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양씨 종가댁..신례1리 양금석 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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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양씨 종가댁..신례1리 양금석 초가
  • 고현준
  • 승인 2019.05.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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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뒷담은 4.3사건 때의 마을성담.. 약 40m 정도가 남아 있다

신례1리 양금석 초가

 

양금석 가옥
문화재 지정사항 ; 제주도 민속자료 제3-45호(1978년 11월 14일 지정)
위치 : 남원읍 신례리 1313번지
교통 : 중산간도로를 타고 가다가 신례초등학교가 나오고 그 동쪽 옆에 북쪽으로 뻗은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이발소 표지가 보이고 그 옆 골목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초가집이 있는데 이 곳이 바로 양금석씨 가옥이다.

 


1930년대에 지은 이 마을 양씨(梁氏) 종가(宗家)댁이다. 마을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올레는 약 50m나 될 정도로 매우 길고 S자로 휘어져 있어 제주의 전통적인 부잣집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긴 올레가 마당의 서측 방향과 비스듬하게 연결 되어있는데, 이는 마당이 밖으로 개방되는 것을 막고, 내방객의 동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올레를 완전히 들어서기 전에는 안거리가 다 보이지 않고 거의 대부분이 올레 담과 밖거리에 의해 가려진다. 올레를 다 들어서면 왼쪽에 우영이 붙어 있다.


600여평의 대지 한가운데 안거리는 한라산을 등지고 동남향으로 자리잡았으며, 맞은편에 밖거리, 그 사이 동북쪽에 모커리가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안거리와 밖거리이며 안거리와 밖거리의 사이는 약 10m 정도이다.


안거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가운데 간살인 마루를 중심으로, 그 좌측 간살에는 방과 고팡이 있고 우측에는 정지가 있다. 낭간(툇마루)은 큰방과 마루 간살 앞면에만 놓여 있어 정지 공간을 넓게 확보하고 있다.

상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2개 설치되어 있으며, 상방에는 뒷문 가까이에 부섭이 설치되어 있다. 큰구들 옆 굴묵 앞에 있는 팡(사진의 중앙에 보이는 돌)은 물구덕을 내려놓는 물팡이다. 목재들을 보면 일부는 교체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밖거리와 모커리는 3칸 규모이다. 밖거리는 가운데 간살인 마루를 중심으로 그 좌측 간살에는 방과 고팡, 우측 간살에는 작은상방과 방이 배치되었다. 좌우 간살에 방은 하나씩 대칭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밖거리에도 상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2개 설치되어 있다.


밖거리 작은 상방은 마당으로 출입문이 있을 뿐 아니라, 측면의 낭간(툇마루)과 가운데 상방으로도 출입문이 있어 모든 방향에서 접근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밖거리 측면에 올레를 향해서 퇴칸을 만들고, 작은 상방을 만드는 것은 외부에서 찾아오는 손님을 고려한 공간으로 볼 수 있다.

제주의 남동부 지역에서는 이렇게 내방객들을 맞이하기에 용이한 구조를 손청거리라 부르는데, 이 가옥은 전형적인 손청거리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모커리는 헛간으로 만들었던 것인데 지금은 내부를 개조하였다. 이 집은 안팎거리 통틀어 방이 넷, 툇마루가 셋, 상방도 셋이 배치되어 있어 제주도 전통가옥 양식 중에서 가장 다양한 공간 구성을 보이고 있다. 처마에 거황대를 고정하는 구멍뚫린 나무를 설치한 것(위 사진)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이다.


제주도의 다른 전통초가들이 쇠락한 모습을 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이 집은 최근에 지붕을 새로 이었고 문, 벽 등을 깔끔하게 보수하였다. 벽을 바른 흙 색깔이 붉게 보여 다른 지역의 흙을 이용한 것 같다.


뒤뜰에는 나무들이 우람하다. 이 집의 뒷담은 4.3사건 때의 마을성담이다. 약 40m 정도가 남아 있는데 신례2리로 소개되었던 이 마을 사람들이 1949년 4월 경 돌아와서 쌓은 것이다.
《작성 07071, 보완 14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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