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문화]사근다리..화순리 무반석
상태바
[향토문화]사근다리..화순리 무반석
  • 고영철(제주문화유산답사회장)
  • 승인 2019.05.24 06: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반석이라고 하지만 돌탑보다 위쪽에 있어서 전설과는 맞지 않는다.

화순리 무반석

위치 ; 안덕면 화순리 삭은동산 위
유형 ; 전설 유적
시대 ; 조선

 


화순리에는 유반석과 무반석에 관한 전설이 있다.
현재의 화순리 즉, 옛날의 '번내'는 동동네와 서동네로 나뉘어 있었다.

동동네는 현재의 동하동인데 양반촌으로 학식이 많고 지혜가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살았고, 서동네는 현재의 서상동인데 신분이 낮고 학식이 부족하지만 그야말로 천하장사라 할 만큼 힘센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신분의 차이는 있어도 당시는 모두 농사를 지어 먹고 사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두 마을의 논쟁거리는 보통 힘에 의하여 결정되곤 했다.

두 동네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면 으레 허울좋은 양반이니, 고리타분한 글쟁이니 놀림을 받았지만 워낙 완력이 센 서동네 사람들인지라 말 한 마디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동네 펄물집이라 부르는 양씨댁에 관상과 지리에 신안을 가진 적객(謫客)이 들어와 묵게 되었다.

그는 며칠을 묵는 동안 동동네 사람들과 서동네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반들이 무반들에게 꼼짝 못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고 마을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하루는 밤이 되어 바닷가에 서서 마을을 둘러보다가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다. 동동네 황개천 언덕에 있는 커다란 바위와 서동네 사근다리 동산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서로 불빛을 토해 내며 정기(精氣) 싸움을 하는데 동동네 바위의 정기가 서동네 바위의 정기에 밀려 그 빛을 잃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이튿날 묵고 있던 집 주인 양씨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儒武班石 各東西 龍虎爭鬪 對峙中'이라는 말을 흘렸다. 이 말을 들은 양씨는 심상치 않은 말임을 감지하고 객에게 해석을 부탁했다.

그러자 객은 마을의 동쪽 지명과 서쪽 지명을 물었다. 양씨는 동쪽은 '돔베남마르'라 하고 서쪽은 '사근다리'라고 부른다고 했다.

지명을 들은 객은 동쪽에 있는 바위는 유반석이요, 서쪽에 있는 바위는 무반석으로 유반석의 형상이 마치 무반석에게 절하며 항복하는 형상이라고 풀이해 주었다. 그리고 이 바위들의 형상이 그대로 있는 한 무반석이 강하여 유반석은 맥을 못 쓰게 된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양씨는 이 날부터 어떻게 하면 무반석을 무너뜨릴까 고민하다가 힘이 가장 세다는 洪 장사를 생각해내고 그를 꼬드겨서 넘어뜨리고자 꾀를 내었다.

양씨는 기회를 기다리다가 양시 문중에 초상이 났을 때 장지가 마침 '사근다리' 부근이어서 홍 장사를 찾아가 장례를 같이 치러 줄 것을 부탁하였다.

장례가 거의 끝날 무렵에 양씨는 홍장사를 불러 술을 대접하면서 술이 거나해지자 사근다리의 커다란 바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가 힘이 장사면 얼마나 장사여? 아무리 장사라도 저 사근다리 위 바위야 눕힐 수 없겠지?"


격장지계였다. 이에 발끈한 홍장사는 저 정도는 간단히 넘어뜨리겠다고 호언하고 나섰다. 양씨는 이 때를 놓칠세라 만일 저 바위를 무너뜨리면 홍장사가 마시는 대로 술을 살 것이고, 무너뜨리지 못하면 홍장사가 상두꾼들에게 술을 사라고 하여 내기를 제안했다.


홍장사는 쾌히 응낙하고 무반석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주위에 있는 소나무를 하나 뽑아 지렛대 삼아 힘을 쓰자 바위가 밑둥치에서 뿌지직하고 부러져 넘어졌다. 순간 바위가 서 있던 곳에서 청비둘기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더니 날아올라 사라지고 말았다.


서동네 사람들은 동동네 사람에게 속은 것을 알고 슬픔과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동동네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싸웠으나 이미 무반석의 정기를 잃어 버린 그들이기에 이제는 힘으로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무반석을 넘어뜨린 보복으로 유반석을 무너뜨리려고 했으나 넘어질 듯하면서도 결국은 넘어뜨리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도 유반석 아래에는 서동네 사람들이 지렛대로 떠받쳤던 자리에 받침돌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화순리지 476-478쪽)


제민일보(150315)에 실린 김창집의 글에 따르면 홍씨 장사 한 사람이 넘어뜨린 것이 아니라 동동네와 섯동네가 단체로 힘자랑을 하자고 하여 등돌들기도 하고 나중에는 무반석 넘어뜨리기를 제안하여 동동네 사람들이 시도했지만 못한 것을 섯동네 사람들이 여럿 몰려가서 넘어뜨렸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무반석은 굴러떨어져 버렸고 그 자리에 돌탑을 쌓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화순리지도 이 돌이 무반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돌탑보다 아래 있다면 전설과 부합된다 하겠으나 돌탑보다 위쪽에 있어서 전설과는 맞지 않는다.
《작성 070814, 보완 150315》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