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언젠가는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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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언젠가는 알 수 있도록.."
  • 고현준
  • 승인 2019.05.05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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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올레걷기)제주올레여행자쉼터-법환포구, 외돌개와 그곳 선녀탕에는 인어가..

 

 

젊은 시절의 청춘들은 거두절미를 좋아한다.

딱 하나..

꿈이면 꿈, 사랑이면 사랑, 야망이면 야망 등등..

하나에 꽂히면 거기에 몰입하여 질주한다.

자연환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는 지금 더 많은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제2공항 건설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가, 또는 우리 국민들의 힐링의 도시라는 제주도의 분위기가 곧 요상하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지금 도지사의 뜻을 추종하는 제2공항 찬성파와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한 반대 입장이 갈려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고 있는 중이다.

개발과 환경의 조화가 아닌, 너는 죽어도 나는 살자는 의식이 팽배해져 나라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이분화 되고 있듯, 이와 똑같은 양상이 제주사회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건, 반대도 있을 수 있고 찬성도 있을 수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임에 틀림없지만..그러나 극단화하는 이분화된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거두절미만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니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바라봐야 하는..

많은 생각이 필요한 그런 걱정꺼리를 안고 걷듯 올레를 찾는다.

 

지난 4일은 어린이날 연휴와 여름의 초입을 알리는 입하를 앞두어서인지 거의 초여름날씨였다.

제주도를 제주도답게 만들어준 제주올레..

개인적으로 3번째 걷는 올레길이지만 갈 때마다 나는 새로운 올레와 늘 다시 만난다.

이날 걷기로 한 올레는 7코스, 제주올레여행자쉼터에서 출발했다.

강법선 선생과 나와 친구 고광언 등 셋은 제주시에서 출발하고, 다시 서울에서 제주에 내려 온 오테권도 참여하기로 해 그는 성산에서 출발하여 서귀포에서 10시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서귀포까지 차로 달리는 동안 곳곳에서 마주치는 제주도의 공사판들..

많은 차들을 한쪽에서는 막고 한쪽에서는 가게 하고..

제주도는 요즘 어디를 가나 이같은 공사판과 자주 만나게 된다.

특히 제주에 LNG공급을 위해 배관을 연결하는 중이라 이곳저곳에서 많은 공사가 이뤄지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자기 동네에는 LNG배관을 하지 못한다고 적은 현수막도 보인다.

제주도민 전체가 도시가스 사용이라는 이득을 보는 일인데, 배관을 깔지 못하게 하면 도시가스 공급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그런 어거지가 보이면 가끔 한숨을 쉬게 된다.

그런 길들을 뚫고 달려 서귀포 올레여행자쉼터에 도착했다.

 

오태권은 강 선생과 이날 처음 만났다. 오태권은 올레수첩이 있지만 갖고 오지 않았다고 해서 종이에 도장을 찍어 수첩에 붙이라고 했고, 강법선 선생은 수첩을 갖고 있지 않아 도착하자마자 수첩을 사서 처음 스스로 7코스 출발 스탬프를 찍었다.

진짜 올레꾼이 된다는 건, 올레수첩에 스탬프을 찍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날 강법선 선생도 스스로 스탬프를 찍고 올레꾼으로 드디어 입성하게 된 것이다.

올레를 걷는다는 건, 결국 만남과의 교감이다.

사람과도 만나고 자연과도 만나고, 올레길의 색다른 분위기와도 만난다.

 

 

이날 만난 올레는, 문화의 도시인 서귀포시가 자랑하는 시공원이 첫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크기의 바위에 새겨진 많은 시들..

시공원은 그런 장중한 모습으로 우리를 시의 세계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길을 걷다가 만나는 그중의 큰 볼거리는 한라산을 배경으로 보여지는 천지연폭포다.

그곳에 서면 제주도의 그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제주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만드는 곳이 이런 곳이다.

한라산이 뒤에 장중하게 서 있고, 천지연폭포는 아예 다소곳한 정도로 작다.

그 길은 사색하게 하고, 또 매화나무에 파랗게 달린 매실도 탐스럽게 열려 마음을 또 풍요롭게 만든다.

 

걷고 싶게 만들어 버리는 길..

시공원은 시가 있기에 시공원이지만, 읽는 시 보다 시가 쓰고 싶어지는 영감을 준다,

이곳을 나오면 서귀포시에 상징처럼 서 있는 삼매봉을 오르는 길로 이어진다.

올라가면 내려가기도 하련만..

삼매봉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만 하다.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다다르면 오직 서귀포에서만 보인다는 장수의 상징 노인성을 볼 수 있는 정상과 곧 마주한다.

 

서귀포에서만 보이는 남극노인성 카노푸스

 

노인성 또는 수성이라 무르는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별.

우리나라에서는 서귀포시 해안에서만 관측이 가능한 별로 이지함(토정비결 저자)은 이 별을 보기 위해 한라산에 세 번이나 올랐다.

이 별이 밝게 보이면 국운이 융성하고 전쟁이 사라지며, 이 별을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하여, 조선사대에는 국가제사로 노인성제를 매년 춘분, 추분에 두 번 지냈다,

 

노인성에 대한 설명과 함께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는 노인성에 대한 감회를 적은 글들이 꽤 있었다.

 

우음(우연히 읊음)

 

한마디에 뜻을 거스리니

삼위에는 문득 그림자 뿐,

멀리 고운 님을 여의었네.

가까이로 노인성에 기대었네.

기러기는 북쪽을 향해 날아만 가는데

대정골 매화는 남월 향기를 날리네.

유배지에서 맞이하는 세모의 그늘

좁쌀을 펴면서 돌아갈 날 점을 쳤네.

 

-동계 정온(오현의 한사람)

 

 

노인성

 

남극에 신령스런 별 하나 있으니

호성 아래에 있는 별이라네.

새벽에 바라보면 파월인 듯 보이고

저녁에 바라보면 밝은 등불 감춘 듯

조정에서는 국운의 형통함을 점치고

백성들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다네.

오로지 중국 형산과 한라에서만 볼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볼 수가 없다 하는 걸.

 

-김상헌(32세 때인 1601년 제주도에서 발생한 길운절(吉雲節)의 역옥(逆獄)을 다스리기 위해 안무어사로 임명되어 6개월 동안 제주도에 파견)

 

 

다시 길을 따라 나서니, 이젠 완전 내리막길이 외돌개 입구까지 이어진다.

단숨에, 그렇게 힘들게 올랐던 삼매봉과 곧 이별하게 만든다.

외돌개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서인지 항상 소란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올레코스 중 가장 인기가 있다는 7코스이기에 그럴 수 밖에 없다.

분명 제주올레 7코스의 압권은 외돌개임이 틀림없지만..

 

외돌개

외돌개는 화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지대에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돌기둥이 홀로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규모는 높이 20여m,폭 7-10m이다.구멍이 적고 조밀한 회색을 띠는 조면연산암으로 형성돼 있다. 주변 해안은 파도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절벽과 동굴이 절경을 이룬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원나라 묵호를 물리칠 때 범섬으로 달아난 세력들을 토벌하기 위해 외돌개를 장군모습으로 변장시켰다고 하여 ‘장군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이날 나는 외돌개로 들어서다 거의 초입에서 만난 선녀탕에 반해 버렸다.

제주에 그렇게 오래 살면서, 올레를 세 번이나 걸으면서 그런 비경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선녀탕을 내려가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

2개로 나뉘어진 이곳 선녀탕에는 한 곳에서는 이미 한 여성이 비키니를 입고 홀로 수영을 즐기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스킨 스쿠버들이 유영을 하는 중이었다.

이 선녀탕이야 말로 제주가 제주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할 소중한 공간이었다.

아마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 이런 아름다움이 숨어있다니..하는 그런 감회다.

바위로 가득한 바닷가에, 바다를 둑처럼 막아 선채 시퍼렇게 빛을 발하는 옥빛 푸른 호수가 만들어졌다.

 

 

선녀탕은 그곳을 그곳이게 만드는 오직 자연만이 줄 수 있는 수작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그 비경에 발이 얼어붙어 버리는 것이다.

사람들이 그곳을 바로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참 많을 것 같았다.

선녀탕을 추억하며 다시 기어 올라와 외돌개쪽으로 걷다가 다시 만나는 바닷가 통바위 언덕..

이 통바위 바닷가 바위 위에 서면 서귀포 앞 태평양의 드넓은 바다가 또 한눈이다.

서귀포칠십리 노래비가 서 있는 곳에서는, 바다위를 유람선이 섬을 향해 달려나가고..

노래가 절로 나올만 하다.

이런 곳을 가보지 않고 제주를 가봤다고 말할 수 없다.

 

멀리 보이는 육지와 새섬을 연결한 새연교가 자연의 풍광을 어지럽히기도 하지만, 이 넓기만한 바다를 보는 것 만으로도, 저 멀리 서 있는 3개의 섬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아니 바위 위에 그냥 앉아 있는 것 만으로도 모두가 만족한다.

이 길을 걷다 외돌개를 측면으로 보며 찍는 사진..

그곳 외돌개 가는 길에 다시 올라 외돌개로 향하는 올레길에 단체손님들이 나타났다.

중국인 단체손님들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즐거운 걸음걸이로 외돌개를 향하고 있다.

적어도 백여명 이상이다.

이들의 인파와 함께 우리도 경쟁하듯 외돌개를 향했다.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는 일도 경쟁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다.

 

외돌개를 지나 올레길에 나서면 가면서 만나는 외돌개가 더 빛을 발휘한다.

방향에 따라 빛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다.

길가 습지에 아이리스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에 넓은 초원이 있다.

강법선 선생이 사진을 모두 함께 찍어야 한다며 봉을 2개 샀지만..

작동이 안돼 다시 가서 다른 물건과 바꿔서, 처음으로 카메라봉을 사용해 사진을 찍는 일에 몰두해 봤다.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사서 즐기듯..

걷는 내내 그 봉으로 사진 찍기를 연습했다.

길가에 가끔 보이는 딸기를 따 먹기도 하고, 찔레꽃 어린 가지를 잘라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면서 ‘그 많던 싱아는 다 어디로 갔을까’의 싱아줄기의 새콤한 맛을 즐기면서..

올레7코스는 중간스탬프까지 가지도 못하고, 결국 법환포구에서 멈춰서 버렸다.

몹시 지치기도 했지만, 식사시간이 넘어서 점심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곧 다다를 것 같았던 중간스탬프까지는 결국 다 가지 못했지만..

올레길은 하루에 다 걸어야 하는 의무의 길이 아니기에..

다음을 기약하는 기다림의 길이라 괜찮다.

거두절미하고, “올레7코스에서는 ‘선녀탕‘으로 우선 들어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자연이 주는 감동으로 서귀포 바다를 만나고 외돌개 그 장군바위와 악수하라고 전하고 싶다.

그러면 훨씬 더 제주도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질 것이다.

 

인생열전(박영만 저)이 다음으로 소개한 인물은 프란츠 피터 슈베르트(1797-1828)이다.

 

헝가리의 음악가 리스트는 슈베르트를 가리켜 ‘가장 시적인 작곡가’라고 평했고, 독일의 시인 뫼리케는 슈베르트를 가리켜 ‘눈물을 통해 찬란한 빛을 보는 사람’이라고 극찬했다.

슈베르트는 17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중략)..

그는 31년간의 짧은 생애를 독신으로 살면서 6백여곡의 가곡과 피아노곡, 교향곡 등을 작곡하였는데, 특히 가곡에 있어서 예민한 시적 감수성과 아름다운 멜로디, 미묘한 변화의 하모니 등을 통해 낭만주의 가곡을 완성시킴으로써 훗날 ‘가곡의 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슈베르트는 세상을 떠나기 1년전, 베토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묵묵히 운구행렬을 따라 걸었는데, 이때는 이미 악성 티푸스의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1828년 10월의 마지막 날, 슈베르트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떨어뜨렸다. 면역성이 바닥난 그는 쉽게 생선요리에 중독되었고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중략)..

..그의 유해는 그가 그렇게도 경배해 마지 않던 베토벤의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그리고 시인 그릴 파처는 그의 묘비에 이렇게 적었다.

“음악은 이곳에 소중한 보물을 묻었다. 아름다운 희망도 꿈과 함께..”

(중략)..슈베르트는 모차르트와 마찬가지로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우리에게 음악으로 그리고 묘비명으로 긴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의 끝에 슈베르트의 연가곡 ‘가을나그네’의 가사를 적어 그의 짧은 생애를 추모한다.

..너의 꿈이 깨지 않도록, 너의 휴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나의 발자국 소리를 죽여 살며시 문을 닫는다.

지나는 길에 너의 집 문 앞에 ‘잘 자요’라고 적으리라.

얼마나 너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언젠가는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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