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이사,태세,별성신..덕수리 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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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토문화]이사,태세,별성신..덕수리 포제단
  • 고영철(제주문회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5.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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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덕수리 포제단

 

위치 ; 안덕면 덕수리 2350번지 게이트볼장 위쪽
유형 ; 민속신앙(포제단)
시대 ; 조선∼현대

 

 


덕수리 포제단은 동카름과 서카름의 중간 지점으로 게이트볼장 옆 동산으로 올라 앞숭물일뤠당을 10여m 지나면 있다. 덕수초등학교에서 가깝다.

야트막한 언덕의 정상부에 소나무들로 둘러싸인 널찍한 곳에 3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제단은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둘이며 좌우와 뒤쪽을 자연석을 쌓아 바람을 가렸다.

오른쪽은 제단 둘을 함께 둘러싼 뒤에 가운데로 나누었는데 실제로 제물을 진설할 만한 곳인 맨 오른쪽 제단에만 바닥에 자연석을 깔아 마련하였다.

한쪽에는 가건물로 마련한 제청이 있다. 본래 ‘북문’ 지경 1003번지 일대에 포제단이 있었다고 하나 100여 년 전에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신명은 이사지신위(里社之神位=덕수리를 지키는 수호신), 태세지신위(太歲之神位=한 해를 평안하게 해 주는 신), 별성지신위(別星之神位=콜레라 마마 등 궂은 병에서 마을을 구제해 주는 신)이다.

덕수리에서는 지금도 유교식 마을제를 별제(別祭), 별포제(別酺祭)라 하여 지내고 있다. 제일은 입춘 후 토정일(土丁日)로 자시(子時)에 행한다.

덕수리가 ‘자단리’ 당시에는 향원 총회에서 선출된 제관들이 큰 가름 북쪽 북문 포제단에서 2박3일 정성을 들여 정월초 정해일에 포제를 지내다가 1936년 현 위치로 옮겨 제단을 만들었다.

음력 12월 말에 향회를 열어 삼헌관, 전사관, 집례, 대축 등 제관을 선출하고 나머지 소제관은 집례가 지명하고 제반 사항은 논의하여 결정한다.

제관과 집사는 사흘 동안 제청에서 합숙하며 정성을 다하여 제사 준비를 하는데 과거에는 제관의 가족들이 제각기 식사를 날랐다고 한다.(디지털서귀포문화대전)
축문 ; 厚德載物 一城之主 歲德方熙 無不周載 明明維神 照臨下土 司我生靈 莫匪

한라일보(141021)에 따르면 김동권 향장이 주장하는 덕수리의 자긍심은 '350년을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마을포제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제강점기는 물론 주민들이 불안에 떨던 4·3 때에도 끊어지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작성 070814, 보완 131229, 14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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