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유한라산기..가시리 서재(한천)유허비
상태바
[향토문화]유한라산기..가시리 서재(한천)유허비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4.14 0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향약을 세우고 선비를 가르치니 이 섬에 점점 학문이 일어났다.'

가시리 서재(한천)유허비(恕齋韓公諱천遺墟碑)


 

위치 ; 가시리 1994-1번지 충의사 내
시대 ; 조선
유형 ; 비석(유허비)

규격 ; 높이 128cm, 너비 55cm, 두께 22cm

▲ 가시리_한천유허비정면
▲ 가시리_한천유허비원경

이 비석은 조선말인 1873년 제주도에 유배되었던 면암 최익현이 유배에서 풀리자 한라산을 올랐다가 하산길에 이곳에 들렀는데, 여기가 서재공의 유허임을 알고 불사이군의 정신을 높이 기려 그의 《유한라산기》에 적어 놓은 것을 한씨 후손들이 새겨 세운 것이다.

한 동안 충의사 건물 안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2006년 밖으로 내놓고 비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비석의 앞면에는 '恕齋韓公諱천遺墟碑'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긴 문장이 새겨져 있다.


탁羅之旌義縣加時里 有古恕齋韓公諱천遺墟 漢拏□□ 連延起伏 東走六十餘里 至此而平岡長阜 環合分開 地勢平正 瀛州甲蟬兎달鳥鷹諸峰 羅列四衛 眺望佳勝 진靈景也 今距公五百餘年 其寢廓 □□ 書齋 點堂諸位置 牧老耕수 尙歷指點 記傳不忘 如召우鄭鄕焉 菊非公德 入人深 功及人遠者 能如是乎 謹按韓氏淸州著族 有諱蘭佐高麗太祖開國官至大尉威襄 寔爲公十世祖匡靖大夫修文殿太學士監修國史判典理事世子師致仕 諡文惠諱康僉議府左司議大夫寶文閣提學知制誥 諱謝奇宣力佐理功臣上黨府院君 賜鐵券 諡思肅 諱渥推忠協贊功臣匡靖大夫知都僉議使事 諱大淳公府君也 天安全氏同知密直進賢館大提學 諱信 公外祖也 公生于麗季 以學行節義 國在掌敷文敎 國凶扶植彛倫 民到于今 受其賜 麗史所載 恭愍王二十年辛亥二月 以韓천爲慶尙道都巡問使 恭讓王三年辛未 判開城府事 四年壬申七月 王遜于原州 斬丹陽君禹成範晋原君姜準季 流大提學韓천于耽羅者 此實錄也 足徵百世矣 公配 光山金氏 匡靖大夫政堂文學禮文館大提學知春秋館事上護軍章榮 公諱전女生二子 長曰洙次曰濟 金氏舊譜 旣載公與二子 濟州官籍 又可敢公子姓而獨於韓氏內地全譜 以無後縣錄 何故歟 當時事情 槪可想己 國破君亡 幸不死 減律南流則遠海僻山 於公心 可謂爰得我所 欲목響滅影 與世無聞 海旣遠而猶恨未遠 山旣僻而猶恨未僻 爲公子姓者 豈不知乃父祖心事也 心以傳心 歷數世 未暇問聞於內地修譜而 內地修譜諸公 亦以水陸數千里外 聲息阻絶 遂謂無後也 然 金譜官籍 不泥有據 此亦神理妙處 嗣後有修 當採而正之 豈以 公德深功遠而其後不昌大也 □期□聊 繩繩蕃衍 其麗數千 殆遍一洲 或闡科官 或著孝友 多才藝 多文學 有未艾氣數 報施之天 果不或哉 又聞公 居於是也 以敎育後進爲己任 後進之勤慢能否 必點考焉 所謂書齋點堂 是其址也 嗚呼 罔爲臣僕 箕聖東來 八條敎民而夷變爲夏 恥事二姓 公又南渡立約敎士而島漸興學 德雖有深淺 功雖有廣狹而氣 相傳 歷數千載而一揆 不亦奇乎 益鉉適過是墟 절有感焉 書此以遺韓氏 비爲之記 崇禎后五己卯仲秋 月城 崔益鉉 謹書

필자의 능력으로는 전문을 다 번역할 수는 없고, 양진건의 '그 섬에 유배된 사람들'을 보면 비문의 중심 내용은 '두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공은 남으로 건너와 향약을 세우고 선비를 가르치니 이 섬에 점점 학문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