겨울눈을 보며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 http://www.freecolum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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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승인 2019.03.15  06: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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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芽鱗)과 겨울눈을 보며

   
 아린(芽鱗)에 싸여 있는 나무의 겨울눈 (나도밤나무, 가래나무)

 

매서운 추위가 대지를 뒤덮는 겨울, 사방이 우중충한 음산한 날씨에는 두꺼운 옷을 걸쳐 입어도 찬바람이 파고들어 온몸이 움츠러듭니다. 길짐승, 날짐승도 겨울이면 먹이에 굶주리고 추위를 못 이겨 동면하거나 최소한의 먹이 활동에 그치게 마련입니다.

겨울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뭇 생명체가 성장을 멈추고 침잠하는 계절입니다. 이러한 움츠림과 휴면은 식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동물은 추위를 피하여 이동할 수 있지만, 식물은 움직일 수가 없어 그 자리에서 온갖 추위를 견뎌내야만 합니다.


‘살아간다.’는 것이 사람과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식물 또한 생체이기에 겨울을 무방비로 맞이할 수는 없고 나름대로 대비를 하여야만 그 생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식물은 생체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려고 낙엽을 떨구며 성장을 멈추고 월동준비를 합니다. 상록수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한의 잎만 지닌 채 월동을 해야 살아남습니다. 연약한 생장점인 새싹의 ‘잎눈’과 종(種) 유지에 가장 소중한 ‘꽃눈’이 겨울에 얼지 않아야 합니다.

동물이 겨울을 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따뜻한 곳으로 이동을 하거나 아예 활동을 멈추고 동면을 하거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칩거하는 등 나름의 방식이 있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의 월동준비는 어떠할까요?

식물은 겨울나기를 위해 낙엽을 떨구고 성장을 멈추며 겨울눈을 만듭니다. 나무의 겨울눈은 이른 봄에 꽃을 피울 ‘꽃눈’과 새싹을 낼 ‘잎눈’이 있는 하나의 작은 생명체로서 아린(芽鱗)이라 하는 비늘 껍질에 싸여 혹한의 추위를 견디어 냅니다.

아린에 덮인 겨울눈은 사람의 지문(指紋)이 서로 다르듯 식물도 종에 따라 그 모양이 각각 다릅니다. 사람의 성격과 행동 패턴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식물도 종별로 자라는 방식과 생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참으로 신비한 식물의 세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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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엽수와 참빗살나무의 겨울눈

 

가을이 지나 겨울이 되면 꽃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봄부터 야생화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는 꽃쟁이들의 농한기(?)인 셈입니다. 무료한 농한기에는 식물의 겨울눈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제각기 서로 다른 나무의 겨울눈을 찾아 나서는 겨울 산행은 새로운 앎을 쌓아간다는 즐거움이 있고 알면 알수록 식물에 대한 이해와 신비감이 더해 가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에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입니다. 나무 역시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한해살이풀처럼 한 해만 살고 가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겨울을 이겨 내지 못하면 바로 죽음입니다.

나무는 줄기와 가지 끝에 추위를 견디고 후일의 성장을 책임질 겨울눈을 제각기 독특한 방법으로 만듭니다. 나도밤나무나 가래나무처럼 두꺼운 솜이불 옷을 입듯 보드라운 털로 겹겹이 감싸기도 하며 칠엽수처럼 밀랍 같은 기름기가 있는 여러 겹의 껍질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소나무는 털과 진으로 감싸기도 하며 어떤 나무는 단단한 비늘 껍질을 여러 차례 덧씌우기도 합니다.

이들 새 생명체를 둘러싸고 있는 아린(芽鱗), 즉 겨울눈을 보호하고 있는 비늘 껍질은 나무의 꿈과 희망을 품고 키워주는 또 다른 하나의 세계입니다. 보호인가? 속박인가? 따뜻한 햇볕이 들고 천지의 봄기운이 완연해지는 때가 되면 새 생명은 단단한 아린을 깨고 싹을 틔우고 꽃망울이 부풀어 오릅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보호막이 깨져야 합니다. 깨지는 아픔이야 가없지만, 새로이 태어날 기쁨도 끝이 없습니다. 나무의 겨울눈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말하는 또 하나의 세계, ‘알’과 같습니다. 깨지는 아픔이 있기에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 있습니다. 찢어지는 참담함이 있기에 우화등선(羽化登仙)의 비상(飛翔)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수, 경칩이 지나고 새봄이 시작됩니다. 새봄이 되면 겨우내 겨울눈을 감싸고 보호했던 아린이 하나둘 벗겨지고 떨어져 나갑니다. 나무는 아린이 있었기에 한겨울의 추위와 시련을 이겨내 새봄에 새움을 틔우고 화려하게 꽃망울을 부풀려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봄이 되면 속박인 듯한, 깨지고 떨어져 나가야 할 구각(舊殼)에서의 시련과 인내가 있었기에 새날의 찬란함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러함을 아린과 나무의 겨울눈에서 배웁니다.

 

아린(芽鱗)을 털고

아린(芽鱗)을 털고 새 눈이 나온다.
보호인가? 속박인가?
굳이 구분하지 아니한다.
보호할 때 보호하고 깨뜨릴 때 깨뜨려지기에.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자는 아름답다.’고 했다.
‘박수 받을 때 떠나는 자는 행복하다’고 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보호막은 깨져야 한다.
깨지는 아픔이야 가없지만
새로이 태어남의 기쁨도 끝이 없다.

끝과 끝이 맞닿아야
형상이 만들어지고 흐름이 일듯이
슬픔과 기쁨도 함께 있는 것이다.
모두가 하나이다.

제행무상(諸行無常)하고 제법무아(諸法無我)인데
천지간 그 어디에
유아독존(唯我獨尊)이 있을 수 있는가?
깨뜨려지는 것이 있고
털어내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있을 수 있음을
저 겨울눈은 이미 알고 있기에
아름답게 떠나는가 보다.

내겐 왠지 까닭 없는 슬픔이 남는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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