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소를 위한 당..난산리 골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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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소를 위한 당..난산리 골미당
  • 고여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4.29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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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를 지내면 병이 낫고 소가 제발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난산리 골미당
 

위치 ; 온평리로 내려가는 길로 조금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들어가서 ...(직접 다시 가 봐야 정확히 쓸 수 있겠네 ㅠㅠ.)
시대 ; 조선-현대
유형 ; 민속유적(목축 관련 당신앙)

 

 



골매당은 도내에서 드물게 보는 쇠당이다. 이는 소를 위한 당인데 설촌 당시부터 있어 왔으며 그 유래도 두가지로 전해진다.


(1) 나주 땅에서 백정이던『시륙이』『사륙이』『기행이』라는 3형제가 못된 짓을 하여 제주로 귀양을 오게 되었다. 삼형제는 신이 내려 왔다는 한라산에 올라가 자기들이 살 만한 곳을 둘러보니 송당이 눈에 띄어 거기에 내려왔다.

이어 비조곶, 좌부미 등으로 옮겨가며 살다가 수산 김참봉네 집 구렁비 나무에 살다가 신구간에 나무를 베어 버렸기 때문에 난산지경에 왔다가 항문으로 창자가 빠져서 죽었다.

그 다음부터 소가 병이 들거나 잃어 버렸을 경우 이들이 죽은 곳에서 제를 지내면 병도 낫고 소가 돌아오기도 했다 한다.


2) 지금의 골매당 근처에 큰 바위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 어떤 목동이 바위 옆에서 비를 피하여 앉아 쉬면서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놀다가 비가 그치자 그 흙 인형을 둔 채 그냥 가버렸다.

그 후에 어떤 사람이 이 곳을 지나가다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을 때리니까 상처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그래서 그 흙으로 만든 사람을 지금의 골매당자리에서 부숴버렸는데 그 후에 소나 말이 병이 나고, 잘 죽고 잘 잃어 버렸다.

이에 주민들이 제사를 지내고 목동이 만든 흙 인형을 신으로 위했다. 그 다음 부터는 마을에서 소를 새로 사오거나 외부로 팔 때에는 꼭 이 곳에 제를 지내야 되고, 병이 나거나 잃어 버렸을 때도 이곳에서 제를 지내면 병이 낫고 소가 제발로 집에 돌아왔다고 한다.


□ 특색


축산은 남자의 일이다. 그러므로 골매당에 여자는 원칙적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소를 가진 남자가 누구를 빌지 않고 스스로 가서 제를 행한다.

즉 다른 당처럼 무당이 같이 가서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이런 원칙이 많이 파괴되어 무당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골매당에 갈때에는 반드시 소의 고삐를 만들어서 가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헝겊이나 삼베 혹은 신설란으로 고삐 모양을 만들어서 나무에 걸어놓고 온다고 한다.


2007년 5월 6일 만난 이 마을 할머니의 말로는 소원을 빌 때 다른 당에서처럼 높임말을 쓰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욕하듯이 큰 소리로 예를 들면, ‘우리 집 쇠가 발이 저럼시난 빨리 낫게 해라, 이놈아.’ 이렇게 말을 하고 온다고 한다.

당에 좌정한 신이 천한 신분인 백정이었기 때문에 그러는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남자만 가는 당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자기 자신도 갔었다면서 20여 년 전에는 여자도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처럼 소의 고삐를 묶어 놓는 대신 비닐이나 나일론 포장용 끈이 많이 묶여 있었다. 제물로는 메, 돌레떡, 술을 올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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