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최정점에 이른 풀꽃들의 지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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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최정점에 이른 풀꽃들의 지혜를.."
  • 박대문(우리꽃 자생지 탐사 사진가)
  • 승인 2019.05.0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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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문의 야생초이야기)헷갈려도 밉지 않은 매미꽃과 피나물

 

헷갈려도 밉지 않은 매미꽃과 피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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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꽃 (양귀비과) Coreanomecon hylomeconoides Nakai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따스한 햇볕과 살랑대는 바람이 온 천지에 생기를 불어넣는 오월입니다. 오월의 햇살은 마력을 지닌 듯합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 움이 트고 꽃이 피며 메마른 땅바닥에 싹을 틔운 풀들은 나름대로 크고 작은 꽃을 피워 열매를 맺습니다.

초목뿐만 아닙니다. 산과 들의 길짐승, 날짐승도 봄이 되면 창조주의 소명(召命)에 따른 활기찬 종족 번식 활동을 시작합니다. 자연과 점점 멀어져 가면서 자연과의 교감력도 퇴화하고 자연 변화에 둔감해 가는 사람마저도 오월의 햇볕을 쬐고 담록 세상이 되어가는 산과 들의 신록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싱숭생숭해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법의 계절 오월이 되면 겨우내 봄을 갈망하며 꽃을 기다렸던 꽃쟁이들도 다투어 피어나는 온갖 꽃들을 찾아 동서남북 어디로 가야 할지 갈팡질팡합니다. 이른 봄 삼사월에는 하나둘 들려오는 꽃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손톱만 한 작은 꽃도 기를 쓰며 찾아갔습니다.

오월이 되면 곱고 화려하고 희귀한 꽃들이 곳곳에서 다투어 피어나니 홍수처럼 밀려오는 꽃소식에 갈피를 못 잡습니다. 서로 닮고 비슷한 온갖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니 그 식별에 골머리를 앓고 헷갈리기가 예삿일입니다.

누가 요청하는 것도 아니고 시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꽃 탐방과 식별에 매달리고 기를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특히나 매년 봄마다 일제히 피어나는, 80종에 육박하는 제비꽃 식별에 시달리다 보면 “왜 이리도 많은 종으로 분류해 놓았을까?” 하는 푸념이 나오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세분하여 새로운 종으로 설정한 식물학자들이 밉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연 속에서의 교잡으로 생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제비꽃들이 각각 특색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으니 이들을 미워할 수 없는 일이죠. 비단 제비꽃만 아니라 이들처럼 서로 비슷한 야생화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어쩌면 그러하기에 야생화 탐사에 더 흥미가 이는 것인 줄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 순천에 있는 조계산 선암사를 찾아갔습니다. 하도 오랜만에 온 탓인지 선암사 입구에 있는 홍예문 다리인 승선교만 기억에 남아 있을 뿐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리를 지나 절 입구에 이르렀는데 멀리 계곡에 노란 꽃이 보였습니다.

가서 보니 매미꽃이었습니다. 야생화가 좋아 산과 들의 꽃을 찾아다니던 초창기에 피나물과의 식별에 매우 헷갈렸던 꽃입니다. 지금은 매미꽃이 아닌 피나물이 꽃을 피우는 시기인데, 여름 매미가 울 때 피는 꽃이라서 매미꽃이라 불렀다고 하는 꽃이 벌써 피어 있으니 또 헷갈릴 만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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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물 (양귀비과) Hylomecon vernalis Maxim.

 

   

매미꽃과 피나물은 꽃 모양도 헷갈리지만 이름조차도 헷갈리게 합니다. 매미꽃은 줄기와 잎을 자르면 붉은 액이 나옵니다. 그 때문에 현지에서는 매미꽃을 피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국립수목원의 홈페이지 식물도감에는 매미꽃의 비추천명으로 피나물을 표기해 놓고 있습니다. 반면에 피나물은 노랑매미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름 말고도 또 헷갈리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매미꽃과는 달리 피나물은 줄기와 잎을 자르면 핏빛 액체가 아니라 진노랑 액체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알려지기로는 피 같은 붉은 물이 나와 피나물이라 했다고 합니다.

매미꽃과 피나물의 주요 차이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미꽃은 지리산, 조계산 등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6~7월에 꽃이 피며 피나물은 주로 중부지방 이북에 분포하며 4~5월에 꽃이 핍니다. 매미꽃은 꽃대가 땅에서 바로 나오며 꽃대에 잎이 달리지 않습니다.

피나물은 줄기 끝의 잎겨드랑이에서 꽃대가 나오며 꽃대에 몇 개의 잎이 달립니다. 또한 잎자루에 붙은 여러 잎 중 매미꽃은 정소엽(頂小葉)이라 부르는 잎자루 끝 잎이 다른 잎보다 크지만, 피나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름, 모양, 색깔 때로는 특성도 비슷해서 야생화 식별에 헷갈리는 것이 예삿일이지만 보고 알아 갈수록 그 신비감에 빠져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야생화를 알아 갈수록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긴 세월 속에 나름대로 진화의 최정점에 이른 풀꽃들의 지혜를 엿보게 됩니다. 사람만이 진화의 최정상에 이르렀다고 식물을 낮춰 보는 것은 사람이 그만큼 식물을 모른 탓입니다.

식별이 애매한 풀꽃을 만나서 보고 또 봐도 헷갈리고 골머리도 아픕니다. 헷갈리게 하는 야생화가 밉기도 합니다. 왜 스스로 이러한 미로에 빠져들어 끙끙대며 쫓아가서 보고, 찾고, 애태우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빤한 것을 놓고 자기들의 주장만을 뻔뻔스럽게 빡빡 우겨대며 착하게 말없이 사는 보통의 사람들,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헷갈리게 하는 내로남불의 여의도 양반들 행태를 보고 듣는 것보다는 백배 천배 낫습니다.

TV, 신문 등을 보며 세상 소식에 헷갈리며 짜증내는 것보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읽고 산으로 들로 나가서 쉽지만은 않은 풀꽃의 이름을 불러 보는 것이 더 낫기에 틈만 나면 집을 나섭니다.

(2019. 4. 27 조계산 선암사 입구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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